1998년 7월 7일 나는 5평 남짓한 칼라믹스 점토 공방을 인수했다. 배우거나 자격증이 준비되어 있지도 않았던 25살의 나이에 시작한 공방이 나의 첫 용기였고 도전의 시작이었다.
배우지 않고 시작한 나로서는 수강생보다 하루 앞서 반복 연습하고 습득하면서 내 것을 만들었고 방법을 찾아가며 지금에 오기까지 24년이라는 시간을 유아 점토 교육강사로 쪼물딱 교육원장으로 열심히 달려왔다.
그러던 2019년 12월부터 코로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신학기 수업을 준비하는 2020년 2월 말에
멈춤이라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20년 넘는 시간 동안 유치원, 어린이집 특별활동 강사로 일해 오면서 늘 이맘때면 계획안 준비와 신학기 준비로 무척 바빴을 시간인데 언제가 될지 모르는 멈춤이 시작되었다.
코로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상황과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기에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나에게 이런 시간은 잠시 찾아온 휴식이고 선물인 줄 알고 산으로 야외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혼자가 아닌 남편과 함께 였다.
결혼 후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둘째를 임신했던 힘들었던 시기에 지금의 일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남편과 함께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남편은 워낙 정확하고 꼼꼼하고 업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사무실 관리 모든 업무는 남편이 하고, 교육과 관련된 일은 내가 맡아서 이끌어가고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넘어가면서 의지하고 잘 버텨 왔는데 코로나는 아무리 우리의 의지대로 힘을 합쳐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둘이서 멘탈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그동안 못했던 평일 대낮에 동네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면서 산책도 하고 시장에 가서 장도 봐서 김치도 담그고 하루에 만보 이상은 걸어 다녔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시간 또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두 달까지는 괜찮았는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불안해지고 다른 직장인들은 일상인데 우리처럼 파견 나가는 강사들은 외부인 취급을 당하고 외부 수업을 중단하는 상황이었다.
점점 멘탈이 붕괴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가 살아온 삶이 아무것도 아닌 듯했고 이런 상황이 또 온다면 모든 가정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질 것 같아서 다른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해온 일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에 여기저기 검색하다가 무인시스템 시장인 스터디 카페, 무인 판매점 등도 알아보고 설명회도 가보았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사람들은 먹고살아야 하니깐 프랜차이즈형 김밥집은 어떨까 해서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이때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20년 넘게 해온 일을 버리고 새로운 일에 대한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남편과도 의견의 차이로 다투게 되고 나 또한 새로운 일에 대한 자신감도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생각하니 그동안 두 아들을 키우면서 풍족하지 않아도 부족함 없이 아이들을 편안하게 살펴가면서 행복하게 지켜온 지금까지의 모든 삶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내가 가장 자신 있고 내가 가장 잘하고 있고 내가 가장 행복한 일은 무엇일까?라고 질문을 해보니
지금 내가 하고 있었던 유아 점토 교육이라는 일이 나에게는 최선이고 최고임을 다시 확인했다.
사무실의 소속된 강사들은 프리랜서이면서 전업이 아닌 부업의 개념으로 만족하면서 일하고 있었지만
나는 전업이었다. 내가 멈추면 우리 가정의 경제도 멈춤이 오는 상황이라 방황을 오랫동안 할 수가 없었다.
비대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수업을 직접 하지 않고 재료만 준비해서 주고 아이들이 보고 따라 할 만한 유튜브 영상을 촬영해서 보내주는 방식으로 새로운 계획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대면 수업만 20년 넘게 해온 방식에서 비대면으로 과연 가능할까? 그동안 유튜브가 많이 알려져 있었지만 나는 사실 유튜브에 관심이 없었다. 손으로 직접 만들고 구상하고 아이들과 지도하면서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영상 제작이 가능할까? 용기도 자신도 없었지만 이렇게 숨바꼭질 놀이처럼 멈추라면 멈추고, 수업 오라고 할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 뭐라도 해 봐야만 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유아 점토놀이 교육 쪼물딱이라는 유튜브 계정을 2020년 7월에 만들었다.
처음에 영상 촬영을 할 때 내 목소리가 나가는 것을 싫어했다. 아니 부끄러웠다.
나는 고향이 경상도라서 말투도 안 예쁘고 말도 빠르고 목소리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영상 첫 시작은 손
움직임으로 만들기 하는 모습을 찍고 과정은 글로 설명하는 형태로 진행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몇 개를 찍고 편집을 하다 보니 눈으로만 보고 만들기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그리고 애초 계획하던 대로 라면 이 영상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영상이 전달되어 아이들이 글을 읽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넣고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면서 하나씩 완성을 하고 비공개로 자료를 저장하고 있었다. 힘들다고 생각했던 시간이었는데 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니 재미있고 그동안 가라앉아 있었던 내 마음이 활기차 지고 있었다.
구독자도 당연히 가까운 지인들에게 먼저 알리고 홍보하면서 한 명 한 명 가입을 유도하고 있었다. 지인들에게 구독자를 가입하기에는 50명까지가 한계였다.
2020 연말쯤 코로나가 일상이 되고 교육현장에도 코로나로 인해 외부 체험학습이 중단이 되고, 외부 강사도 수업을 들어오지 못한 상황에 최근까지 수업을 하던 어린이집 원장님께서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던 수업인데 지금 못하고 있으니 체험학습 개념으로 재료만 공급받을 수 있겠냐고 문의를 주셨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럴 줄 알고 미리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원장님께 상담을 드리고 재료와 샘플만 공급하면 아이들도 이해가 부족하고 담임 선생님들도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을 수 있어 유튜브 영상으로 제공을 하고 아이들이 그 영상을 시청한 후 공급된 재료를 가지고 작품을 완성한다는 과정이다. 그런 후 우리가 다시 방문해서 작품을 회수한 후 열처리와 마무리 작업 후 포장이 되어 완성품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렇게 새로운 도전으로 몇몇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출강이 어려웠던 곳까지 수업 재료 준비를 해 달라고 하셨다. 뭐든 움직이고 노력하니깐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가 결실이 되었다.
