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생활기 #4] 이제 좀 적응되니 여유를 찾고 싶다
어느덧 로스쿨에 다닌 지 한 달이 지났다. 직장인에서 학생으로, 서울 사람에서 지방 사람으로의 삶을 사는 게 이제는 당연하게 느껴진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처음에는 정말 적응 안 되던 게 서서히 익숙해지고 있다. 다소 자유로운 교수님 스타일도, 정기적으로 시험을 쳐야 하는 내 상황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변호사가 되어도 예상 밖의 상황을 만날 수밖에 없다.
수업을 듣는데 교수님이 한 판례를 비판했다. 그 판결의 판결문은 편견이 많고 논리적이지 않아 부당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한편으로 변호사가 된 이후도 불합리한 상황 속에 살 수밖에 없구나 싶었다. 내가 로스쿨에 입학하고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게 수업이었다. 교수님 마음대로 수업시간을 두배로 늘려서 나는 원하지 않는 시간과 노력을 쓰게 되는 게 힘들었다. 나는 그저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싶을 뿐인데, 그 시험과 경향이 다소 다른 교수님만의 시험을 쳐야 한다는 것도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이 짧았다. 변호사가 된 이후도 판결 방식과 절차에 부당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학교의 모든 게 내 입맛에 맞을 수는 없는데, 방안을 강구해도 부족할 판에 불평을 하느라 시간을 쏟은 나야말로 비효율적이었다.
이제 중간고사 기간, 강의계획서는 문언에 불과했다.
어느덧 중간고사가 2주 남았다. 대체 뭘 했다고 벌써 시험인지 모르겠다. 또 대체 뭘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1학년 1학기에는 민법을 배우는데, 특별히 범위라고 할 것도 없이 수업에 이 개념 저 개념이 다 섞여있다. 당연히 학생들이 선행을 했을 거라는 전제로 수업이 진행되는 건지 개념의 범위에 연속성이 없다. 과목이 다른 총론과 각론을 넘나드는 것도 다반사다. 그냥 민법을 통으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 나 이제 법에 발을 디딘 지 1개월이라 정말 혼란스럽다. 물론 강의계획서에는 진도가 쓰여있지만 실제 수업은 한 개념을 붙들고 설명해도 다른 개념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교수님도 특별히 강의계획서의 진도를 따라가지 않는다. 강의계획서를 보고 중간고사 시험 범위를 추측하려고 하니, 강의계획서는 문언에 불과하다는 법대생 같은 농담을 누가 하더라.
내 여유롭고 행복한 삶 절대 지켜
아무리 내 인생에 공부가 중요한 시기라지만, 더 이상 찌들어서 인생을 희생하며 살아갈 수만은 없다! 애초에 다니던 회사 관두고 지방 로스쿨에 온건 행복과 여유를 찾기 위함이었다. 법 공부가 정말 어렵고 분량이 많다는 사실을 내가 간과했지만 그래도 물러설 수는 없다. 나는 여기서 놀만큼 놀고 변호사 시험도 합격해서 갈 것이다. 그걸 위해 방안을 열심히 고민해봤다.
첫째로, 공부 시간은 하루 평균 5시간을 목표로 잡았다. 우선 지금도 그렇지만 아침 5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 공부 2시간을 한다. 그리고 핸드폰에 암기나 객관식 문제를 담아서 틈틈이 봐서 1시간 분량의 공부를 한다. 그렇게 영향받지 않는 하루 3시간 공부시간을 확보하고, 추가 2시간은 일주일 단위로 14시간 이내에서 유동적으로 하려고 한다. 물론, 하루 평균 5시간이 적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서 둘째로, 공부 효율에 집중할 것이다. 작고 소중한 공부시간을 치열하게 보내기 위해 원칙을 정했다. 기본 체력을 위해 주 2회 필수로 운동하고, 수면시간은 7시간 이상으로 한다. 공부 집중도를 위해 아침은 짧은 근력운동과 스트레칭으로 몸을 깨우고, 공부 타이머 돌아가는 동안은 핸드폰 등 딴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계획한 시간을 초과해 공부하지 않으려고 한다. 시간을 계속 늘리면 공부시간의 긴장감을 낮추고, 내 자유시간이 줄어든다. 완벽한 공라밸을 위해 시간을 늘리기보다 차라리 효율을 높이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이 계획이 얼마나 잘 들어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달라진다면 계획을 조정해가면서 균형을 찾을 것이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려고 몸도 고생하고 머리도 열심히 굴리고 있다. 체념도 하고 계획도 짜고 필사적으로 살아보겠다고 노력하는 게 그래도 싫지만은 않다. 앞으로 내가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어 좋다. 회사 다닐 때 가장 힘들었던 건 그 정도에서 내 인생이 크게 발전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안주하기에는 너무 불만족스러웠다. 지금은 그때보다 돈도 없고 더 고민할 것도 많지만 그래도 내가 내 인생에 더 많은 통제력을 가질 수 있어 더 열정적으로 살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