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by 서광

2023년 1월

관광산업이 직격타를 맞은 코로나가 끝나고 단축 근무에서 정상 근무가 시작되었다. 면세점에 다니고 있던 나는 여전히 입점객은 없고, 환율은 점점 높아져 매출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1인 근무체제가 이어지면서 지루하고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본사에서는 매출 압박과 인원 감축을 해야 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극도에 달했다. 직원들보다 매니저급 이상이 권고사직 대상이었다. 뜬소문으로 불안한 마음은 가득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본사의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퇴사 후에도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 또 고민을 했다.


스케줄 근무를 잘 활용하여 난 한 달에 한번 꼴로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었다. 여행 메이트 친한 언니와 관광버스로 이동하는 국내 여행을 했다. 해외여행과 다르게 가이드가 있고 인원 파악만 하고 도착지에 내려서 몇 시까지 오라는 시간만 알려주고 자유롭게 여행하는 시스템이 너무 편하고 좋았다. 차량당 가이드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몇 번의 여행을 하는 동안 의문이 생긴 건 가이드의 연령대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평균연령 60대쯤 되는 것이다. 최고령 가이드는 75세였다. 서비스업인데 꽤 인상적이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출근해서 여행사 게시판에 질문을 했다.

“00 여행사 담당자님, 여행을 다니다 보니 궁금한 사항이 있어 글을 남깁니다. 귀사의 연령이 높은 가이드분들이 많던데 가이드는 연령 제한이 없는 건가요?” 답변이 왔다.

“00 여행사입니다. 가이드란 직업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가이드는 연령 제한은 없습니다. 곧 성수기라서 추가 모집을 하고 있습니다. 000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난 바로 전화를 했고 일사천리로 면접까지 잡았다. 대부분의 여행사가 종로구에 있는지라, 당연히 종로구라고 생각하고 면접을 잡았는데 면접 장소가 구로였다. 면세점의 어떤 것도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난 권고사직보다는 내가 먼저 사직서를 내고 싶어 휴무날 구로까지 가는 것이 귀찮음을 이겨냈다. 꽤 큰 국내 전문 여행사로 내 이력서를 보고 사장님은 마음에 들어 하며 굳이 가이드하지 않고 사무직으로 한다 해도 조건을 맞춰 주겠다고 했다. 사무직 근무하면서 주말에 가이드해도 된다고도 했다. 호의적인 면접에 현재 상황을 설명하며 면세점 휴무날 가이드 답사부터 경험해 보기로 했다. 아직 퇴사전이니, 일을 하다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면 된다는 생각과 알 수 없는 미래를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나를 위로했다.

23년 4월 10일을 시작으로 주 2회 정도 여행사에서 정해주는 곳으로 답사를 시작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서울역까지 6시 , 어떤 날은 7시까지 가서 기사님, 선배 가이드한테 인사를 하고 그 둘의 간식거리를 챙겨서 나눠주고 눈도장을 찍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빈손으로 갔었는데, 어떤 기사분이 답사 가이드는 간식거리 챙겨 오는 거라는 말과 함께 선배 행세를 했다. 여행을 좋아해서 가이드란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이곳 가이드분들은 평균 연령 60대라 하지 않았던가.

여행사 사장님은 연령 교체를 하고 싶어 했고, 나이 많은 고인 물 가이드분들은 나가지 않고 버티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도는 곳이었다. 답사 가이드라고 온 나에게 달갑게 대해줄 리가 없었다. 본인들 일자리를 빼앗길까 시선은 날카로웠고 전전 긍긍하는 모습이었다.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라는 느낌으로 선배 가이드에게 ‘네’만 반복하며 맨 앞자리에 앉아 보조 역할을 했다. 물을 배분하고 , 시루떡을 나눠주기도 했다. 서산 유기방, 전주 한옥마을& 마이산, 김천 직지사, 속초&강릉 부채길, 안동 순례길, 고성 라벤더마을. 강화도 교동도, 조양방직 총 7번의 각기 다른 선배 가이드와 기사님들과 답사를 했다.


7번의 답사를 끝으로 난 왜 여행사에 고령 가이드들만 남아 있는지 알게 되었다.

첫째, 사장님의 갑질이었다. 여행지마다 사진 첨부와 이동시간을 실시간으로 문자 발송 해야 했다. 날씨와 도로 상황에 따라 가이드가 요령껏 스케줄 순서를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부분까지 사장님의 개입이 있었다. 그나마 젊은 가이드에게는 심하지 않았지만 고령 가이드한테는 전화상으로 막말을 하고 체크하는 것이다.

둘째, 일당 15만 원을 지급했다. 새벽 4시부터 저녁 7~8시 잠실역에 도착하면 퇴근이다. 긴 시간 대비 너무 작은 시급이었다. 고객층도 고령이다 보니 많이 걸어도 문제, 날씨가 더워도 문제, 시간 지키지 않는 고객도 문제, 도로 막힘도 날씨 상황도 모두 가이드의 책임인 것이다. 파주의 출렁다리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여행사 책자에 있는 출렁다리를 보고 본인들이 선택해서 온 건데 너무 높다, 다리가 후덜 거려 못 간다. 언덕이라 무릎 아프다, 밥이 맛이 없다 등등 어이없는 하소연으로 불평 불만하기 일쑤였다.

셋째, 배정 스케줄을 출발하기 전날 오후 4시쯤 문자로 받는다. 배정이 안되더라도 하루 종일 약속을 잡을 수도 없고 , 배정받고 2,3번 일이 생겨 못 간다고 하면 그 이후로는 배정을 거의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성수기라도 해도 한 달에 15번 이상 나가기 힘들 상황이었다. 몸은 고돼도 한 달 수입이 많지 않은 것이다. 이 시스템은 여행사 사장만 돈을 버는 구조였다. 이런 상황이 고령 가이드들만 일하게 되는 것이다. 고령인 그녀들은 일당으로 받는 15만 원이 아주 귀한 돈인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니 일하면서 여행을 한다는 게 참 매력적이라고 착각했다.

답사 가이드에게는 돈은 지급되지 않았고, 그냥 공짜 여행 한다는 개념이었다. 선배 가이드의 보이지 않는 텃세 보다 고령의 나이로 젊은 사장에게 낮은 자세로 ‘네. 네’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니 우리 엄마 일도 아닌데 마음이 무겁고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그녀들은 답사 내내 나에게

“ 가이드 일 하지 마.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려고 해? 돈도 안 되는 일이야. 지금 하고 있는 일 있잖아. 나야 나이가 많은데 이거라도 하면 손주들 용돈도 주고 좋으니까 집에 있으면 뭐 해? 그래서 계속하는 거야, 젊은 사람이 뭐 하러 이거 해”

어떤 일이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 생계로 이어지게 되면 고난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휴무 없이 답사하는 동안 입안은 헐고 온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해보지 않으면 후회하고 미련이 남을 것 같아 퇴사 전 미리 경험해 본 가이드란 새로운 직업은 내 길이 아님을 확인했다. 남 다르게 살고 싶어 항상 안테나를 켜고 무언가를 찾아가며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다. 지금은 에세이도 쓰고 있고 , 플리마켓도 하고 있고 , 독서 모임도 하고 있고, 소상공인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오늘도 수많은 경험을 쌓아가며 내 인생의 스토리텔링을 써 내려가고 있다. 훗날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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