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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가영 Jun 18. 2022

나는 왜 드라마를 쓰고 싶은가?

평범한 드라마 작가 지망생, 류원을 소개합니다.



                                                     #떡 먹다 체하겠어요

 

   어른들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나는 이 말의 자상함에 이끌려, 보지도 못한 떡을 얻기 위해 살았다. 부모님, 언니, 선생님들이 내게 원하는 일은 명확했고 언제나 나에겐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순종하자, 내게 '대학'이라는 떡이 주어졌다. 그러나 떡을 한 입 베어 문 순간 나는 떡을 원치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에 쥔 떡도 소화하지 못한 내 눈앞에 다시 '취업'이라는 떡이 놓였을 때, 나는 처음으로 다짐을 했다. 내 인생을 타인의 말에 맡기지 않겠노라고.     

    동화는 거짓말이다. 자신을 구하러 온 왕자를 보고 공주가 반하다니. 왕자는 용이 뿜어대는 치명적인 화력에 대면하여 단전에 남아있는 한 방울의 용기까지 쥐어 짜냈을 것이다. 몸은 덜덜 떨리고,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손에 나는 땀을 닦기 위해 허벅지를 문지르고, 머리는 땀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은 모습. 용기 자체는 멋있고 동경할 만한 가치 일지 몰라도 용기를 낸 사람의 모습은 초라하다. 정해진 길을 가는 내 삶에 의문을 품은 지 3년, 공부가 지독하게 하기 싫어 울음을 참으며 공부한 지 2년, 작가의 꿈을 품은 지 1년 만에 드디어 부모님 앞에 선 내 모습이 딱 그러했다. 술에 취한 채 변기를 붙들고 속을 게우던 어느 날처럼 나는 고개를 완전히 들지 못하고 볼과 귀에 오르는 열기를 참아내며 구부정히 앉았다. 그러고는 목에 겹겹이 쌓인 떡들을 토해내 듯 고백을 뱉어냈다. 저는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어요.          

     



                                                                 #왜 드라마 작가인가


    내가 드라마를 써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에겐 현실이기 때문이다. 기묘하게도 나는 전부터 현실감각이 남보다 떨어졌다. 삶에는 마땅히 슬프고, 걱정되고, 즐거운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현실과 나 사이에는 언제나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존재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후 퇴근하신 아버지가 이전과 달리 공사장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계셨을 때도, 전업주부시던 어머니가 다른 집을 청소하러 나섰을 때도, 수시와 정시를 포함한 9개의 원서가 모두 탈락했을 때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겨우 스치듯 슬픔을 느낄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즐거워하는 일도 어려웠다. 가족들에게조차 친밀감을 느끼지 못했다. 매일 보는 그들이 자주 낯설었고, 가족을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에 간단히 긍정의 대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이러한 현실과의 괴리감이 우울증의 증상일 수 있다는 사실은 몇 달 전 상담실 안에서 처음 들었다.

    이런 나도 가끔은 안개가 걷히듯 마음껏 감정에 취할 때가 있었다. 드라마를 볼 때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좁혀지지 않던 거리감이 드라마를 볼 때는 느껴지지 않았다. 드라마는 우울증의 영향권 밖에 있었다. 현실에서 미처 따라잡지 못한 감정을 나는 드라마를 통해 쫓았다. 우울에 잠겨있던 감정들을 수면 위로 끌어내 확인할 수 있었다. 드라마를 보며 슬퍼하고, 걱정하고, 즐거워했으며 아빠, 엄마, 언니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 확인의 과정은 내가 삶을 마음껏 슬퍼하고, 걱정하고, 즐거워하고, 마침내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내가 쓴 드라마를 보며 마음껏 슬퍼하고, 걱정하고, 즐거워하며 또한 사랑하길 바란다.           



    

              #좋기만 한 사람은 없다 - <나의 해방일지>      

    

    제발 떵떵거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큰엄마가 둘째 큰아빠를 두고 한 말이었다. 어느 집에나 말썽쟁이가 있다 하는데, 친가의 경우 그 말썽쟁이는 둘째 큰아빠였다. 당연히 우리 친척들 누구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베트남에 일자리가 생겼다며 곧 출국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마침 어버이날이었으므로 친척들이 함께 모여 인사를 전했다. 삼 형제가 저만치 떨어졌을 즘 큰엄마와 우리 엄마가 이야기를 나눴다. 험담이 나올 것이란 예상과 달리 엄마들은 작은 큰아빠를 안쓰러워했다. 베트남에 일자리가 있다는 말을 의심하면서도 믿고 싶어 하고, 그를 안쓰럽게 여겼다. 부디, 꼭 성공하길 진심으로 바랐다. 좋기만 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싫기만 한 사람도 없다.     

    나는 경남 아파트 5층의 거실에서 식사하시는 작은 큰아빠의 모습밖에 알지 못하고,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저녁 드셨어요?'와 같은 서먹한 조카와 작은 큰아빠 사이의 인사말 정도를 주고받는다. 그렇듯 사람의 만남은 시선과 손이 닿는 범주 안에서 이루어진다. 철저히 제한된 범주 안에서 우리는 역시 제한적인 자격을 갖고 상대를 대할 방식을 정한다. 경남 아파트를 나서 베트남으로 떠난 모습을 볼 수 없고, 친구로서 대화를 나눌 수 없다. 결국 나는 내가 가진 범주의 교집합의 교집합만큼만 상대를 알뿐이다. 그 사실이 슬프다. 드라마는 긴 시간 다양한 공간에서 여러 각도로 인물을 조망함으로써 제한을 허문다. 나는 작은 큰아빠를 이해하기 위한, 나아가 함께 사랑하기 위한 드라마를 쓰고 싶다.        

       


#아무도 모르면 돼.

  그럼 아무 일도 아닌 거야.

                 - <나의 아저씨>


    드라마 작가 지망생으로서 내게 가장 부족한 역량은 문장력과 관찰력이 아닐까 싶다. 그중 관찰력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보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했다. 내가 가진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에게는 크고 작은 고민과 부끄러운 순간들이 있었고 이를 아무도 모르길 바랐다. 상대도 나와 같을 거라 생각했다. 어린 학생에 불과한 내가 타인을 위해 베풀 수 있는 현실적인 도움 따위 없을 테니까. 내가 알아차려 버리면 상대가 나를 보기 얼마나 불편할까. 얼마나 부끄러울까. 내가 모른 체하면 어느새 문제가 해결되고 아무 일도 없던 듯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고민을 말하지 않았고, 상대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문제를 보아도 못 본 체했다. 그런 내가 성인이 되어 얻은 깨달음.          

   

    ‘쪽팔려서 죽는 사람은 없다.’          


    깊은 관계는 서로의 수치를 목격하고 솔직해지면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 내가 갖고 있던 태도는 작가를 꿈꾸는 내게 치명적인 단점을 남겼다. 보지 않고 나를 숨기려 애쓰는 습관. 작가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닌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사람인데, 찌꺼기처럼 남은 습관은 글을 무디게 만들었다. 타인의 수치를 목격하고 기록하고, 또한 나의 수치를 드러내는 솔직함이 작가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요,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자 결심한 이유이다. 쪽팔리고 힘들고 짜증 나고 미운 순간들을 이곳에 기록하며, 나도 이젠 솔직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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