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 수가 없다>를 보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를 보고 매우 불쾌했기 때문이다. 감독이 영화에 메시지를 새겨두면 관객은 그것을 찾고 생각하는 것이 영화 창작자와 관객의 소통일진대 그냥 기분만 나쁘다. 아무리 주목받고 싶고, 세계 유수 영화제에 가고 싶다고 해도 금기 시 되는 선을 자꾸 넘고 잔인함을 과하게 묘사하고 지나치게 함축적인 메타포로 '이 영화 뭐야?' 하며 고개를 저었었다.
<공동경비구역 JSA>, <헤어질 결심> 은 그나마 대중성이 있는 작품이지만 보는 내내 긴장된다. 갑자기 잔인해지고 불쾌해질까 봐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도 꽤 망설이게 되더라.
'굳이 비싼 돈 내고 불쾌할게 뻔한 영화를 왜 봐'
영화 흥행이 지속되고, 포털 평점도 회복이 된 듯하고, 감독 자신도 자신의 역대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영화일 거라 장담을 하고 무엇보다 관객의 호불호가 극명하다는 기사들에 호기심이 생겼다.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 보자. 그래도 이병헌과 손예진 아닌가. 호(好)도 있다고 하니 그게 뭔지 한번 가서 봐 보자 하며 극장으로 향했다.
# 박찬욱 감독의 역대 영화 중 가장 재미있는 영화인 것이 맞다
박찬욱 감독도 천만영화를 꿈꾼 다더니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이건 비난이 아니라 용기에 대한 칭찬이다. 그의 영화 속에 늘 기형적으로 존재했던 메시지는 명료해졌고, 기형적 메시지를 예술처럼 보이려 했던 미장센은 절제된 듯하다. 어쩔 수 없이 영화 마지막에 역시 박찬욱 감독이다 할 거침없는 장면들이 나오긴 하지만 이 정도면 대중 영화로서의 수위를 지키며 '나 박찬욱이야' 하는 약간의 시그니처 정도로 넘어갈 만하다.
구병모(이상민 배우)의 집에서 아라(염혜란 배우)와 만수(이병헌 배우)가 총을 들고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벌이는 몸싸움 장면에서는 얼마나 깔깔 거리며 웃었는지 모르겠다. 익숙하고 흥겨운 멜로디로 가득 찬 공간에서 총을 겨누었던 살기는 이내 동병상련으로 변하고, 아군인지 적군일지 모를 제삼자의 등장으로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 장면은 올해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풍자적이면서 고급지고, 웃기면서 긴장감 넘치는 신이다.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영화, 재밌는 영화라는 관객의 평이 듣고 싶었을 박찬욱 감독님께 나는 실제로 그러했노라고 말해주고 싶다.
# 원래 잘 알던 그 명배우들이 박찬욱 감독을 만나니 새롭게 보인다
연기대회가 있다면 결승 진출자들일 연기 선수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유명하고 잘하니 많이 접할 수밖에. 관객들은 자주 봐 왔던 배우들의 연기가 대략 예상이 된다. 하지만 이 영화 속 그들의 얼굴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배우 손예진은 전혀 적지 않은 분량으로 이병헌 곁에서 넉넉한 한 자리를 제대로 차지한다. 손예진의 연기는 여우처럼 매끄럽다가도 순간 입체적인 표정을 드러내고 적절한 타이밍에 이병헌의 반걸음 뒤로 물러난다. 재벌 딸, 첫사랑 등 캐스팅의 이유였던 빼어난 그녀의 외모는 이 영화와 이상하게도 잘 어울린다. 아마도 남편 유만수 캐릭터만큼이나 복잡한 심경의 인물을 잘 소화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병헌만큼이나 잘 된 캐스팅이다.
이상민 배우 역시 그렇다. 여타 형사물에서, 재벌 드라마 등에서 분명 봐 왔던 연기임에도 순간적인 표정과 목소리(특히 숨소리)는 처음 보는 것인 양 예리하고 신선하다. 염혜란 배우도 두말은 필요 없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어느 드라마/영화보다 예쁜 미모를 선보이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뱀 같은 여인으로 영화를 풍성하게 한다. 박휘순 배우도 폼 잡는 연기 말고 술 취한 연기를 참 야무지게 잘하더라. 정말로 술에 취한 사람 같았다.
