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사랑 얘기

by 정지원

시시콜콜한 아무 얘기, 누구나 음유시인이 된다던 그 뻔한 이야기 속 결말은 언제나 비극이고 주인공은 가련하다. 추억은 지날수록 미화되어 창작을 낳고 허상을 일으킨다.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고민해 본 적 있을까, 우린 왜 거울을 통해서만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걸까 우린 왜 직접적인 얼굴을 확인하지 못하는 걸까?


끝없이 이어질 의미 없는 의문의 끝은 모순투성이였다.


너는 내가 아닌 듯이 나 또한 네가 아니다. 즉,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순 있어도 공감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왜 공감능력 또한 재능이라는 소리를 듣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난 인간은 때때로 이기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 답한다.


우린 모두 듣고 싶은 것만을 듣고, 기억하고 싶은 모습대로 기억을 한다. 그 상황을 경험해보지 못한 채로의 공감은 전혀 일어날 수가 없다. 하물며 서로 대화를 할 때에도 격렬한 토론을 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상 후에 남은 것이라곤 내가 말한 그대로일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서로 보는 것과 보이는 것에 대한 대한 생각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려 한다. 대부분 어느 한쪽이 져주며 사과하는 것을 마지막으로로 끝을 맺는다.


그게 대화의 본질일까?


대화는 뭘까, 화법이란 뭘까, 우린 뭐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도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린 채 감정이라는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겨져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공감은 일어나지도, 바랄 수도 없다. 그렇기에 대화는 지속적이고 차분하게 시간을 두고 풀어 나아가야 할 퍼즐과 같다. 온전한 대화를 통해 상황 자체를 이해할 수 있다면, 공감은 필연적으로 따라올 것이다. 한 가지의 예로, 말꼬리를 잡지 않는 것이다. 과거를 들추지 않으며 그 상황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고 새어 나오는 감정은 후 순위로 밀어두는 일, 달리 말해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론으로 돌아가, 우리의 생각 속 사랑은 언제나 비극이다. 그것도 본인이 데인 과거의 대한 상처, 트라우마, 들춰내고 싶지 않은 수치, 수많은 좌절과 실패. 그렇기에 사랑은 어렵고 아름답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보지 못한 소설의 대한 스포일러가 없는 결말이다. 비록 맺어지지 못한 사랑의 끝이 안 좋았을 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저마다의 모습으로 순백의 도화지 속을 채워나갈 물감이 내 손에 쥐어져 있다. 상대방 또한 마찬가지이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주변을 채워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