물론, 재료를 준비해야 하고 소분해서 포장해야 하는 과정도 시간이 몇 배나 더 걸리고, 영상 촬영과 편집의
수고로움이 있지만 앞으로 훌륭한 자료가 되고 필요한 자료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전하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서있으면 땅이요 걸어가면 길이 된다! "
잠시 멈춤이 어색했지만 반가웠고 잠시는 여유로웠다. 시간이 지나니 그 여유로움도 그리움으로 바뀌는 상황이 된다. 역시 인생은 반전의 반전이 되풀이되는 듯하다.
작년 21년에는 차츰 수업이 정상화되어 가고 또 다른 위기가 몰려오고 있었지만 작년보다 올해가 나쁘지 않고 올해보다는 내년에는 더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고 살기로 다짐했다
사춘기를 넘어가고 있던 둘째 아들이 엄마 구독자 몇 명이예요?라고 묻는다.
"왜! 물어봐?"라고 나도 아들의 의도를 알기에 퉁명하게 대답한다.
"엄마 콘텐츠는 요즘 안 먹히는 콘텐츠예요! 요즘 누가 그런 유튜브 영상을 봐요! 그리고 엄마 목소리도 별로예요! 엄마 목소리가 안 나와야 해요! "라고 투덜거리면서 말을 한다.
아들의 말에 인정한다. 그리고 투덜대는 우리 둘째 아들이 가장 엄마가 하고 있는 유튜브에 좋아요를 그 누구보다 먼저 눌러주고 있는 무늬만 안티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매일 하는 일이 통장의 잔고 확인하듯 구독자가 오늘은 몇 명이 들어왔을까 궁금해하고 구독 취소가 있는 날이면 주식계좌가 손실 나는 것보다 더 큰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구독이 소중하던 중 100명만 넘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 힘겹게 299, 399,499명을 넘어 500명이 넘었다.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물론 몇십만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타 유튜버들에 비하면
아주 소소하다는 것을 굳이 꼬집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 있다.
나는 가장 열정 팬이자 가장 안티인 척을 하는 귀염둥이 둘째 아들에게 큰소리로 말을 했다.
"500명 구독자로 월 100만 원을 벌고 있거든!" 아들은 믿기지 않는 듯이 거짓말하지 말라는 표정이다.
옆에 있던 아빠가 사실이다라고 편을 들며 덧 붙여 설명을 해 주었다.
진짜 사실이다. 수업을 못 가는 대신 몇몇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재료와 영상을 전달하고 100만 원 가까이 비대면 매출을 올리고 있다. 아들의 말도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유튜브라는 것이 인기 있는 주제나 관심 있는 영상이어야 하는데 우리 영상에 들어와 보면 영상은 평범하다.
점토로 아이들에게 설명하듯 만들기 활동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작품의 수준이 아주 높은 것도 아닌 아주 평범한 콘텐츠다.
그러니깐 구독자수와 시청 시간을 비교해서 나올 수 있는 수익 구조상 구독자 500명으로 수익을 100만 원을 낸다고 하면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우린 유튜브라는 큰 세상에 아주 작은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 이용하자 라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비대면으로 미디어를 잘 받아들이고 집중력 있게 시청을 하고 기억을 하다 보니 대면 수업에서 친구들 사이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던 만들기 설명보다 클로즈업된 화면에서 집중적으로 만들기 설명을 들으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작품의 결과물도 대면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
세상에는 어떤 분야든지 엄청난 솜씨와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무척 많다.
그렇기에 나는 나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하면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질문에 답을 빨리 할 수가 없다. 단순하게 쉽게 가볍게 솔직하게 말해보자!
나는 뭘 잘하지? 나는 아이들을 재미있게 잘 가르쳐!
어떤 아이들을 잘 가르쳐? 유아 친구들!
나는 유아들에게 점토를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야!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전시회도 수차례 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작품이라는 결과물을 가지고 대중화하기가 어려웠고 점토 교육이라는 폭넓은 대상으로 하나의 커리큘럼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24년 동안 이일을 하면서 유아 점토 놀이 교육을 선택했고 이 분야에서는 자신이 있다. 내가 가르쳤던 5살 유아가 이젠 29살의 성인이 되어 있을 테고 나는 그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수업을 했었고 수많은 유아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 눈높이를 맞추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나의 목표는 내가 걸어온 25년 가까운 시간만큼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 25년을 더 수업을 할 거라고 계획하고 있다. 그러니 얼마나 여유가 있겠는가?
앞으로 나의 변해가는 외모를 미리 걱정하는 것보다 내가 얼마나 더 많을 것을 알아내고 배워갈 것인가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설렌다.
그동안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은 교육을 스스로 맨땅에 헤딩하듯 깨닫고 노력하며 얻은 결실을 이젠 당당하고 여유 있게 가성비가 높은 참 교육이 되려고 오늘도 내일의 수업 계획을 세우고 있다.
500명 구독자가 10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수익구조에 솔깃하겠지만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새로운 기회와 도전은 나에게 선물을 준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믿고 힘내어 이겨나 길 바랄 뿐이다. 상황은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라는 선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