박찬욱 감독을 만나니 배우들이 새로운 옷을 입게 되는 것 같다. 운동선수가 좋은 코치, 학생이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속의 조명과 색감 등이 익히 보아왔던 배우들의 얼굴에 그늘과 선을 선명하게 비추는 것을 보니 괜히 거장들과 작업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니구나 싶다.
# 배우 이병헌이어서 가능한 서글프면서도 우스꽝스럽고, 늑대 같으면서도 곰 같은 캐릭터. 그리고 이 영화
유만수의 암살 시도에 개연성이 없어 납득하기 어려웠다는 글을 읽었다.
25년을 일한 회사의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 한창 크는 중인 자식들, 쌓여만 가는 대출 체납 고지서.. 가장(家長)이라면 눈앞에 캄캄해지고 인생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심정일 것이다. 방금 전까지 다 이루었다며 만족과 행복을 고백하던 지금이었다. 실직을 이유로 살인을 한다는 상황 자체가 이미 뭐든 할법한 절망적 상황으로 읽힌다.
극 중 유만수는 겉으로는 한없이 좋은 사람처럼 웃으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을 언제 꺼낼지 생각하는 인물이다. 아내와 자식이 잠들어 있는 집 마당에 시체를 파묻기도 하고, 같은 신세의 제지 기술자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는 인물이면서도 방아쇠를 당기기도 한다.
절절함만 있어선 안되고, 염세적인 모습만 있어서도 안되며, 모자라거나 멍청해 보이지 말아야 인물. 때때로 순박한 애처가 같다가도 집 밖을 나가면 치밀한 암살자로 변신해야 한다. 면접 자리에서 햇빛에 눈이 부시면서도 기분 나쁜 이빨 통증을 견디며 웃으며 말해야 하는 참으로 복잡 다단한 인물이다.
이병헌은 유연하고 다차원적인 연기로 독특한 유만수를 만들었고 이로 인해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좀 더 대중적인 것으로 융화시켜 주는 공헌자가 된다.
# '실직'을 넘어 실직을 가져온 '사회'에 대한 영리한 풍자, 그리고 예상 밖 무거운 메시지
갑작스레 실직자가 된 가장의 우당탕탕 고군분투로 실직의 고통을 말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유만수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제지업계 최고 기술자들을 처리해 나가기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실직한 가장이 못된 알고리즘에 빠졌을 때 어떤 상상까지 할 수 있게 되는가, 그리고 그의 상상이 현실이 되겠는가가 이 영화의 이야기인가 생각했다. 영화 말미에 이르러는 박찬욱 감독이 던진 무거운 메시지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어이 제지업 최고 기술자가 된 유만수는 일자리를 얻지만, 그가 새로 일하게 된 곳은 로봇들만 돌아다니는, 사람이라곤 감독자 유만수 한 명뿐인 제지공장이었다. 출근 첫날 공장에 입성한 그는 혼자만의 환호성을 치지만 이내 그곳이 기계음으로 가득 찬 공장임을 보여주는 연출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 직전에 보여주는 숲 속에서 벌목작업을 하고 있는 기계의 모습은 마치 작은 동물을 사냥해서 뜯어먹고 있는 어마하게 큰 동물처럼 다가오고, 사람을 산채로 잡아 죽이고 있는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러니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어"
"문제는 실직이 아니라 실직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야!"
더는 기술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과학기술만능주의의 시대, 가성비와 효율성의 이름으로 컴퓨터와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뺏긴 근로자들(특히 장인정신을 가진 기술자들)에게 열심히 살았던 당신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만큼 잔혹한 일이 또 있을까.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첨단기술 장려 시대에 강제적으로 자리를 내준 한 가장의 서글프고 우스꽝스러운 고군분투를 통해 현실을 풍자하고 걱정한다.
'그렇게까지 해서 얻어도 결국 이런 거야. 그래도 괜찮은 거 맞아?'
영화가 끝나고 나니 우물 밖에서 던진 돌을 주워 들고 우물 안에서 서로를 죽이려고 혈안이 된 개구리들이 모습이 떠올랐다.
박찬욱 감독의 내려놓음의 용기, 대체불가한 이병헌의 연기, 시대를 향한 날카롭고 노골적인 공격이 담긴 잘 만든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