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오해, 사랑이라는 구원

영화 <파반느>를 보고

by 김태경

왕가위 감독이 1990년에 만든 영화 <아비정전>에는 당최 사랑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비(장국영)는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하지만 정착하지 못한 채 뭇 여성들의 마음만 흔드는 바람둥이로 살고, 2시 59분이면 찾아와 1분 동안 같이 있었으니 당신은 이 1분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거라는 아비의 뻐꾸기에 홀려 사랑에 빠진 려진(장만옥)은 결국 아비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아비에게 버려질 것 같은 불안감에 집착적으로 구는 아비의 또 다른 여자 루루(유가령)도 나온다.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사랑'은 보는 것, 듣는 것,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단 한 번에 뒤바꿔 놓을 수 있는 가장 혁신적인 설렘인 동시에 가장 위협적인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감정이라는데 비극이 존재한다. 사랑은 감정인 탓에 식고 시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사랑이 한 가지 모습만이 아니라 우정, 의리, 믿음과 같은 여러 모양으로 진화하여 인생에 배치된다는 걸 겪으며 자라지 못한 이들에게 사랑이 식어버린다는 것은 절망이자 최악이다. 그래서 영화 <아비정전>을 보고 나면 허무함이 몰려온다.

"가엾은 아비.. 내게 왔다면 내가 더 많이 사랑해 줬을 텐데.." 하며 엄마로서 인지 여성으로서 인지 모를 희한한 감정이 아비와 장국영을 구분하지 못한 채 여운으로 남기도 한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파반느>는 아비정전과 여러 면에서 닮아있다.


영화 <아비정전>의 오마주 인 듯한 시작이 이 영화의 전체를 결정한다.

주인공 경록과 미정의 이야기이지만, 영화는 경록의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시작한다. 아비정전 속 장만옥과 비슷한 옷을 입은 경록의 어머니(이봉련 배우)와 말도 없이 들어와 앉아 갈비탕을 후려 먹는 경록의 아버지(박해준 배우)가 만나는 신은 앞으로 보게 될 경록의 이야기에 주춧돌이 된다. 이들이 등장하는 5분 정도의 도입부는 영화가 무엇을 표방하는지, 앞으로 뭘 보여주려고 할는지 예고해 주며 영화를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길게 말로 설명하거나 중간 인서트 삽입 대신 선택한 이 같은 시작은 경록과 미정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하는 동시에 경록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지도록 한다. 뻔뻔한 경록의 아버지를 보여주는 몇 커트에 난데없는 왕가위식 조명과 촬영 기법(?)을 약간 가미함으로 경록의 어머니는 분명 장만옥의 외모는 아닐지언정 아비정전 속 려진과 같은 이미지를 풍기며 사라진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너무 슬프게 그리지 않는 이 도입부에서 보이는 영화의 위트가 마음에 든다.


새로운 두 배우가 주는 풋풋함, 굵직하면서 가벼움에 안성맞춤인 변요한, 그리고 직설적인 연출력

불우한 환경 속에서 외롭게 자랐지만 멋지게 아름다운 남자, 착하고 마음씨 곱지만 영 안 예쁜 여자의 사랑 이야기는 고전적인 클리세이다. 이 영화 속 두 주인공도 그렇다. 경록은 멋진 비율과 얼굴을 가졌지만 완전한 외로움 속에서 무색무취한 존재로 살아가다 미정을 보게 되고, 미정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못났다는 이유로 손가락질당하는 일종의 왕따로 지하실에서 생활한다. 왜 경록과 미정이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고전적이고 뻔한 스토리를 뻔하지 않게 하는 것은 변요한이 분한 요한이라는 인물, 그리고 감각적인 연출 때문이다. 긴 설명이나 교훈, 연민의 이야기는 생략하고 담백하게 두 주인공을 그리며 제삼자로 관객이 되어 혹은 연출자가 된 듯한 요한 캐릭터는 영화가 너무 쳐지지도, 지나치게 감각적으로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잡아준다. 무엇보다 결말이 마음에 든다. 늘 봐왔던 결말 즉 사람들이 바라는 결말도 나오고, 그렇지 않은 결말도 볼 수 있는 건 관객에 대한 감독의 세심한 배려일 수도 있고, 이 영화가 가지는 매력일 수도 있겠다. 원작을 약간만 변형시킨 것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던 듯하다.


사랑이라는 오해, 사랑이라는 구원

경록은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했음에도 사랑을 시작한다. 미정은 이제껏 겪지 못했던 자신을 향한 사랑을 의심한다. 요한은 많은 것을 가졌지만 단 하나, 사랑받지 못함으로 절망의 삶을 살아간다.

내가 사랑하면 상대도 나를 사랑할 거라는 착각, 우리의 사랑이 서로를 향하는 순간 영원하고 진정한 사랑이 시작될 거라는 오해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왜 사랑으로 상처받으면서도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걸까? 사랑의 과정은 오해와 착각의 연속일지라도 사랑의 과정은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구원의 의미가 있기 때문 아닐까?


처음 보는 문상민 배우의 새로운 얼굴과 그래도 신비로운 표정으로 미정을 소화하는 배우 고아성, 변요한 배우의 조합이 좋은 영화다. 이종필 감독이 하고 싶은 걸 앞으로도 쭉쭉 해 내면 좋겠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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