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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킹 Mar 27. 2022

나는 오만한 멍청이였다

[로스쿨 생활기 #3] 법조인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을까


법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내가 본 문제는 객관식이던가 아는 것을 줄줄이 적어내면 되는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사례형'이라는 문제 유형이 등장했다. 변호사 시험 유형 중 하나이고, 교수님들이 당장 1학년인 내 중간고사 시험을 사례형으로 내겠다고 선포했다. 대체 그게 뭘까. 회사 정리하고 바로 입학한 나는 로스쿨 준비도 선행도 안돼 있어 혼란스럽기만 하다. 일단 학회와 동문회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사례를 보고 법적인 요건을 찾아서 사안을 포섭(?) 하면 된다는 사실 정도를 파악했다.




학생들끼리 협력적인 이유를 알 것 같다.


여기 로스쿨 학생들은 정말 잘 도와준다. 자료나 정보 공유에 적극적이고, 덕분에 아무것도 모르고 학교부터 덜렁 들어온 나는 생활부터 공부까지 정말 다양한 정보를 얻었다. 주로 경쟁적이고 배타적인 분위기에서 있었던 나는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교수님 별로 기출문제를 따로 만들고, 신입생에게 알음알음 공유하는 것도 아니고 단톡방에 공지해버리는 정도의 끈끈함이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이유를 좀 알 것 같다. 첫째로 지방 로스쿨이다 보니 우리들끼리 학점 몇 점으로 경쟁하는 게 의미가 없고, 차라리 변호사 시험이라는 큰 목표를 위해 협력하기로 한 것 같다. 둘째로 국립대 교수님들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학생들끼리 연대의식을 높여주는 것 같았다. 이유가 무엇이던 도움에 감사할 따름이다.


로스쿨 학생이라고 법전을 사는 게 뭔가 웃긴 것 같다. 


내가 학부를 나온 대학교 동문회가 여기 로스쿨 안에 있었다. 이번에 알아서 동문회 단톡방에도 초대받고, 정해준 멘토 선배와 밥도 먹었다. 학교 근처 통닭집이었는데 참 맛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정말 의미 있었던 건 현실적인 정보를 많이 받은 것이다. 그 '사례형'이 뭔지도 얼추 들었고, 학교 시험에 들고 갈 법전을 사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우스갯소리로 군대에서 총 사야 된다고 엄마한테 돈 붙여달라고 한다는데, 꼭 그런 느낌의 농담 같이 들렸지만 진짜였다. 그것도 필기용 하나, 시험용 하나 법전 두 개를 사는 게 좋다고 했다. 심지어 매년 바뀌기 때문에 매년 새로 사야 한다. 개강 초반에 학생회에서 공동구매를 했었는데 나는 멍청하게도 1학년이 왜 법전이 필요한지 몰라 신청을 안 해 비싸게 정가로 사게 생겼다.


지금 포기해도 늦지 않았다는 농담에 우울하다.


한 선배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이후에 '서초동 막변'으로 굴러야 된다고 말했다. 막변이라니. 뭔지 모르지만 좋은 대우받는 것 같이 들리지 않았다. 일단 내 시간 거의 없이 많은 일에 치인다는데, 정말 싫다. 변호사 시험도 힘든데 그 이후도 정체모를 막변 수련과정이 남아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렇게 살고 싶어서 지방에 내려온 게 아니었다. 대기업 3년 생활이 너무 고돼서 인생에 여유를 찾고자 지방으로 내려왔다. 물론 서울에 있는 로스쿨 학생에 비하면 덜 치열하겠지만, 어쨌든 로스쿨 자체도 그 이후의 삶도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것 같다. 언제쯤 치열하게 살지 않을 수 있냐는 내 질문에 그 선배가 농담처럼 "지금 포기해도 늦지 않았어요, 이 길은 계속 힘들어요"라고 대답했다. 지방이라고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오만했다.




내가 각오가 덜 된 상태로 너무 어려운 길을 들어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치열하게 사는 것 그만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잘 다니던 회사와 서울생활 정리하고 여기로 왔다. 쉬울 거라고 생각하고 선택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는 공부가 적성에 맞아 나름 행복을 찾으며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 상당히 차질이 빚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어렵게 한 선택인만큼 지금까지처럼 행복을 먼저 포기하며 살 수는 없다. 특히 인고의 시간이 로스쿨 3년만이 아니라 그 이후도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이상, 당장의 즐거움을 포기하면 평생 고생만하고 살 것 같다. 꼭 나는 성공과 행복을 다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게 무엇일지는 이제부터 생각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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