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루 마이 마인드>
인간은 어른이 되기 전 청소년기가 되면 사춘기를 겪게 된다. 기한이 정해져 있지도 않고 언제 끝날지도 몰라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강한 바람과 성난 파도라는 뜻으로 청소년기의 불완전한 심리 상태를 빗대어 사용된다. 이 시기의 청소년은 감성적이고 반항적이다. 부모님보다 친구가 더 좋으며 남몰래 일탈을 즐기기도 한다. 여기 외로운 사춘기 소녀 ‘미아’가 있다. 영화 <블루 마이 마인드> 속 미아는 맞벌이 부모님의 무관심 속에서 외로워하고 전학 간 학교에서 불량 학생들과 어울리며 일탈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이 인물이 일탈만 하는가. 아니다 일탈과 함께 점점 기이하게 바뀌는 미아의 모습이 인상적이며 사춘기의 성장통을 겪는 미아의 모습을 인어로 표현하였다.
친구들과 술과 마약, 도난, 이성과의 성관계 등 일탈을 일삼던 10대 미아에게 첫 월경을 시작하게 되고 그 이후로부터 발가락이 붙는다든지 엄마가 아끼는 금붕어를 먹다가 변기에 흘려보내기도 한다. 현실에서 보기 힘든 일들에 불안해진 미아는 병원에 찾아가지만 합지증을 의심하는 어른(의사)의 눈빛에 도망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발목과 허벅지까지 멍 든 것처럼 까맣게 변해 간다. 심지어 아가미마저 생겨 더욱 심해진 일탈과 친구와 함께 간 파티에서 미아의 다리에 대한 비밀을 들켜 집으로 도망치니 다리가 붙어버리고 꼬리까지 생겨 완전한 인어가 된다. 그런 미아를 가장 친한 친구 기아나가 바다까지 데려다 주고 바다를 헤엄치는 미아를 보여 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서양에서는 ‘Blue’를 우리가 아는 파란색이라는 뜻도 있지만 우울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블루 마이 마인드> 영화 제목처럼 영화의 색감은 내내 푸른 느낌을 잃지 않고 있다. 마치 동이 트기 전 새벽 같은 느낌이었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그 중간이 꼭 미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아의 성장통이 끝난다면 밝은 아침이 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영화는 바람처럼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 인어로 변해가는 미아는 자신의 모습에 혼란스러워지고 다른 친부모님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며 엄마의 방을 뒤져 입양 관련 자료도 찾지만 읽기 어려운 불어로 인해 의심은 풀리지 않는다. 관객은 여기서 의문을 품게 된다. 어쩌다 그가 인어가 되었을까 에 대한 궁금증이다. 영화는 그가 인어가 된 후에도 얘기해 주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얘기해주지 않았던 건 관객이 인어가 된 이유에 주목한 게 아니라 주인공인 미아에게 초점을 맞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사춘기인 미아가 가지고 있는 복잡한 감정들과 혼란과 위기들로 인해 어른(인어)이 되어가는 과정을 더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굳이 꼭 인어일까? 먼저 ‘인어’하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생각이 나는지 묻고 싶다. 상상 속 인물인 인어는 푸른 바다 속 아름다운 꼬리를 가진 모습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미아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가면 미아의 다리는 까매진 채로 붙어버린다. 아침에 다리가 없어지고 생긴 자신의 꼬리를 보고 기겁하고 울며 소리 지른다. 아름다운 꼬리가 아닌 까맣고 괴물이라고 생각들 정도로 기괴한 꼬리의 모습이다. 나는 이 모습을 보고 미아의 사춘기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고 느꼈다. 미아의 속은 이미 우울로 인해 난패되었고 온갖 일탈을 일삼으며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모습들을 미아의 꼬리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다리가 사라진 미아는 기어서 화장실에 간다. 그리고 욕조에 물을 틀어둔 채 그대로 잠이 든다. 물바다가 된 집안이지만 거실을 헤엄치는 미아의 모습은 편안해 보였다.
힘들게 인어가 되었지만 바다까지 가는 모습도 너무나도 험난하다. 이제는 다리가 없어 친구 기아나가 힘겹게 차까지 끌고 가고 바다로 들어가기 위해 모래사장에서 기는 모습이 어른이 되는 과정들은 외롭고 험난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마침내 바다에 들어가게 된 미아는 편안해 보였다. 여기서 바다가 주는 공간의 의미는 곧 자유와 독립이자 인어가 된 미아에겐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식처와 같은 의미가 아닌지 생각하게 됐다.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문득 영화의 제목처럼 ‘Blue‘가 우울 외에도 인어가 된 시점의 미아에게 파란 바다를 뜻한 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춘기의 성장통을 이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부딪히고 이겨내며 불완전한 시기가 지나면 인간은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됨은 곧 자유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책임이라는 부담도 함께 떠안게 된다. 하지만 그 시기의 청소년들은 억압 속에서 자유가 필요했고 그래서 어른인 척 흉내 내던 영화 속 모습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단 한 명도 그들의 행동에 지적하거나 바로 잡아주는 어른들은 나오지 않는다. 사춘기의 나를 돌이켜 보면 나의 감정에 이해하지 못 하는 어른들이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모두 나를 탓하는 말들에 화가 나거나 상처 받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그 시절의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한다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미아의 외로움과 변화에 대해 알아채고 손 내미는 어른이 있었더라면 미아가 자신을 덜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바다로 떠난 미아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