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아니라 프리랜서에요.

집에서 일을 한다구요. 많이는 아니지만.

by Kylie

코로나 이후에 재택을 하는 억지로라도 회사들이 늘면서, 재택으로도 회사가 어떻게든 굴러갈 수 있는 걸 보여준 것 같다.


나는 재택을 굉장히 찬성을 하는 사람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일 끝나고 애기들을 찾으러 달려가야 하는 부담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고, 요리를 대충 해놓고 찾으러 갈 때까지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는데, 재료가 없으면 장보는 시간까지 포함이었다.


이유식을 시작할 때는 애기들 요리, 우리 요리 따로 해야 해서 애들 요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밥하는 시간은 없었고, 애들 찾고 밥 주고 그러다가 내 밥 해야지 하면 너무 힘들어서 굶거나 그냥 빵 먹고 배만 채우는 하루하루였다.

남편도 퇴근하면 먹을 게 없는데 막상 요리하고 밥 먹으면 밤 10시가 되다 보니 그냥 둘이 안 먹고 자기 일수였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무려 1시간 30분이라는 준비시간이 생기다 보니, 요리의 질도 높아지고 가짓수도 많아졌다.

집안일도 마찬가지였는데, 집에 있으니 아침에 세탁기 돌리고 점심에 건조기를 돌리면 빨래를 주말까지 쌓아놓지 않는 큰 장점이 있었다.


점심시간에도 완전 한식 러버인 나는 한번 감자탕 남은걸 도시락으로 싸갔다가 같이 일하는 동료가 "이 토할 것 같은 냄새는 뭐지"라는 소리 한번 듣고 거의 밖에서 먹거나 빵 쪼가리만 먹고 건너뛰기 일수였는데, 인제는 당당하게 내 집에서 김치도 깻잎도, 전날 저녁 먹다 남은 김치찌개도 따뜻하게 데워서 먹을 수 있었다.


이 밖에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이 이유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재택을 찬성하는 사람이었다. 근데 문제는, 이렇게 하다 보니 일도 좋고, 가족들도 행복해졌다. 다시 복귀를 해야 하면 어떡하지라는 큰 고민을 안고 행복했지만, 뭔가 시한폭탄 같은걸 안고 일을 하는 사람 같았다.


결국엔 집에서 일하는 게 너무 좋아져서, 퇴사를 하고 프리랜서의 길로 걷는다고 했을 때는 솔직히 나는 정말로 너무 괜찮았다. 아니 일찍 그렇게 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또 다른 복병이 있었으니 그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세대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열심히 일하지 않는 걸 용납할 수 없는 사회의 시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얼마 전에 전화가 왔다. 남편은 회사에 매일 출퇴근하고 자기는 재택근무를 하는데, 시어머니가 너는 집에서 쉬니까, 남편 아침밥도 인제는 차려주라고.


친구가 그랬다. 대부분의 시어머니 시대의 사람들은 재택근무가 집에서 노는 걸로 이해를 한다고.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는 집에서 놀고 있는 걸로 안다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런가 보다 하고 같이 웃고 넘겼는데, 웬걸 우리 집에 그런 사람이 또 있을 줄이야. 우리 아빠였다. 아빠는 가족이니까 내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내 퇴사에 무작정 기뻐해 줄 줄 알았다.


"아빠, 나 지금 집에서 일하는데 너무 좋아. 나다운 인생인 거 같아서"

"아빠도 아빠 주위에 퇴직한 사람 이야기 들어보면 3달은 너무 좋은데 나중엔 사람이 너무 그립다더라. 그리고 일 할 수 있을 때 일을 많이 해둬야 해, 나중에 애들 교육비고 뭐고 돈이 많이 들 거야. 애들은 그나저나 어떻게 교육시킬 생각이니?"

"아니 아빠 나는 집에서 노는 게 아니라 일을 하는..." "아니 집에서 일을 하면서 어떻게 돈을 벌고 그러고..."

라며 밑도 끝도 없는 비생산적인 대화를, 게다가 1시간 넘게 연설을 하셨다.


하루하루 애들 키우기도 벅찬데 무슨 몇십 년 뒤의 고등학교는 어디에 들어갈지 왜 묻는 것이며, 왜 내가 이렇게 사는 것에 대해서 비꼬시는 거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은 결국엔 우리 아버지 세대에는 프리랜서라는 직업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 직업에 대해 이해하고 싶지도 않는 것이다. 집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돈을 벌고 사냐는 것이다.


내 세대의 친구들도 아직은 그런 것이 남아있는 거 같다.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남들처럼 주 5일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괜히 욕먹는 사회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당장에는 일이 많지 않아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집안일도 하고, 나름 여유 있게 보낸다.


이 시간만큼은 누구한테 연락을 하지 않는데, 이유인즉슨 인제 좀 시간이 나기도 했고 새해라 겸사겸사 내 근황을 전했는데 결국엔 나는 집에서 놀고 있는 사람으로 인식이 이미 되어버렸고, 할 게 없어서 전화 한 사람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운동복을 입고 아무도 없는 슈퍼에 장을 보러 가면, 일을 못 구해서 집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정도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한 번은 잠옷 차림으로 집에 온 택배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택배 원이 나한테 그랬다. "오 당신은 다행히 일이 없어서 집에 있었네요!"


인제는 굳이 설명을 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를 시키고 싶지도 않다. 사실 설명을 해야 하고 이해를 시켜야 하는 사람들은 내 얘기를 들어주는 척 해도, 결국엔 잘 모르는 거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아무도 없는 슈퍼에서 토마토를 사 오고, 오자마자 글을 쓰고 있다. 그래도 나는 나의 삶을 살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