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수에 매몰된 언론이 봐야 할 진짜 저널리즘

영화 <더 포스트>를 보고

by 김태경

나는 내가 나름대로 좋은 영화를 골라보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독, 각본, 배우이다. 네이버 평점이 형편없더라도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라면 내겐 뭔가 다른 감각이 있군 하며 남모르는 미소를 띄곤 한다.

그렇다고 영화에 대한 경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 <빅쇼트>는 좋은 평가와 다수상 수장작품이지만 월스트리트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바이스>는 믿. 보. 배우 크리스찬 베일이 등장하고 역시 좋은 평과 칭찬을 많이 받은 영화이지만 미국의 부통령을 다뤘다는 점에서 나는 여즉 이 영화들의 관람을 미루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약간 남의 나라 이야기 같아서 공감대가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쩌면 나는 봉준호 감독이 말한 자막의 장벽 뿐 아니라 소재의 장벽 조차 뛰어넘지 못한 속좁은 영화 관객일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더 포스트(The Post), 2018년작>역시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망설였다.

미국 신문사 중 세번째로 크고, 무려 13만명의 인쇄판 구독자와 250만명의 디지털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워싱턴 포스트'의 일대기를 봐서 뭐 한담? 미국의 정치 근현대사 속 저널리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바보같던 망설임은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거장 감독에 의해 완전이 부숴졌고, 노련한 시나리오 작가인 리즈 한나와 조쉬 싱어는 '그러니까 너는?'이라는 질문을 내게 꽂고야 만다.


# 저널리즘, 여성, 정치..어느 하나에만 국한되지 않는 세련되고 노련한 이야기의 힘

1971년, 미국정부가 베트남과 전쟁개시를 목적으로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였고, 이후 베트남 전의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곧 이길 거라며 전쟁의 참상에 눈감은 채 자국 젊은이들을 파병해왔다는 내용이 담긴 일급비밀문서 '펜타곤 페이퍼'가 유출된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거짓말이 지난 30년간 이루어졌으며 미국의 지난 4명의 대통령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를 입수한 뉴욕타임즈의 보도로 미국 전체가 발칵 뒤집히게 된다. 극비유출로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은 닉슨 정부는 뉴욕타임즈를 상대로 추가보도 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정부의 언론 탄압 전례로 남게 된다.

당시 지역 신문 정도에 머무르고 있던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은 캐서린이었다. 아버지가 시작한 워싱턴 포스트를 남편이 물려받았지만 남편이 죽은 후 가업 유지를 위해 발행인이 되었다. 본의 아니게 미국 최초의 여성 발행인이 된 것이다. 오랫동안 살림과 육아, 친교계에서 기업가 아내로만 살았던 캐서린은 점차 기울어져 가는 워싱턴 포스트를 유지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군분투한다. 주식을 공개하고 투자유치에 주력하지만 당시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그녀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영 미덥지 않다.

캐서린의 지지를 받고 있는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장인 벤은 뉴욕타임즈가 단독 보도한 펜타곤 페이퍼 입수에 공을 들이고 드디어 4천장에 달하는 일급기밀문서를 손에 넣는다. 정부의 보도 금지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이사진의 입장과 진실 규명이 참된 언론 역할이라며 보도를 주장하는 벤과 기자들이 맞서게 되고 이제 최종 결정은 발행인인 캐서린에게 달려있다.


이 영화는 '그래서 언론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나 '최초의 신문 여성 발행인 캐서린, 그녀는 누구인가', 혹은 '미국의 근현대사는 얼마나 치사한가'를 교육하지 않는다. '누가 진실을 말했는가'로 내부 고발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되길 선택하지도 않았다.이 영화는 뭐든 될 수 있었던 가능성을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채 모든 가능성을 아우른다.

