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강사들과 2학기 들어서 회식을 하기로 한 날이다. 강사들은 수업이 끝나 각자 집에 들러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하원 시켜 씻기고 저녁까지 먹여놓거나 준비시켜 놓고 만나기로 했다.
회식 장소는 맛집으로 유명한 고깃집을 예약하고 약속한 시간에 3명이 모여 앉았다. 뭘 어떻게 시킬까?
메뉴판을 보는데도 강사들의 얼굴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다.
준비된 상이 차려지고 통삼겹살이 노릇노릇 맛있게 익은 고기 한 점을 먹을 때마다 맛있다는 감탄이 쏟아진다. 식당 주변에는 회식 손님들로 고기 굽는 연기에 시끌벅적해서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커져야 하는 분위기가 너무 오랜만이라고 무한 긍정의 표정들이다.
아이들 없이 혼자 나와 나만 챙길 수 있어서 좋았고, 고기 한점 내입에 먼저 편안하게 넣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한입 크게 쌈을 싸서 입에 넣고도 눈으로 미소 지으며 시원한 병맥주를 한잔씩 채우고 짠~하고 잔을 부딪치며 그동안 이런 기분을 잊고 살았다고 지금 이 여유를 누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우리가 결혼 전에는 일상이었던 것들이 결혼 후 육아를 하며 열심히 고군분투하는 동안 지금의 이 상황은 현실에 비춰봤을 때 사치고 호강이었다. 우린 이렇게 편안하게 먹으며 그 어떤 이야기를 해도 웃음이 나오고 대화에 호응하며 서로 고기를 굽겠다고 배려하며 먹어보라 권유하고 행복했다.
오늘 회식을 위해 신입 강사들은 남편들에게 담주 금요일 사무실 회식 있으니깐 퇴근 후 집에 몇 시까지 도착할 수 있냐고 물어보고, 1주일 전부터 아이들 저녁은 먹이기 좋은 짜장밥이 좋을지? 아님 동네 설렁탕을 미리 포장해 와서 끓여놓고 갈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전날부터는 계획적으로 아이들 컨디션 관리를 위해 바깥 놀이도 조금만 하면서 피곤하지 않게도 했고,
남편이 아이들을 편하게 케어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으려고 미리미리 집도 정리해 두고 그제야 바통 터치를 끝나고 혹여 아이들이 붙잡을까 봐 급히 인사하고 나왔다며 흥분되어 말을 한다.
우린 이렇게 몇 달에 한번 있는 회식을 위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계획을 짜고 짧은 몇 시간이지만 나만을 위한 설레는 외출을 한다.
2021년 11월 코로나로 지쳐있던 사무실도 조금씩 회복하고 내년 일을 다시 계획할 때쯤에 10년 이상 함께 일했던 두 분의 강사와 코로나로 수업이 많이 없었던 3년 차 강사 한분까지 모두에게서 퇴사 통보를 받았다.
사실 3년 차 강사는 일을 못하게 되는 사정이 있어 미리 고민 상담을 했었고 수업도 많이 없었으니 남은 강사들과 상황을 봐서 신입 강사를 뽑거나 우리가 그 몫을 더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나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함께한 지 10년이 넘은 강사들이 다 함께 내년 2월까지 수업을 종료하고 인수인계한 후 그만두겠다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고 일반 회사라면 직원이 모두 그만둔다고 하는 상황이라 폐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일 만큼 심각한 일이었다.
퇴사하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강사님들의 입장을 생각하기 전에 내가 뭘 잘못했나 먼저 고민하고 질책하고 좌절도 하면서 그동안 코로나도 잘 버티고 이겨 왔는데 멘탈이 무너졌다.
그동안 일을 하다가 힘든 일에 부딪치면 말버릇처럼 결국 나만 혼자 남게 될 거라고 이야기를 가끔 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현실로 예측 없이 이렇게 빨리 찾아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큰아들이 대학 수능시험이 막 끝난 며칠 뒤 입시 문제를 두고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시점에 갑작스러운 통보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면 가장 오래 계신 강사 한분은 둘째가 돌일 때쯤 홈스쿨 창업반 상담을 왔다가 자격증을 취득하고 강사로 시작해서 큰아이는 대학생, 그 둘째 아들이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다.
다른 한 강사는 아들이 3살 때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등록한 수강생이었는데 자격증 취득 후 강사로 활동을 시작했고 그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이 분들 외에도 그동안 짧게는 1년 길게는 7년씩 강사로 활동하고 그만 두신 강사님들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고 하더니 코로나로 힘든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는 시점에 한 명이라도 함께 하는 강사들 없이 모두 그만둔다는 상황은 끔찍한 현실이었다.
