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카혼타스 Oct 22. 2023

책을 선물하는 마음

책 선물하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읽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지만, 책에는 그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으로는 선뜻 건넬 수 없는 무게가 있다. 고심 끝에 선물을 결정하고 나면 꼭 다시 한번 처음부터 꼼꼼하게 읽는다. 그 사람에게로 가서 짐이 되거나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항상 나를 신중하게 하고 망설이게 한다. 자주 해도 좀처럼 쉬워지지 않고 매번 어려운 일이다. 책을 선물한다는 것은.

언젠가부터 생일 같은 기념일뿐만 아니라 ‘○○데이’로 이름 붙이고 공식적으로 선물을 주고받는 날, 입학, 졸업, 취업, 승진 등 함께 축하하는 날에도 항상 책을 선물한다. 선물하는 이유와 대상에 꼭 맞는 책을 고르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 너무나도 즐겁다. 정성 들여 고른 책에는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이 잘 담겨 있어서 책을 선물할 때는 따로 편지나 카드를 쓰지 않는다. 날짜와 이름만 적어도 충분하다.      

보통은 읽어본 책 중에서 골라 사지만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사기도 한다. 시집 코너에 빽빽이 꽂혀 있는 얇은 시집을 손가락으로 훑다가 한 시인의 이름에서 탁 멈춘 적이 있다. 이름 세 글자에 떠오른 그리움을 갑자기 주체할 수 없어서 바로 연락했다.     


잘 지내시죠?

선생님과 같은 이름의 시인이 있는 거 아세요책을 고르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너무 반가워서요.

선물하고 싶어서 샀어요시간 될 때 우리 한번 만날까요?”     


책은 긴 시간 소원하게 지냈던 사람과 다시 만날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문자를 주고받고, 약속을 정하고, 만날 때까지 계속 그 사람을 생각하며 설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여러 번의 머뭇거림을 이겨내고 어렵게 전해진 책이 있고, 마지막 장을 읽자마자 서점에 여러 권을 주문해서 누구누구에게 줄까 행복한 고민을 하게 했던 책도 있다.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싶을 때 가장 깊게 고민한다. 그 사람의 어려움을 알은체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하고, 섣불리 건네는 위로가 오히려 상처가 될까 두렵기도 해서다. 그래도 일단은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더욱 신중하게 한 권 한 권 살펴본다. 상황에 따라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을 고르기도 하고, 제목에서부터 ‘힘내라! 잘 될 거다!’를 말하는 책을 고르기도 한다.  

평소에 읽는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본다. 한 번 읽은 책은 두세 번 더 읽지 않는 편이라 집에 책이 계속 꽂혀만 있는 게 싫다. 책은 한 사람이 소유하는 것보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건너다니며 많이 읽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가지고 있는 것은 대부분 저자 서명을 직접 받아 의미가 있는 책이다. 대출해서 읽다 보면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책이 있다. 한 번씩 서점을 들를 때면 그냥 나오지 못하고 꼭 한두 권 사서 나오게 된다. 소장한 책 목록이 소박한 것에 비해 책은 많이 사는 편이다. 내가 가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선물하면 더 많은 사람이 읽게 되는 거니까. 좋은 책은 마땅히 그래야 하니까.

지방 소도시에 살다 보니 작가 초청 강연 같은 문화 행사에 항상 목말라 있다. 시립도서관이나 동네 책방에서 개최하는 행사에는 꼭 참석하는 편이다. 보통은 강연 끝나고 책에 저자 서명받는 시간이 있다. 그날도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내 앞으로 몇 번째쯤에 서 있던 지역 작가 한 분이 본인의 책을 작가에게 선물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였다. 나도 좋아하는 작가님에게 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생각하게 된 것이. 읽기만 하는 사람이었는데 나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산다. 매일매일 많이 읽고, 하루하루 더 쓰려 노력한다. 머지않아 언젠가 당당하게 내 책을 선물할 그날까지 감사, 위로, 축하, 격려의 마음을 담은 책을 사람들과 나누며 살고 싶다.  

keywor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