워싱턴포스트의 전환기적 입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남성들에게 둘러싸인 최초의 여성 발행인인 캐서린 개인에 대한 조명과 동시에 벤을 통해서는 저널리즘 역할을 말하기도 한다. 또 당시 대통령이었던 닉슨이 전화기를 들고 화내는 뒷모습과 전화기 속 닉슨의 목소리를 통해 미국 정치인의 얍샵함도 드러낸다. 스토리는 어디 하나, 어느 인물에 멈추거나 매몰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며 세련되고 노련하게 관객을 초대한다. 신파적이지도 뜬금없는 감동을 요구하지도, 민중의 분노나 감격을 보여주며 어느 한쪽의 승리를 일설하지 않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참으로 절제롭고 담백하다.


# 스티븐 스필버그의 포용적이고 총체적이며 천재적인 연출이 담긴 영화

훌륭하게 짜여진 이야기를 스크린 위에 펼치는 최종은 감독의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매우 긴 러닝타으로 지루한, 인물 간 균형감을 잃은 채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스필버그는 신속한 기사 보도를 위해 냉철하게 움직이는 벤의 모습과 밤잠을 설치며 회사주식 공개 설명을 준비하는 캐서린의 모습을 교차하며 극의 균형을 맞추고, 두 사람이 식당에서 만나 웃으며 이야기 하다가 급작스런 의견 차이를 보이는 장면에서는 긴장감을 유지하며, 마지막에 캐서린이 벤의 전화를 받으며 최종 결정을 하는 장면은 과하지도, 길지도, 감성에 빠지지도 않은 깔끔함의 진수를 보여준다. 음악, 캐릭터간 장면의 할당, 공간 등 어느 것 하나 두드러짐 없이 조화로운 포용적인 연출이다. 여성 경영자의 진정성, 리얼 저널리즘과 순수한 진실 탐구 열정을 지닌 저널리스트들은 거짓과 말 장난으로 숨겨왔던 정부의 무능력을 일갈한다. 장르만 다를 뿐 쥬라기 공원과 라이언 일병이 있었던 지옥같은 전쟁터, 크라스탈 해골을 찾기 위해 인디아나 존스가 있던 밀림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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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만난 고기처럼 매끈하고 영리하게, 자유롭고 조화롭게 연기하는 탁월한 연기

충분히 지루할 수 있는 소재가 노련한 이야기꾼의 손에 의해 다듬어지고, 전기 영화나 역사 영화로 국한될 소지가 뻔한 영화가 이 시대 최고 연출가의 손에 들어갔으니 이제 남은 건 캐릭터를 생생하게 구현시키는 배우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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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완벽한 캐스팅은 없을 것이다.

벤 역의 톰행크스는 늘상 봐 왔음에도 다시금 새로운 느낌으로 영화 속을 뛰어 다닌다. 수줍음 많고 자신감 없어 보이는 듯한 캐서린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은 조용하지만 강한 여성 경영인을 연기하는 장인이 된 듯 하다. 수화기를 잡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장면에서 그녀는 미세한 떨림과 눈빛으로 영화를 완성한다.


# 정의로운 저널리즘은 사라지고 선택적 정의와 상업적 플랫폼으로 전락한 지금의 저널리즘를 향하여

지금은 영화 속 시대와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의가 다양화되고 변질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 가치의 수호와 국민을 위한 국가 역할은 여전하다. 언론사의 명운을 걸고 진실을 보도하는 저널리즘은 어디 있는가.

진실 여부에 대한 취재와 탐구 없이 클릭 유도만을 목적으로 한 과장하고 날조된 자극적 기사 제목들, 기사 하나를 두고 복붙해서 조사와 문장 순서만 바꿔 기자인양 기사라고 게재하는 저급한 이야기들, 팩트는 일방편향적 논조에 섞여 모호해진 채 지속적으로 시비거리를 자발적으로 양산하며, 대부분의 사회 현상은 정치적 민감 사안으로 갈라지고 만다.

영화 속에서 캐서린은 펜타곤 페이퍼 작성을 명령했던 맥나이더 장관과 친구였고, 벤은 진실에 눈감았던 케네디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역사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아서 진실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제는 저널리즘에만 기댄 채 앉아서 정의를 기다리기만은 할 수 없는 세상이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가 불가피한 이 시대에 영화 <더 포스트>가 낭만적이게까지 느껴진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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