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입문하다 - 직장생활의 끝과 함께 찾아온 도전

얼떨결에 프리랜서다 되다 - 파리에서의 직장생활은 끝

by Kylie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2월 졸업식까지 기다리기 싫어 서두른 프랑스행

남자 친구라 프랑스인이라 혹시 몰라 대학 부전공으로 어디 내놓을 수 없는 비루한 불어 실력으로, 그리고 프랑스행을 반대하던 부모님이 마지못해 주신 100만 원을 주머니에 그대로 넣은 채 나는 그렇게 비행기에 올랐다.


공대 출신인 나는 프랑스라는 건 전혀 몰랐고(동생이 프랑스어로 이야기하는 웅변대회에서 대상을 탄 적은 있다), 여행으로 가본 파리는 더럽고 사람 많고 물가 비싼 곳이었다.

당시 프랑스 남자 친구(현 남편)에게 물었다.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도시는 어디냐고, 리옹이랜다. 응 그래 거기로 가자해서 둘 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리옹에 입성하게 되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이 좋은 회사에 취업을 하였고, 첫 사회생활에 다들 옷들도 멋지게 입고 즐거워 보이는 그런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리옹에 작은 한국인이 주인인 일본 초밥 음식점에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으로 취업하게 되었고, 남자 친구는 실업자 상태가 되었다. 언어를 배우려면 학교에 가야 하는데, 부모님께는 죄송해서 말할 수 없었고 겨우 남자 친구 형에게 돈을 빌려 어학원 한 학기를 등록할 수 있었다.


나름 친구도 사귀고 외국생활에 꽃(?)인 어학원 생활을 하면서 밤에는 친구들을 불러 파티도 종종 하기도 했고, 수업이 없는 날은 매일매일 리옹 구경하기에 바빴다.


여기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불어도 할 줄 모르는 나에게 어떤 용기가 있어서인지 무조건 취업을 해서 안정을 해야겠다. 오로지 목적은 취업이었다. 남자 친구한테 의지해서 살기는 죽어도 싫었기에.


2년 동안 리옹 생활을 한 결과, 불어도 잘 못하는 나를 써줄 회사는 없었으며, 현지 한국 회사에 취업을 하려 해도 리옹에는 한국 회사가 거의 없었다.


결국에는 파리로도 눈을 돌리게 되었는데, 어느 한국 프랑스 현지 은행에서 컴퓨터 전산 직원을 찾는다는 말에 바로 지원을 하였다.


결국엔 이 결과가 나의 인생을 바꾸게 되었는데, 취업을 하게 되었고, 또한 엄마가 예전에 다니던 은행이라서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셨다. 이 계기로 남자 친구와 결혼도 허락해주셨다 (6년 만에...)


첫 프랑스 생활의 목표는 정직원으로의 취업이었기에 나는 목표를 이룬 셈이었고, 그다음 해 결혼을 하고, 대출을 받아서 집도 사게 됐다.


거의 4년 정도 일을 하고, 불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일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일하는 동안 회사에서 2년 동안 연수도 시켜주어서 프랑스 현지 은행에 다니는 프랑스 친구들도 만나게 되고, 여러 일을 하면서 이직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일하는 은행은 아무래도 본점이 한국에 있는 회사라 내 발전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점점 내 마음속에는 다른 목표가 생겼는데, 프랑스 현지 은행에 취업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첫 나의 파리에서의 첫 직장을 뒤로하고, 칠레로 남편과 한 달 동안 여행을 떠났다. 다녀와서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면접 등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전투적으로 다시 취업을 준비하였고 그 결과 한 프랑스 은행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프랑스 회사 특성상 일을 잘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승진이 빠를 수 있다.

한국인의 바리바리 일 잘하는 특성상 3년 동안 2번 동안 승진을 하게 되었고, 더욱더 회사에서 주는 일에 대한 압박이 늘어났다.

일하는 동안 나는 원하지 않은 쌍둥이(?)가 태어나서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하였고, 회계 전문 대학원을 시작하였다.


회사에서는 내가 더 일하기를 바랐고, 현실상 더 일하는 건 불가능하였다. 5시가 되면 부랴부랴 애기들을 찾으러 가야 했고, 지하철에 문제가 자주 있는 파리에서 지각이라도 하게 되면 애기들은 밥을 늦게 먹거나 피자를 시켜주기도 하였다. 2살도 안된 아기들한테 피자를 주면서(애들은 물론 엄청 좋아했다.)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하였고, 회사에서도 제대로 일도 못 끝내고 퇴근하게 되고, 집에 와서도 밥도 제대로 못주는 맨날 피곤한 엄마가 되어있었고, 마음먹고 시작한 대학원은 진전이 전혀 안된 상태였다.


사실 회사 회계, 재무 등 전반적인 관리 컨설턴트로 프리랜서로도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글로 쓰니 나는 참 많은 것을 하고 있었군) 같이 4년 동안 꾸준히 일해온 내 클라이언트이자 내 친한 동생이 맨날 힘들어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물어봤다.


"언니, 회사에서는 지금 얼마를 받고 일하고 있어?"

"나 xxx 이 정도 받고 있는데 왜?"

"언니 그 돈 내가 줄테니까 나랑 같이 더 일하자, 나 너무 해야 할 일도 많고 언니가 너무 필요한데, 언니 맨날 바빠서 같이 밥도 못 먹고 짜증 나고, 나랑 일하자 언니 괜찮으면"


능력 있는 친구 덕에 내 마음은 점점 관두는 걸로 기울었고, 그때 회사에서는 나에게 더 압박을 가하며 일을 더 같이 해줄 것을 분명히 해달라고 한 시기였다.


*현재 나의 책상 상태. 직장인으로도 일하고 프리랜서도 일하고 대학원 수업도 듣는 책상. 사실 책상이라 아니라 밥상(?)이었는데 홈오피스를 꿈꿔 공사 중이라 임시로 쓰고 있다.

여기에 내 이름으로 (내 돈 주고) 산 컴퓨터는 아무것도 없다. 다 회사 꺼.


그러다 언제 관둘까 하던 차에, 1월에 한국에 가기로 한 일정이 갑자기 10일 격리가 생겨 언제 가게 될지 모르게 됐고, 언제든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고용형태가 자유로워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이 들어 내 결정이 더욱더 빨라졌다.


결국 회사와 합의 후 굉장히 빠른 2주 만에 나의 퇴사가 결정이 되었고, 퇴사를 하고서도 몇 년 동안 회사 생활만 해 온탕에 아침에 갈 곳이 없는(?) 그런 사실이 너무 이상해졌다.


다행히 먹고살 만큼 일이 있어서 바로 일을 시작했지만, 그래도 프리랜서가 됐으니 나를 좀 챙기자라는 생각이 들어 네이버에 "프리랜서 일상" "프리랜서 패션" 등 검색하며 이미 프리랜서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며 즐거워하였다.


그러던 중 어쩌다가 브런치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항상 바쁘고 정신없었던 나의 삶에 항상 마음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글쓰기"라는 열정이 활활 타올랐다.


오늘의 일정은 대학원 수업 듣기였으나, 프리랜서로 일주일 살면서 나에게 필요한 건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이고, 그걸 표출시킬 공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지원하게 된 브런치 작가라는 길. 두근두근 되고 신이 나서 지금 견딜 수가 없다. 이상 오늘의 글쓰기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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