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구 대가리

by 서광


1947년 전라도 광주 부잣집에 첫 손녀가 태어났다. 아들만 셋을 낳으신 할머니. 스무 살 큰 아들에게 꽃다운 열일곱 살 아내가 생겼다. 그다음 해에 첫 손녀를 맞이했다. 남존여비사상이 심하던 그 시절에 딸이 없던 할머니에게는 손녀는 너무나도 귀한 존재였다. 스무 살 아들은 딸을 낳고 7년 동안 군대 생활을 했다. 열여덟 살 며느리와 손녀는 남편과 아빠 없이 며느라기로 살았다.

귀하디 귀한 우리 엄마는 할머니가 너무 없어 키워서 다리가 오다리가 되었다는 우스개 소리를 들었다. 다 큰 손녀를 업고 다니다 넘어지기도 하셨고 잠든 손녀가 할머니 등에 소변을 보기도 했다.


부잣집이니 먹을거리가 풍성했던 시기에 첫 손녀였던 우리 엄마는 입이 짧고 깔끔쟁이 여서 작은 집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본인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갈 정도였다고 한다.

밥그릇에 밥을 떠 놓으면 식는 게 당연한데, 밥이 식었다고 안 먹기 일쑤였다. 할머니는 손녀가 안 먹겠다고 떼쓰면 즉각 고구마, 감자를 삶아 주셨다. 그런 하나뿐인 딸의 모습을 젊었던 외할머니는 용서할 수 없었고, 계모처럼 바느질하는 법, 밥 하는 법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가르치면서 맘에 안 들면 손을 꼬집고 풀을 먹여 놓은 삼베옷을 물어 집어넣고 다시 하라고 소리를 지르며 엄하게 키웠다. 너무 지독하게 엄해서 친엄마가 아닌 줄 알았다고 한다.

‘할머니가 우리 엄마 해주면 안 되잉?’ 울먹이며 이런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이건 냄새난다’ ‘모양이 이상하다’ ‘맵지 않아서 싫다’‘너무 달아서 싫다’등등 온갖 핑계를 대며 삼시 세끼를 밥 대신 고구마, 감자로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군대 간 남편도 없이 시댁 식구들과 농사짓는 일꾼들의 새참이며 삼시 세끼를 챙기느라 계모 같은 외할머니는 어린 딸의 투정을 받아주기는커녕 혼내기에 바빴고, 밥을 먹든 말든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군대 간 남편은 소식도 없으니 얼마나 답답했을지 그 마음을 헤아리기가 어렵다.

입 짧은 우리 엄마가 유일하게 좋아하던 음식은 ‘사철탕’과‘ 조구 대가리’

너무 아이러니하다. 온갖 핑계를 대며 구황작물만 먹던 엄마가 유일하게 먹었던 음식이 ‘사철탕’과 ‘조구 대가리’라니...

귀한 손녀가 너무 먹지를 않으니 아무래도 할머니가 5일장에 자주 데리고 가서 사줬던 음식이 고단백인 ‘사철탕’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마도 엄마는 닭고기인 줄 알고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젊었던 외할아버지가 7년 만에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는 줄줄이 사탕처럼 엄마는 외동딸에서 7남매의 맏딸이 되었다. 넓은 안방에서 먹는 11명 대식구의 식사는 접이식 얇은 양은 상 2개를 나누어, 한쪽은 할아버지, 아버지, 장손이 여유롭게 자리 잡았고, 다른 상에는 나머지 9명이 좁디좁게 앉아서 식사를 했다. 집안의 실세인 할아버지는 장터에서 사 온 김을 각자 한 장씩 나눠주었고, 본인은 두장을 드셨다. 생선도 실한 몸통은 할아버지 상에 있었고, 다른 상에는 누룽지, 간장, 김치, 분리된 생선 잔여물이 있었다. 누구 하나 불평, 불만을 할 수 없는 시대였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영광 굴비를 좋아해서 밥상에는 항상 굴비가 있었다. 바싹하게 구워진 짭조름한 조기 한 젓가락에 간장을 살짝 얹어 먹었던 마른 김. 그게 꿀맛이었다고 한다. 그때부터였는지 엄마는 살은 없었지만 조구 대가리를 조금씩 찢어서 밥 한입을 입에 가득 넣고, 조구 대가리를 이빨로 차근차근 씹으면, 씹을수록 입안에 퍼지는 고소함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훗날 엄마는 어른이 되면 조기와 김을 마음껏 먹겠다고 다짐했었다고 한다.