시간이 지나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동안 나만 힘들었다고 착각 속에 살았는 듯하다. 나는 전업이고 다른 선생님들은 부업이라고 생각하고 가끔 강사님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겠다 통보하기까지 그분들도 엄청 고민한 듯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의 어려움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프리랜서 분들에게 경제적인 손실과 피해를 주었고 앞으로의 불안정한 직업으로서의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할만한 일로서는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프리랜서라는 직업이 최선의 선택이었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후 돌봄이 조금 덜 필요한 시점에 나 자신을 돌이켜 봤을 때 인생 이 막의 시점은 누구에게나 다가오고 있었다.
30대에 들어와서 40대 중, 후반이 되어가는 강사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충분히 앞으로의 인생을 준비하고 계획할 필요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분 선생님은 워낙 성실한 분이고 결혼 전 유치원 교사를 해서 어린이집 교사로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갔고, 다른 한분은 자기 관리를 잘하시는 분이라 그동안 보육교사 자격증을 계속 취득해야지 하며 미뤄 둔 공부를 시작하고 있었다.
공부를 하고 자격증 취득 후 다른 쪽으로 일을 찾아 전환하고 싶다고 하셨기에 응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에 결정을 내리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을 그분들의 입장을 생각하니 붙잡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허전하고 미안하고 섭섭한 마음도 들어서 많이 힘들었는데 어느 작가분의 책에서 글을 읽고 마음을 편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여행을 가다가 같은 뜻을 지닌 사람을 만나서 함께 이야기하며 한참을 여행하다가 갈림길에서 서로의 목적지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 되었다.
함께 오면서 서로 친해졌다고 하지만 내 뜻을 꺾고 내뜻이 아닌 길을 따라갈 수 없듯이 "그 사람과의 인연은 여기 까지다"라고 생각하라는 글이었다.
또 다른 위기가 닥쳐올 거라고 예상은 못했지만 위기가 왔을 때 서둘러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용기를 내고 나의 지쳐있던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 모아야만 했다.
내년 2월 초에는 신입 강사가 결정이 되어 있어야 하기에 구인구직을 계획하고 광고를 냈다.
며칠 후 메일로 이력서가 왔고 전화 상담을 하게 되었다. 상담 주신 분은 자기 상황과 계획에 맞다고 긍정적으로 상담을 했다. 내년 3월에 둘째가 3살이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할 계획이라고 밝고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결혼 전 미술학원도 운영하였고 방과 후 미술 업체에서 둘째 낳기 전 1년 정도 유치원 파견강사를 했다고 하는 경력자였다.
전화 상담을 받은 남편이 다른 분들과 달리 통화를 했는데 너무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는 목소리라며 칭찬을 했다. 그리고 일정을 다시 계획해서 면접을 보기로 한날 약속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도착을 했다.
시간 약속을 보더라도 이분은 깔끔하고 정확한 분이었다. 경력자라 열심히 할 것 같았고 마음에 들어서 합격 통보를 하기도 전에 내 맘속으로 미리 합격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3명의 강사님이 모두 나가서 빈 공간을 메우려면 최소 한 명은 더 필요했다. 그동안 메일로 접수되는 이력서와 소개서가 들어오고 면접도 봤지만 마음에 드는 분이 없어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늦게 결혼해서 5살 여자 쌍둥이를 둔 막내 여동생이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데 자기가 쌍둥이 모임에서 알게 된 친한 동생한테 물어봤더니 이 일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고 했다. 사무실에서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고 남자 3살 쌍둥이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경험이 없고 교육이나 미술, 점토 쪽을 아무것도 안 해본 분이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상황이 급해서 우선 면접을 보기로 했다.
면접을 보러 오기로 한 날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무실을 못 찾아서 빙글빙글 돌고 있다는 전화가 왔다. 위치를 알려주었고 약속시간보다 20분 늦게 사무실에 도착했다. 유난히 추운 날이었는데 땀을 흘리면서 연신 몇 번을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한다.
호텔 경영과를 나오고 저축은행에서 근무하고 결혼 후 쌍둥이 아들을 키우고 있는 경단녀이다. 첫인상은 딱 봐도 나 착해요!라고 보이는 순한 인상과 교육 일은 전혀 경험이 없는 상태지만 예의 바르고 인성이 좋아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사실 경험이 전혀 없는 분이어서 면접을 봐야 할까 고민을 했는데 본인도 면접 보러 오기까지 엄청 남편과 고민에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유여곡절 끝에 면접을 보고 추후 통보해 주기로 했다.
