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말장난에 불과한 노랫말이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느꼈을 때, 나는 저자 올더스 헉슬리에게 경외와 두려움을 동시에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멋진 신세계는 두말할 필요도 없는 명작이다. 20세기 초에 쓰였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성, 저자의 인간에 대한 엄청난 통찰, 그리고 때때로 벌어지는 생각지도 못할 반전에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모든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강렬한 메시지와 찝찝함만이 남는다. 그렇다, 이 소설은 반항적이다. 마치 운명에 맞서는 철학자처럼, 불가능에 도전하는 소년처럼 터무니없다. 이 소설이 발간된 것이 1932년인 것을 고려하면 작가의 믿을 수 없는 관점과 통찰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여러모로 이 소설은 클리셰와는 전혀 연관이 없다. 권선징악이라든지, 해피 엔딩과는 아예 접점이 없다.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주인공은 고통받고 아니, 스스로 고통 속에 자신을 던지며, 우리의 문학, 예술, 종교, 철학은 철저히 무시당하며, 아버지와 어머니와 같은 두말할 것도 없이 소중한 가치들이 마치 파렴치하고 미풍양속을 해치는 음란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세상 속에 인간이고자 하는 자는 철저히 고통받고, 동물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한한 쾌락과 안락함 속에 살아간다.
이런 구역질 나고, 절망적이며, 터무니없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대체 왜 읽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 이유를 나는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이, 비록 터무니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세상은 간단하고 상식적이다. 그들은 세상에 주어진 조건과 안락함에 만족하며, 안도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삶을 사는 그들에게 "생각"이라는 것은 불쾌한 것이다. 의문이 생길 때면, 간단하게 쾌락과 안정을 주는 소마나 촉감 영화, 방탕한 성생활 등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조건반사훈련에서 배운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대로 행동한다. 야만인을 관람하러 온 “문명인”들이 고작 본능에 이끌려서, 그러니까 조건반사훈련에서 주입받은 “협동하는 습성과 단결하고 화합하는 욕망”에 이끌려 서로에게 주먹질을 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럼 무엇이 다른가? 그 소설과 우리의 삶은 무엇이 다른가? 글쎄, 우리는 가족이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다. 우리는 병 속에서 태어나지도, 약에 취한 채로 고통 따위는 잊고 살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을 한다. 그래! 우리는 소설 속의 그 세상처럼 완전히 방탕하게 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희로애락을 느낀다. 후회를 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또 때로는 성찰을 한다. 그들과 다르게 우리에게는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갈 가능성이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문구에서 린다의 복잡한 마음을 읽었다. 그리고 조건반사훈련으로도 소마로도 끊을 수 없는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을 느꼈다. 실망하고 분노하고 증오할지언정 사랑하는 한 소년을 보았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인간성을 지키려 몸부림치는 한 인간을 보았다.
헉슬리의 모든 작품에는 그의 강한 신념이 있다.
그것은 쾌락이든, 안락이든, 평화든, 자유든, 사랑까지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이런 비극적인 운명을 타고났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그가 그려내는 "멋진 신세계"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결핍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정밀한 기계 부품처럼 작동한다. 그래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무엇이 결핍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고통 또한 사라졌다. 그들은 늙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철저히 안락하게, 그들은 죽음마저 유쾌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마침내 인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한한 안락함 속에서 살아간다. 잠깐만, 그렇다면 헉슬리의 생각이 틀린 것 아닐까? 얼핏 보기에 그 세상은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는데 말이다.
아니, 아니다. 그들은 무언가를 분명 잃어버렸다. 인간으로서 잃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기계가 되어버렸다! 그 문명은 모두가 만족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인간의 대단한 가치들을 전부 없애버렸단 말이다! 가족, 사랑, 예술, 철학 등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그 세계에서 파렴치한 것이며 음란한 것이 되어버렸다. 희노애락이 사라진 그런 무미건조한 사회를 우리는 진정 유토피아로 보아야 할까?
다가오는 2025년, 변화하는 세상과 점점 안락해지는 사회를 보며 나는 격렬한 두려움을 느낀다. 헉슬리가 보았던 것처럼 멋진 신세계가 오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아니, 어쩌면 이미 시작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멋진 신세계”가 현실적이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