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SF, 판타지, 어드벤처 장르로 분류되지만 사실 장르로 설명될 수 없는 작품이다. 인류 멸망을 가져온 과학 문명의 전쟁 후 1천 년이 지났지만 죽음의 숲인 부해와 거기에서 날아오는 유독성 포자로 그나마 남아있는 인류는 쇠퇴해져 가고 있다. 바람계곡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도움으로 부해와 포자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중이다. 그들은 부해의 숲과 곳곳에 있는 거대한 곤충 오무를 자극하지 않는다. 그들을 이길 수 없을 뿐 아니라 전쟁이 초래한 멸망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바람계곡에는 부해의 곤충들과 교감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나우시카가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해를 정화하고 자연을 정복하겠다며 어마무시한 거신병의 알을 가지고 군사제국 트로메키아의 공주가 바람계곡을 점령한다. 나우시카는 부해가 뿜어내는 것이 유독 포자가 아니라 오히려 독으로 오염된 지구를 정화시키는 거대하고 체계적인 필터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분노한 오무 떼 앞에 홀로 서서 전쟁을 막으려 자신의 몸을 던지는 나우시카의 모습은 공존을 위해서 우리는 결국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애니메이션 영화인 주제에 욕망과 공존, 인류의 종말과 거대한 세계 질서를 담고 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1984년도에 만들어졌다는 것 역시 충격이었다.
#1. 시대를 초월해서 전 세계 인류를 향해 메시지를 던지는 두 영화
아바타 세 번째 작품인 <아바타 불과 재>를 보고 나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원령공주 영화가 떠올랐다. 만든 이도 다르고, 무려 30년이 넘는 시차와 비교 불가능할 뿐 아니라 판이하게 다른 제작 기술이지만 묘하게 같은 메시지를 건네는 것만 같다.
나비족의 신적 존재인 에이와와 교감하는 키리는 오무와 교감하는 나우시카의 특별하고 신비한 능력을 연상시키고, 천억 달러를 외치는 하늘 사람들의 대량 학살 상황에 직면한 톨쿤 무리는 바람계곡 나우시카 속 오무 떼를 보는 듯하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거진 40년 전의 작품이고 일일이 손으로 그려 만든 고집스러운 장인 정신이 담긴 애니메이션이다. <아바타 불과 재>는 역대 영화 제작비 중 상위 10개에 들 만큼 막대한 돈을 들인 비싼 블록버스터이다. 이런 차이가 있음에도 이 두 영화는 거대한 우주 세계가 인간의 것만은 아니라고,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질서가 존재하며 이 질서 속에서 공존을 위한 선택만이 살길이라는 호소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영화 거장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며 실제 세계로 돌아와 우리 사는 모습을 반추해야 하지 않을까. 시대를 막론하고 전 세계 인류가 잊지 말아야 할 인간의 모습을 영상 속에 담는 이들은 명장을 넘어 예술하는 철학가들이요 예언자들일 수도 있다.
#2. 높아진 관객들의 눈높이를 뛰어넘는 황홀하고 우아한, 고급진 CG의 총출동
쉼이란 곤 없는 OTT는 금요일마다 새로운 영화와 시리즈들을 쏟아낸다.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이 되어간다. 언제든 어디서든 원하는 지점을 선택해서 볼 수 있는 시청자들 눈은 높아졌다. 도입 5분을 사로잡지 못하면 실패는 확정이다. 아바타 1편 공개 후 나비족은 식상한 캐릭터가 되었다. 이후에도 수많은 크리쳐물 캐릭터가 만들어졌은 말할 것도 없다. 시간여행은 물론 죽지 않는 좀비, 하늘을 날고 땅속을 휘젓는 CG는 이제 새롭지도 않다.
그럼에도 <아바타 불과재>는 여전히 건재했다. 돈과 정복의 욕망을 분출하는 하늘 사람들과 본질과 정신을 사수하려는 판도라 부족들의 대립은 영화상 흔하고 흔한 대립 구도이다. 하지만 두 부류를 보여주는 아바타 영화의 특별하고도 세밀한 최고급 기술은 1편 탄생 후 1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영화 역사상 최고의 상상력을 보여주며 식상함을 희석시킨다. 3시간 3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그나마 버티게 해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뚝딱 뭐든 단 몇 초만에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에 익숙해서 그런가 영화 속 제이크와 네이티리 등 인물들의 세밀한 표정 변화와 움직임은 감성적 질감과 함께 서사 전달에 이바지한다. 이탈리안 브레인롯의 퉁퉁퉁퉁 사우르의 독창적 모습이 익숙함에도 영화 속 바람 상인 무리의 등장 신은 우아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만큼 심혈이 담겨 있는 특수 효과였다. 도대체 인간은 얼마나 더 새로운 걸 만들어 낼 수 있는 걸까?
영화를 보는 내내 왜 굳이 3시간 30분짜리 영화를 한편으로 만들었을까 생각 들었다. 허리는 아파오고 목도 뻣뻣해지는 게 시계를 몇 번이나 봤나 모르겠다. 2편으로 나누어 개봉했어도 충분히 흥행했을 법한데 말이다. 이야기 꾼이 서사를 끊김 당하는 것만큼 불편한 일이 없기는 하지만 서도 이제껏 아바타 1,2편을 모두 극장 관람했던 남편이 잘 보고 나서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는데 영상과 액션이 좋았다고 말하는 걸로 봐서 어지간히 자신감 넘치는 영화여서 그런가 보다 싶다.
100분짜리 영화와 가격이 같다는 측면에서는 제임스 카메룬 군단의 서비스를 받은 듯한 느낌도 든다. 그러니 엄청난 서사와 화려한 기술적 테크닉을 아낌없이 방출하는 서비스 정신 덕에 영화 평점의 고공행진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잘 봤습니다 제임스 카메룬 감독님. 또 찾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