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상실한 유치한 관료주의의 현주소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를 보고

by 김태경

옛날 고대 시대 때, 선천적으로 신체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고대 사람들은 사람이 지닌 질병이나 장애를 신으로부터 받은 징벌이라고 여겼으므로 그 신체 장애인은 비참하고 피폐한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던 당대 최고의 셀럽이 그를 부르더니 그의 장애를 고쳐주었다. 그가 싹 고쳐진 것을 본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며 환호했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았다. 그를 환호하지 않았던 일부 사람들은 오히려 그 셀럽을 질타했는데 이유는 원칙 위반이었다.

"오늘은 안식일이고, 안식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당신은 이 신체장애인을 고쳐주었소. 그러니 당신은 이 사회가 정한 전통과 원칙, 규정을 어기는 잘못을 저질렀소. 이게 맞는 일이오?"

성경 속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성경은 장애인을 고친 셀럽을 예수로, 예수의 원칙위반을 주장했던 사람들을 바리새인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안식일은 무엇을 위하여 있는 것인가?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 보다 더 옳은 일 아닌가!"


2016년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I)>는 성경 속 이야기의 현대판과도 같다.

이 영화가 성경이나 예수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원칙과 규정을 운운하며 사람들을 지치게 만드는 영국의 복지제도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다니엘 브레이크는 평생을 목수로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심장병이 악화되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호전될 까지 일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를 따라 일을 그만두었고, 일을 쉬는 동안 국가에서 주는 질병수당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심장병이 겉으로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구직활동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관공서에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재심의를 요청했지만, 처음부터 절차를 다시 밝아야 하고 특히 거절됐다는 심사관의 전화 통보가 있어야만 새 절차가 가능하니 그 전화를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해서 듣게 된다.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한 데 언제 올지도 모르는 전화를 기다리고만 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불만을 한껏 토로했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원칙적으로 통보 전화가 있어야만 그 다음 절차가 가능합니다'

게다가 뭐든 죄다 인터넷으로 신청하라고 하니, 목수로만 살던 컴퓨터 까막눈 다니엘에겐 생애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넘기 힘든 산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날 관공서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던 다니엘은 케이티 가족을 만나게 된다. 케이티는 최근 이 도시로 이사온 싱글맘으로 아이 둘을 데리고 생활비 지원 절차를 밟기 위해 관공서에 온 것이었데 약속한 시간이 이미 지나 버렸다며 상담도 못 할 뿐 아니라 지원 제재 대상이 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만다.

안 그래도 절차, 원칙, 규정에 화가 나 있던 다니엘이 아이까지 데리고 처음 이사온 동네에서 오다가 보면 조금 늦을 수도 있지, 당신들은 인정도 없냐며 큰 소리를 치며 케이티를 도우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관공서에서 함께 쫓겨나고 만다.

관공서가 원칙을 어겼다며 쫓아낸 다니엘과 케이티는 친구가 된다. 일자리를 아직 구하지도 못한 데다 지원 제재 대상이 된 케이티는 아이들에게만 먹을 것을 주고 본인은 사과 하나로만 끼니를 버티는 상태에 이르고, 구직활동을 하는 척만이라도 해야 수당 대상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은 다니엘은 실제 수입이 줄어 아내와 함께 살던 집의 가구를 모조리 팔아 생활비를 버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를 돕고 돌봐주며 관공서로 총칭되는 국가 대신 서로에게 따뜻한 지원군이 된다.


# 감독의 불공평한 사회상-작가주의 색채가 반영된 영화, 하지만 이젠 현대사회의 보편적 이야기

감독은 켄 로치(Ken Loach)로 칸 영화제가 선호하는 감독 중 하나라고 한다.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2번, 심사위원상을 3번이나 수상했는데 이 영화가 2016년 69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 중에 하나에 속한다. 하지만 1936년 생으로 올해 아흔살이 다 되신 완전 노장의 영국 출신 감독인데다, 주로 노동자, 계층 간 부조리 등의 내용을 담은, 일종의 정치적으로 좌파적 시각이 담긴 영화들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하니 대중적인 감독은 아니었던 듯 하다.

하지만 그의 전작이 어떤 내용으로 어떤 평가를 받았던 이 영화는 어디든 치열한 자본국가를 사는 사람이라면 공분을 살만한 소재를 담고 있다. 어디서든 누구나 들어봤을 이 말 말이다.

