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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K 이태곤 Jul 28. 2023

불타는 조종사 연대기

머리글

이 글은 조종사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어찌어찌해서 지금은 유니폼 입고 잘 살고 있다는 정신 승리의 글은 더욱 아니다. 이 글은 조종사들의 훈련생시절, 교관의 고함소리와 얼굴에 튀는 침, 등에 흐르는 식은땀, 허둥지둥 대다가 조종간마저 뺏기는 그들의 이등병 시절의 이야기다.



인간은 지면에 두발을 딛도록 설계되어 있다.  어린 난에게 우리 발이 땅에 달라붙어 있다는 중력이란 개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궤변 같았다.  축구공에 고무인형을 둘러 붙여보아도 모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게 내가 살고 있는 지구와 같은 모양이라고 설명하는 어린이 과학 첫걸음 같은 책에는 구구절절한 뉴턴이야기뿐이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저 비행기를 설명해 보라고 엄마를 들볶았다. 엄마는 비행기는 예외라고 했다. 만화영화에서 시뻘건 불을 뿜으며 하늘을 질주하는 물체, 이 애매모호한 지구의 중력이라는 생각에서 해방된 F14 Tomcat을 보았고 나는 중력에서 해방된 그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창공을 지키는 조종사가 꿈이었죠."


"하늘은 저의 사무실이랍니다."


 

  하늘을 난다는 것을 정말 매력 없고 구태의연하게 표현해 본다면 저렇게 될 것 같다. 공중으로 솟아오른다는 것, 태어날 때부터 나와 자석처럼 붙어지내는 지구와의 Closed circuit을 해제시킨다는 것은  무척 도발적인 이야기다.  마술쇼에서 사람을 공중으로 부양시키고, 가부좌를 튼 채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마술쇼는  속임수라는 나는걸 알아도, 볼 때마다 여전히 나를 경악하게 한다.  하지만 이제는  공중에 떠오르리라는 신념을 위해 온갖 위험한 일을 행하며 목숨도 기꺼이 내어놓은 비행 선구자들 덕분에 우리는 지금 하루 일당을 순순히 내어 놓으면 비행기에 몸을 싣고 지구와의 이탈을 체험할 수 있다. 비행은 100여 년 만에 불가능하고 위험한 것에서, 매력적인 모험으로 그리고 전쟁도구를 거처 교통수단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안락한 고고도를 날도록 해준 제트엔진을 갖춘 민항기가 위세를 떨치던 70년대에는 승객들이 저마다 이 특별한  경험을 위해 특권층처럼 옷을 갖추어 입고 비행기에 올라 완벽하게 상냥하고 아리따운 승무원으로부터 극도의 친절과 미소를 선물 받았다. 하늘은 높아졌고 세상은 점점 가까워졌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사고로 대변되는 민항기 기술의 발전은 더 적은 비용으로 우리를 더 멀리 더 오래 더 안전하게 날 수 있게 해 주었고, 세계적으로 커다란 확장을 거듭하고 있는 저가항공사들은  낭만적이고 우아했던 격식과 턱시도를 벗어던지고 기차 버스 요금만큼 싼 가격으로도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는 시대를 열게 해 주었다. 어찌하여 특권층들이 노동자 계급들에게 이런 특혜를 사용케 해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고단한 노동자들의 화폐도 액면가만큼의 정확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현명한 기업들임에는 분명하다.  이제 당신의 옆자리에는 콧수염을 기르고 점잖게 웃는 신사가 아닌, 그저 당신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들뜬 맘으로 도착지의 여행코스, 수정으로 만든 오리나, 읽기 힘든 이름의 향수,  토볼렛 초콜릿 같은 면세품 리스트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읽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행기에도 전성기 때만큼이나 여전히 강력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비행기 맨 앞에 앉아 제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어깨에 줄이 그어진 견장을 걸고 있는 두 명의 조종사, 칵핏에서 걸어 나와 승객들을 부드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목례를 하는 그들은 우리가 기억하는 70년대의 비행기의 낭만을 간직한 채  치명적이게 매력적인 사람들일까?


 