고민이 많이 되었다. 미술 경험이 있는 경력자는 내가 그 선생님이 맘에 들어서 눈치 보고 설득하며 면접을 본 것 같다. 반면 완전 무경험자인 초보인 분이 가능할까? 내가 잘 가르칠 자신이 있을까? 고민이 되어 뒤척이고 있는데 갑자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던 오전의 면접 봤던 상황이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이 났다. 내가 뭘 고민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나도 아들 둘을 3살 터울로 힘들게 키운 엄마인데 그분은 쌍둥이 아들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 엄청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뭐가 그리 대단해서 저런 용기 있고 대단한 분을 내가 평가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평가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우선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동안 수많은 수강생들과 제자들을 가르쳐 보면서 어설프게 배운 사람보다 아예 경험하지 않는 초보자가 습득이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실 가르치는 것이 힘들지는 않다. 가끔 경력자가 오히려 자기가 경험하고 숙달된 자세와 테크닉이 익숙해져 있으면 수정하는데 어려움이 더 생길 수 도 있다는 것도 나는 경험해 봐서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았다. 12월에 교육을 시작해서 3월에는 수업을 나가야 하니 일단 이 두 명으로 최종 결정을 했다. 그런 후 교육 일정을 서로 조율하며 계획하고 매 주말마다 5시간 가까이 교육을 했다.
너무 열심히 잘 따라와 주었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현직 30대 엄마들이어서 더욱 아이들의 눈높이와 요즘 참 교육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습득해 나갔다.
똑같은 눈높이로 가르쳤고 누가 더 잘할 것이라는 생각 또한 서로에게 부담을 줄 뿐이다. 그래서 평등한 입장에 놓고 교육을 시켰고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교육할 때 미리 자신 있게 신입 강사들에게 말했다.
"교육 후 수업을 나가게 되면 1년만 참고 잘 배우세요! 그러면 10년 경험한 강사님과 동등한 생각을 갖게 될 거예요! "
요즘 점토 교육의 패턴은 눈높이와 요구사항이 모두 달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내가 점토 교육을 시작했던 오래전에는 보여주기 위한 작품 위주와 결과 중심이 많이 요구되는 시기였다.
하지만 점점 시대의 흐름이 달라지고 결과 중심보다 과정 중심의 자유놀이 활동과 유아들의 심리적인 안정을 위한 놀이 목적과 자기 주도적인 놀이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창의적인 조형활동이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쉼 없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느끼고 변화할 수 있었다.
현재 육아를 하고 있는 엄마들이라서 더 공감하고 내 아이가 유치원, 어린이집에 다니기 때문에 눈높이를 맞추기가 쉬웠다. 교육을 하면서 학부모라면 이렇게 아이들에게 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서로 진실되게 물어보고 진정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되도록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오랜 경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교육 흐름을 읽어가며 오늘의 교육에 충실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
과거의 경력이나 패턴도 알면 물론 좋지만 내가 경험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고, 오늘 수업하는 것이 내년에
도움이 되는 과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니 오늘 교육에 충실한다면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강사의 마음밭인 바른 인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 제일 기본이다.
10년 넘게 수업했던 담당 강사가 교체가 되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싫어하실 상황이라 무척 걱정했는데 코로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강사분들의 이탈이 우리 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씀을 해 주신 원장님들도 계셨다. 신입 강사로 담당 강사를 교체해야 하는 시점에 솔직히 상황을 말씀을 드리고 이해를 구하니 오랫동안 우리 수업을 믿고 지켜봐 주신 터라 수업에 차질이 없도록 잘 부탁한다는 감사한 말씀을 해 주셨다.
그렇게 신학기가 시작이 되었고 그동안 해야지 하고 미뤄두었던 업무적인 서류를 신입인 강사들이 쉽게 이해하고 보기 좋게 다시 재 구성하고 정리하는 등 함께 노력하고 새롭게 성장해 나갔다.
변화가 변화를 만들어 주고 지금의 힘듬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순리대로 노력하면 나의 노력에 대한 결과는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을 난 또 경험했다.
그렇게 우리는 1학기 초에 어색하지만 서로를 알아가는 첫 번째 회식을 했었고, 1학기를 잘 마무리하고 2학기가 시작된 9월 초에 두 번째 회식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동안 부족하고 힘든 부분을 잘 견뎌냈고, 지난 1학기 수업에 관한 이야기와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맛있는 삼겹살에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일탈을 박차고 나온 회식이라 1차가 아쉬워서 2차로 호프집에서 살얼음이 있는 시원한 맥주와 긴 수다를 안주 삼아 이야기보따리를 편하게 풀어놓았다.
코로나로 식당 영업시간이 단축되어 짧게 장소를 이동하며 3차로 따뜻한 모카커피 까지 마시고 헤어지며 남은 학기 수업을 서로 응원했다.
불과 면접보고 10개월밖에 안되었는데 우린 하나의 주제에 감탄하고 웃고 서로 육아에 지친 이야기와 수업 에피소드를 들으며 함께 공감하고 격려하는 동료가 되어 있었다.
할 수 있었다. 할 수 있게 잘 가르치면 된다. 그리고 배우면 되고 노력하면 된다.
이 글을 쓰는 2022년 12월 1일 원장인 내가 코로나로 자가 격리 중이고 그 두 명의 신입 강사들은 나의 수업을 대체해서 수업을 나가고 스스로 자기 수업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으며 서로 사이좋게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강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