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 후기
동화책 <신데렐라>는 "그리하여 신데렐라는 왕자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난다.
계모와 언니들의 구박을 받기만 하던 신데렐라가 사실은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 자였다거나 그에게 반한 남자가 왕자였어서 하루아침에 돈 많은 왕자비가 되었다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인류가 존재하는 건 절대 사라지지 않을 클리셰일 것이다. 근데 왕자와 결혼한 신데렐라는 정말 행복하게 살았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는 신데렐라가 왕자비가 된 후의 이야기를 보는 듯하다. 무명 배우였던 차무희는 로맨스 호러물 장르 영화의 주인공인 도라미를 연기하다가 사고를 당한다. 얼마 지나 그녀가 의식을 찾았을 때 그녀는 스타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의식이 없는 동안 기괴한 로맨스 호러물의 그 영화가 흥행을 거두었고 그 덕에 도라미는 전 세계가 열광하는 최고의 스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부와 명성을 갖게 된 차무희였지만 어느 날부터 주변에 도라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에겐 안 보이는 도라미가..
# 통역도 결국은 사람 간의 마음이 담긴 대화
드라마 스토리는 사실 식상하다. 예쁘지만 털털하고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인기 여배우와, 세상엔 그다지 관심 없는 잘생기고 능력 있는, 돈까지 제법 많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통역사라는 남자 주인공의 직업은 새로운 첨가물이 된다.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통역'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대로 통역할 수 없는, 화자와 청자의 생각과 감정이 담길 수밖에 없는 독특한 매개채널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신선함을 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로 내가 상상하는 말을 듣는 것만큼 만족함이 또 어디 있을까. 나는 관심 없는 다른 이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데, 그 말을 내가 고백받고 싶은 사람의 목소리로 듣게 되는 이 드라마의 설정은 충분히 로맨틱하다.
#그래서 신데렐라는 행복했을까
로맨스도 좋고 예쁘고 멋있는 남자와 여자의 꽁냥꽁냥 사랑도 좋지만, 나는 하녀가 살다가 하루아침에 왕자비가 된 신데렐라 이야기가 계속 생각났다. 과거 비극적 가족사를 가진 차무희는 이중인격자가 되어 괴롭고 불안한 현실을 버텨나간다. 물론 로맨스 드라마인 데다 세상 완벽한 남주 '주호진'이 등장하고, 완벽한 미모를 한껏 뽐내는 배우 고윤정 덕에 이 무시무시한 이중인격자가 오히려 사랑스럽게 까지 그려지지만 사실은 섬뜩한 일 아닌가. 어쩌면 신데렐라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녀로 종일 일만 하고 온갖 욕과 타박을 받던 한 여자가 이제는 하루 종일 시중을 받으며 예쁜 옷과 구두, 배불리 먹으며 궁전을 여유 있게 돌아다니는 삶을 산다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왕자비로 엄격한 의식과 예의범절을 지키며 품위 유지를 해 나가야 했을 테니 말이다. 다이애나 왕비도 메릴린 먼로도 화려한 삶 뒤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하지 않나. 다행히 드라마 속 차무희는 지고지순하고 잘생긴 남주의 사랑으로 본연의 모습을 찾게 된다. 모른 척하고 싶었던 과거와 직면하기도 하지만 사실 드라마는 이 부분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물론 시청자도 그다지.. 드라마를 보는 모두는 신데렐라의 행복보다는 남주와 여주의 달달한 로맨스에 더 관심이 있을 테니까.
인생이 드라마 같으면 얼마나 좋으랴. 인생은 드라마와 판이하게 달라 신데렐라와 왕자의 결혼식이나 차무희와 주호진의 키스로 종지부가 찍히지 않는다. 결혼이 사랑의 끝이 아니듯 말이다.
# 지나치게 완벽해서 비현실적인 드라마
물론 드라마에서 현실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되려 현실감이 없어야 흥행이 되는 듯하기도 하다. 거기서 거기, 지질하고 쳇바퀴 같은, 별 볼 일 없는 일상의 연속을 담은 드라마나 영화를 구독료까지 내면서 볼 이유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드라마는 유독 완벽하다. 지나칠 정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뛰어난 외모의 남자 주인공은 유퀴즈에 나올법한 4개국 통역이 가능하고, 여자 주인공의 미모는 AI가 만들어낸 듯 완벽한 좌우대칭을 선보이며 눈을 홀린다. 캐나다, 이탈리아, 프랑스 로케를 담은 극 중 배경 역시 너무나 아름다워서 지나칠 정도로 인위적이게 느껴진다. 그래서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뭔가 속은 듯한 느낌이 좀 든다.
너무 과하게 비약적인 평인가? 나는 그렇다. 나이 들어 판타지 활성화 기능이 상실돼서 일수도 있지만 너무 예쁘고 너무 멋진 걸 보면 나와 완전하게 동떨어져 있음을 느끼며 호감을 비호감으로 바꾸어 버리는 스위치가 작동되는 것 같다. 어릴 때는 드라마를 보며 나도 신데렐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40대 중반이 되니 금세 현실로 돌아온다. 나쁜 것 같지 않아.
주호진과 차무희가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기고 계속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래. 인생은 계속해서 잘 살아나가는 게 중요 다다. 그 순간만 반짝 잘 되는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