  빳빳하게 다려진 군청색 유니폼 위로 지나치게 빨갛거나 하얀 목걸이에는 잘 정돈된 모습의 사진과 본명이 새겨져 있고, 그것은 이 사람에게 비행동안 당신의 목숨을 맡겨도 좋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남들은 특별한 일이나 있어야  한 두 번 오고 가는 야릇하게 흥분되는 공항을 하품을 하며 능숙한 일상처럼 걸어 나오는 기장님들을 보면, 공항의 주인으로 모시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조종사들은 언제부터 저렇게 내공 있어 보이는 걸음걸이로 세상을 살게 된 것일까? 저분들도 코흘리개 같은 병아리 시절이 있었을까? 내가 사랑하던 f-14 톰캣을 정말로 공중에 띄워 올렸을 저 사람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엄마 뱃속부터 날개를 달고 태어난 인간은 없다. 태어난 후 날개를 스스로 달고 날아보려 하다가 죽었다고 전해지는 존재들은 몇몇 있다. 어린 시절 슈퍼맨의 비행능력은 목에 수영장 수건을 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동의한 나와 내 친구 기훈이는 아파트 2층에서 뛰어내리기를 감행했고, 기훈이 다음에 뛰기로 한 나는 기훈이 에게 무언가 큰일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두 달 동안 목발을 짚고 불편하게 걸어 다녀야 했던 친구의 아픔보다는 인간은 절대 슈퍼맨처럼 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의 아픔이 더 컸다. 인간은 절대 혼자 날 수 없으며 새로 진화되지 않을 향후 몇 세기 동안은 그러할 것이다. 인간이 공중에 떠오르려면 중력을 이겨내야 하겠지만, 공중에 떠오른다고 해도 많은 문제가 생긴다. 인간은 공중에 떠오르는 순간 특히나 시야가 가려진다면 지면을 향한 방향감각과 균형 감각은 파리선생의 백분의 일만도 못하게 되어버린다. 인간의 감각기관 중 평형감각과 방향감각을 담당하는 기관 (Vestibular apparatus:Semicircular Canal)이라는 기관은 지상에 머물렀을 때 그것도 심하게 요동치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 방향과 균형의 감각을 정상적으로 전달해 준다. 게다가 인간이 이겨낼 수 없는 요동에 처해지면 '멀미'라는 잘못된 정보로 뱃속의 음식물을 쏟아내게 한다. 이 감각기관의 이런 초라하기 짝이 없는 능력 덕분에 인간은 공간과 균형에 대한 정보를 시각정보에 의존하게 된다. 이 감각기관이 통하지 않는 공중에 떠오르면 이제 믿을 것은 사람의 시야밖에는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초기 조종사들에게는 시력 (안압, 내 사위, 외사위, 근시, 원시, 난시, 안압, 주변시, 암순응능력....)과 지형지물을 참조해 비행하는 시계비행을 위해 좋은 시력이 필수 신체 능력이 된 것이다. 하지만 지면과 멀리 떨어지거나, 구름 속을 비행하거나 하여 시각적인 정보를 얻지 못할 때를 위하여 우리의 비행선구자들은 여러 가지 장치를 개발하였고 이 소중한 장치들이 비행기 조종석에 앉으면 은하수처럼 많은 불빛들이 반짝이며 저마다 조종사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이다. 절대로 테러리스트들이 못 만지게 일부러 어렵게 만든 것들이 아니다.


 고로 조종사들은 무릇 날아다니는 모든 것에 경외심을 표하며, 선구자들의 비행, 항행 발명품들을 이해하고 조작하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하게 되는데, 사실 이 혹독한 훈련 과정에 대해 언급하고자 하는 조종사는 많지 않다. 백조처럼 우아한 유니폼을 입기 전에 그들의 모습이다. 한강 고수부지의 오리 배보다 훨씬 더 비좁은 조종석에 구겨지듯 앉아 시뻘건 얼굴로 침을 튀겨가며 버럭 거리는 교관에게 뒤통수를 맞아가며 "더 당겨 더!! 더!!" 소리를 듣는다. 당홤함에 식은땀을 흘리다가 결국 조종간마저 빼앗기고 만다.  교실로 돌아와 "넌 다른 길을 선택해 보는 게 어때?"라는 가슴이 내려앉을 것 같은 소리를 들으며 눈물, 매운 콧물 다 빼고, 뉘엿 거리는 배를 붙잡고 어두운 골방에서 밤새워 고민하던 모습, 그 이등병 같은 시절의 자신의 모습은 고이고이 접어 조종사 로그북에 넣고는 다시 열어보기 싫었으리라. 하지만 에어라인 조종사가 된 후 반복되는 일상은 매너리즘이 되어 역습을 해오기 마련이다. 훈련생 시절의 초심을 잃고 허우적거릴 때, 훈련생 시절의 이야기는 나태한 맘을 일식집 총주방장의 칼같이 빛나고 날카로운 상태로 되돌려 놓으며, 지금 오리배에 앉아 멀미를 하는 훈련생들에게는 자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줄 것이며, 멋져 보인다는 이유로 함부로 조종간을 잡으려 하는 꼬맹이들에게는 훗날 벌어질 전투와 자신의 전투력을 생생히 비교하게 되는 기회를 줄 것이다.  


 


  민항기의 존경스러울 정도로 강력하며 비싸고, 거대한 쇳덩이를 하늘로 솟구치게 하는 힘은 대부분 GE, RR과 PW 엔진의 힘과 화석연료임을 비행기들을 대신해 고백하며, 넓디넓은 하늘 속에서 조종사의 사무실인 칵핏은 기지개 간신히 필만큼 좁고, 식사도 김밥천국 메뉴선택권의 1/10 밖에는 되지 않는 조종사들의 무려 코흘리개 시절로 돌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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