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by 정지원

선명하게 보일수록 외면하고 발버둥 친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더욱 바라던 대로 살고 싶은 열망이 지나쳐서, 자세를 낮추며 고개를 숙일 내 모습이 너무 보기 역겨워서일까? 어쩌면 괜한 자존심을 부리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는 게 싫어서 괜한 역정을, 나이에 맞지 않는 투정을 부린다. 바라보던 이상은 이미 내 손을 떠났다. 인정하는 게 싫었다. 이건 그저 푸념에 불과한 듯하다.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내일이 있으니까, 태어났으니까, 함께 늙어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말하지도 못하는 꿈은 낡은 선반 위에 놓은 LP판처럼 세월 묵은 먼지만 가득 쌓여있다. 몇 번의 헛기침으로 속을 달래도 창문을 살포시 열면 작은 방 안을 유영하듯 떠오르는 새하얀 기억들이 내 곁을 수놓는다. 어리숙한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는 순박한 시골청년의 모습처럼, 아무 말도 건네주지 못하고 어깨만 툭툭 쳐주고 나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괜스레 나 혼자 조언이라 생각하는 오지랖을 펼친 건 아닌지 새벽이 다가오는 시간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쓴 채로 돌아오지 않는 후회를 남몰래한다.


책상서랍 세 번째 칸에는 버리지 못한 원숭이 인형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마치 신교대 시절 받았던 인터넷 편지와도 같다. 그걸 가만히 바라볼 때면, 아련했고 행복했던 그때의 기억 속으로 살며시 들어갈 수 있다. 시간이 흘러 미화가 되었다고 한들 몇 번이고 곱씹으며 회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기억들이 나를 내일로 이끌어주는 원동력이 되니까, 미처 끊어내지 못하는 어느 한 관계처럼 절절한 마음으로 내일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미련하게 또다시


나를 만든 건, 지금의 내가 아닌 과거의 너였으니까 사람 마음이라는 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알아도 다시금 같은 질문을 해본다. 일말의 기대를 가져보아도 돌아 올 대답은 듣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그렇게 위안 삼는다. 을의 연애를 하는 건 나에게 익숙하니까.


먼저 좋아하는 사람이, 상대를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바보가 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쓰레기로 비춰지는게 더 편할 터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상대는 날 생각하지 않으니까. 상대에게 실망했다는 건 생각보다 그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때로는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을 하지 않아야 될 순간들이 분명 있다. 그 한 마디를 내뱉기 전에 갖고 있는 감정의 선이 외로움에서 비롯된 것인지 명확하게 짚고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