"원칙적으로 안됩니다."

감독이 대중화된 것인지, 우리 사는 사회가 불공평한 사회로 더욱 가까워 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대충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하는 이 말이 떠오르는 영화다.

"공무원들이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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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을 받으려면 가난과 질병을 정성들여 증명해야 한다. 국가가 지켜야 할 것은 '국민(의 자존심)'이다.

영화 속에서 다니엘은 심장병으로 사회활동이 위험하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어려운 대화에 말려든다.

"스스로 모자를 쓸 수 있습니까? 전화통화를 할 수 있습니까? 이 정도 거리를 혼자서 걸어갈 수 있습니까?"

다니엘이 심장병을 앓고 있다고 말하지만 의사 소견서를 요구하는 공무원은 한 명도 없고, 절차에 대한 답답함을 호소할 뿐인데 호소를 이어갈 수록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받는다. 관공서에서 곤란에 처한 케이티를 돕던 다니엘에서 관공서 직원들은 당신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썼던 가구를 팔아야 하고, 아이들이 밑창을 떨어진 신발을 학교에 신고 다녀야 하는 처지에 이르지만 그들은 관공서 직원들이 마음이 드는 서류와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는 희한한 사회 구성원이 되었다.

국가의 국민 지원 체계에서 누가 위를 점유하고 있는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경제적인 하위 계층이 되어 국가지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음에도 이 영화는 마치 국가와 이 사람들 간에도 계급이 존재하는 것 처럼 묘사하고 있다.

"지원 받고 싶으면 내 말을 잘 들어해. 내가 하라는 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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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미건조하면서 따뜻한, 슬프면서도 차분한 영화의 깊이

이 영화는 감정을 강요하지도 않고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지도 않는다.

추운 바람이 부는 도시 거리를 옷깃을 여민 채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등장인물들을 비추며 건조함을 보여주고, 케이티와 아이들 그리고 다니엘이 함께 있는 공간이나 시간에서는 동병상련의 연대, 대가 없는 선한 도움이 거지같은 상황에서 따뜻하고 유일한 위로가 될 수 있음도 말한다.

이 영화의 연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물들의 극한의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 매우 절제적이라는 것이었다. 식료품 배급소를 찾아간 케이티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갑작스레 통조림을 따서 손으로 떠 먹고 오열하는 장면이나, 케이티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속상해 하던 다니엘을 찾아온 케이티의 딸이 문 외시경으로 집안을 들여다 보며 다니엘의 가구가 모두 없어졌음을 보여주는 장면,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차갑고 쓸쓸한 거리 위의 사람들이 AI보다도 무미건조한 관공서 직원들을 찾아가 도움이 필요하다 말하지만 정작 온기는 관공서가 아니라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서 건네 준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적 처지는 빈약하더라도, 냉정한 사회 제도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다움을 견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말이다.


그러니 성경 속 예수의 되물음과 비슷하지 않은가

관공서는 왜 존재하는가? 사회는 왜 존재하는가? 법은 누구를 위하여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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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서 더욱 그렇긴 하겠지만,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 있는 '정'문화가 참 좋은 것 같다.

물론 초코파이와 카스테라를 허락없이 먹었다며 고소하는, 초코파이 정 모르는 소리 같은 황당 무계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내 아들 같고 딸 같아서..내 나이든 부모님 같아서..하며 한 번 더 쳐다보고 돌아보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리고 원칙과 규정만 따지는 정 떨어지게 재수없는 공무원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공무원들도 제법 있으니까 말이다.

"원칙적으로는 안되는데요, 이거 먼저 해 드릴께요. 서류 빠른 시간 내에 꼭 가져오셔야 해요"

"규정상 제가 이 지원을 해 드릴 수는 없고요, 대신 이 부분의 지원을 받으실 수 있는지 한번 알아볼께요."

(영화 속에서 다니엘이 질병수당 직원과 통화를 위해 1시간 48분 정도 전화기를 들고 기다리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속으로 영국이 정말 저렇다면 '쯧쯧..영국은 너무했군'이라고 했다)


요란하고 화려한 연출의 영화는 데뷔하기에, 이슈를 만들기에 쓸모가 있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오래 여운과 사람, 인생, 세상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 주는 영화는 오히려 덤덤하고 절제된, 말이 많지 않은 영화 아닌가.

진정한 멋있음은 이런 거다. 사람도, 인생도, 영화도..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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