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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킹 Oct 24. 2024

엄마의 오지랖 제발 그만

[로스쿨 생활기 #20] 변호사시험을 앞두고도 스트레스를 준다



10월 모의고사를 마치고 피곤과 부담을 안은 채로 본가에 갔다. 변호사시험은 이제 한 2달 정도 남았다. 그런데 엄마는 여전히 아이 있는 삶의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걸 알면 적어도 변호사시험 때까지는 참아줄 수 있는게 아닐까. 그런데 나 같은 자식이 있어서 너무 좋으니, 나도 자식을 낳아서 길러야 한다고 한다. 그건 내가 참고 있으니까 엄마가 좋은거다.




1. 너무 화가 나서 어떻게 문제를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


결혼과 아이가 있는 삶의 가치를 부정하고 싶은 건 아니다. 가치가 있다고 한들 그만큼 감내해야하는 고통과 희생이 있기에 적어도 이건 내가 결정할 문제인 것 뿐이다. 결혼할 때 천만원은 보태줄 수 있을까 말까한 엄마가 관여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내가 그동안 엄마의 자랑스러운 자식이었겠지. 그 자랑이라는 것은 나에게 인정이 아니라 족쇄이다. 무언가 가져다 줄수록 나를 더 조여온다. 그저 결혼 못하고 애 없는 '흠' 있는 자식을 가지기 싫어서 대책 없이 결혼과 아이를 요구하는게 정말 싫다.


엄마는 아이가 성장한 모습을 보면 보람있고, 자기의 성취와는 차원이 다른 기쁨을 느낀다는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를 계속 한다. 로스쿨 생활 내내 얼마나 강요를 하던지 결혼에 로망 있던 사람도 비혼주의자가 될 판이다. 무슨 사이비 마냥 추상적이고 궁금하지도 않은 감동을 강요 당하는게 너무 힘들다. 그런데 제대로 불쾌함을 표현하지도 못하겠다. 너무 오랜시간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나서, 잘못 건드리면 회복이 어려울 정도의 갈등을 일으킬까봐 아직은 조심스럽게 강요만 당하고 있는 중이다.


2. 그런데 또 나의 성취는 엄마의 몫


로스쿨 3년 동안 결혼과 아이로 무의미한 스트레스를 준 것 말고는 크게 도움을 안 받은 것 같은데, 나의 학업과 자격증의 성과는 엄마가 잘 교육한 덕분이라고 말하신다. 애초에 내가 결혼과 아이 생각이 있었으면 이 정도 경제적 여유가 없는 환경에서는 그냥 회사를 계속 다니지 않았을까. 나는 그런 삶을 희생시켜서라도 내 개인의 성취가 정말 중요했기에, 친구들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이 시점에 학자금대출로 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렇게 어렵게 나는 내 인생을 쌓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등장해서 내 공을 뺏어가는 느낌이다. 물론 자식의 성취가 부모의 기쁨일 수는 있다. 그런데 적어도 사회적 성취는 바라면서 공부하다 만 진 나에게 결혼과 아이라는 양립이 안되는 욕심을 부리는 건 너무하지 않나.


3.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까지 사는게 참 힘들었다. 그냥 매일같이 참아야 하는 것 투성이에 항상 숙제를 등에 업고 사는 것 같았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도 그렇게 행복과 평화가 가득하지는 않다. 또 언젠가 노화의 순간을 맞아야 할 것이고, 운이 나쁘면 질병이나 비극의 큰 고통을 겪게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태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를 낳아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인생을 경험하게 할 마음이 있을리가 없다.


엄마가 말하는 그 아이를 통해 행복을 얻는 순간이 있을수도 있겠지. 그게 내가 그 아이의 성장과정동안의 희생을 다 감수할만큼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태어날 아이가 불쌍해서라도 나는 아이를 만들고 싶지 않다.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의 아이를 세상에 내놓을 용기를 내는지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왔나보다. 애초에 나는 그 아이로 인한 나 자신의 희생조차도 감당할 용기가 없다. 나에게는 돈도 시간도 노력도 아이의 몫으로 남는 것이 없다. 나는 나도 불쌍하고, 태어날 애도 불쌍한데 어떻게 우리 엄마는 그렇게 아이 타령을 할 수가 있을까.




언젠가 마무리지어야 하는 문제겠지. 하지만 얼마나 큰 분쟁을 가져올지 모르니 변호사시험 때까지는 그냥 두어야겠다. 경제적으로 독립은 했지만, 아직 학생이라 정서적으로 독립이 안되어 있다. 어차피 엄마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안한다. 구세대의 관념이라는 것은 종교와 같아서, 생각이 바뀔 수는 없고 단지 그 말을 내 귀로 듣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는 것 뿐이다. 아이를 낳는다고 끝이 아닌 것도 알고 있다. 아이를 낳는 순간 또다른 과목의 한페이지가 시작되는 것 뿐일 것이다. 지금 엄마가 내게 숙제처럼 결혼과 아이를 강요하는 것처럼, 나도 그 아이로 인해 또 다른 숙제가 생겨나겠지. 책임져주지 않을 관여는 제발 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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