부잣집 딸이었던 엄마는 가난한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됐다. 술 안 마시고 착하고 성실하다는 이유로 엄마는 가난한 남자를 선택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엄마네 모든 식구들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집이어서 술이라면 진저리가 났었다. 계모와 같았던 젊은 외할머니가 자신의 딸만은 가난해도 좋으니 술 안 마시는 사위한테 시집보내겠다고 다짐했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아빠네는 너무나 가난해서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살았다. 엄마가 시댁에 인사를 하러 간 날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사는구나 ’ 생각했었다.

깔끔쟁이 엄마는 지저분하고 낡은 환경이 문화 충격이었고, 입이 짧아서 주식으로 먹던 고구마, 감자를 아빠네는 주식으로 먹고 있었고, 보리밥도 못 먹고 굶는 날이 많은 집이 너무 놀라웠다. 이불은 걸레보다 못했고 한 방에 열 식구가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결혼하면 출가외인이라고 낯선 환경에 대한 불평, 불만 없이 집안의 대소사를 혼자 짊어지고 지극 정성으로 시누이, 시동생, 시부모님을 봉양하며 엄마는 억척스럽게 30년을 살았다. 40킬로그램 몸무게로 자식 셋을 낳고, 일 년에 10번 정도 제사를 지냈다. 집집마다 제사 음식은 달랐지만 우리 집은 고기보다 조기의 양이 더 많았다. 할머니도 좋아하신다는 이유였지만, 엄마의 최애 음식이니 제삿날만큼은 본인에게 주는 특별 선물이었던 것 같다. 칼집을 낸 큼지막한 조기에 간장과 술, 생강, 양념이 스며들도록 밑간을 해두었다가 찜기에 넣고 실고추로 모양을 내고 한번 쪄낸다. 제사상에 올리고 나서 식구들이 밥을 먹을 때면 쪘던 조기를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바싹 구워낸다. 적절한 양념이 베어 기가 막힌 맛을 낸다. 그때도 엄마는 ‘꼬리’와 ‘조구 대가리’만 공격한다.

‘엄마, 몸통 드세요’ ‘살도 없는데 왜 꼬리랑 머리만 먹어?’

엄마는 ‘생선은 꼬리와 머리가 얼마나 맛있는 줄 아냐?’

그러면서 진짜 몸통은 안 먹는다. 제사 끝나고 음식을 나눠줄 때도 엄마는 ‘조구 대가리’는 빼고 몸통만 싸준다.

GOD의 노래 중에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노래가 있다.

엄마는 진짜 조기 몸통이 맛이 없는 걸까? 가족들 먹으라고 본인은 안 좋아한다고 한 것 아닐까? 진실이 알고 싶어졌다. 며칠 전 진지하게 엄마에게 다시 물었다.

‘엄마, 조구 대가리가 진짜 맛있어?’

엄마는 다른 생선보다 조기는 머리가 진짜 맛있다 하며, ‘너희가 조구 대가리의 고소한 맛을 알아?’ 한다. 경동 시장에는 볏짚으로 엮어놓은 조기 한 두름씩 파는 유명한 곳이 있다. 비싸지도 않은 조기를 꼭 제사 때나 명절 때만 사드린 게 너무 죄송스럽다. 오늘은 엄마가 좋아하는 조기를 사러 서둘러 시장에 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13.웰컴 투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