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형제 말고 그냥 평범한 형제로..

정종현의 <특별한 형제들>을 읽고

by 김태경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저것들이 아직 네 발 짐승일 때는 마주 보고 앉아 노는 것을 보며 행복이 별 게 아니구나 하며 남녀 간의 사랑 따위와는 견줄 수 없는 뜨거운 감사와 복에 겨움을 느끼곤 했다.

지금도 다르지는 않다. 투닥거리긴 해도 형이 세상 제일 멋지다며 졸졸 쫓아다니는 작은놈, 동생 손 붙잡고 다니며 잔소리하는 큰 놈을 보고 있노라면, '어미 아비 나이 들어 죽으면 둘이 의지하고 살아야 하느니라'라고 혼잣말을 되뇐다. 그러니 TV 뉴스에 부모 재산 내 것이라며 법정에 가서 다투는 자식들, 명절 때 모여 칼부림하는 자식들 사건소식을 들으면 만신창이가 됐을 그 부모 심정이 짐작되어 한숨 쉬어질 뿐이다.

자식이 착하고 이왕이면 공부 잘해 좋은 대학에서 학업하고 유능한 일꾼으로 자리 잡으면 부모의 일평생 자부심이 된다. 유수 대학이나 세계탑은 아니더라도 '유퀴즈'에 나가 유재석 옆에라도 앉으면 그만한 효도도 없을 것이다.


여기, 우연히 만난 책 <특별한 형제들>에는 두 아들이 남북한 최고대학의 교수가 된 기막힌 사연이 나온다. 그 부모에게는 슬픈 일일까 기쁜 일일까..


평양 출생 정두현(1888년~?), 정광현(1902~1980) 형제는 조국애가 깊고 교육열이 왕성한 부친 밑에서 자랐다. 아주 가난하지는 않았어서 형제 모두 일본 유학하여 형 정두현은 농학과 이학, 의학을 전공했고 동생 정광현은 법학을 전공했다. 당시 북한에는 이학 전공 지식인 교수가 3명뿐이었으므로 정두현은 평양의학전문학교 교장으로 초빙되었다. 이후 그는 김일성종합대학 설립을 주도하고 초대 의학부장이 된다.

동생 정광현은 윤치호 선생의 사위가 되어 경성의 주류사회로 진출하게 된다. 그는 남한에서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여성의 법류적 지위와 남녀평등권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자가 된다. 동생 정광현은 1950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취임하고 이후 미군정에서 법무관과 관재처 차장이 되고 말년은 미국으로 이민해 생을 마감한다.


정두현, 정광현 두 형제는 독립운동에 관여했던 아버지 밑에서 시대 지식인으로 자란다. 이 둘은 각각 평양에서 일본에서 3.1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지만 한국전 휴전 후 중요 지식인으로 각기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과 남한의 서울대학교에 남는다. 남과 북이 서로 원수 같던 휴전 후의 한반도, 상대진영에 가족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상과 생존에 위협이 되었던 시대 아니었나. 이 책의 저자는 정두현과 정광현의 이야기를 '식민과 분단으로 서로를 지운 '평양'의 형제'라는 부제를 붙였다.

<특별한 형제들> 책은 이처럼 파란만장한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때로는 유사한 때로는 정반대의 삶을 선택한 열셋의 특별한 형제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 사료들과 관련자료를 오랫동안 공부해 온 저자의 노력이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는 것 같아 내게는 교훈 있는 뜻깊은 책이었다.


시대의 비극으로 서로의 존재를 비밀로, 없는 존재로 지우며 살았을 형제들의 삶이 눈물겹다.

나는 다행히 시대의 비극 까지는 아니지만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가 있을 때마다 가족들이 모이면 서로 조심한다. 이XX이 싫어 윤XX에게 표를 넘겼던 동생네 부부와 그 반대였던 우리 부부는 대통령의 '대'자도 안 꺼냈다. 속도 모르고 한쪽을 신랄하게 욕하던 아빠의 옆구리만 쿡쿡 찔러대면서 말이다.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 정책임에도 극단적으로 분열된 정치 진영 탓에 가급적 입을 다물고 이야기를 나누지도 듣지도 않으려고 한다. 얼굴 붉히며 상처 주고받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존중은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하건만 모른 척하는 것이 존중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난감할 따름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 형제의 문제인가? 아니면 혐오가 넘쳐나는 시대의 문제인가?


정두현, 정광현 형제는 그날, 자신의 삶이 있던 곳에 있었을 뿐인데 남, 북으로 나뉜 이분법적 틀에 넣어져 서로를 지우며 살아야 했다. 형제 우애는커녕 죽을 때까지 만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역사의 후세로, 그리고 부모가 되어 중년의 나이에 이들의 사연을 읽으니, 가슴이 턱 막힌다.


아들들아.. 싸우더라도 같이 살면서 싸워라.

어디 서로 멀리 떨어져 살지 말고 서로에게 대하는 것이 부모를 대하는 것과 같다는 걸 명심하며 살아라.

너희들이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는 것보다 함께 부대끼며 노년의 의지가 되는 형제로 사는 것이 내겐 더 기쁜 일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