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부터 누릴 수 있는 호사를 마음껏 즐기며 살고 있는 요즘, 2월에서 3월에만 맛볼 수 있는 ‘봄의 전령사’라 불리는 고로쇠 수액 채취에 산을 오르내리는 발걸음이 바쁘다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고로쇠나무의 수액은 봄철에만 마실 수 있는 자연의 귀한 물이다. 고로쇠나무는 겨울 서리에 대비하여 몸의 수분을 모두 빼낸다. 그 뒤 봄이 되면 입이 부르트도록 뿌리부터 나무 구석구석까지 양분을 빨아올리는데 이것을 채취한 물을 고로쇠 수액이라고 한다. 맛은 달짝지근하며 미네랄, 칼슘등 영양분이 풍부하다. 고로쇠는 뼈에 이로운 물이란 뜻으로 ‘골리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2월 중순부터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인해 점차 앞당겨져 올해는 2월을 들어서자마자 고로쇠 채취를 하기 시작한다며 이웃분이 귀띔 해주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변 이웃 분들이 고로쇠 수액을 채취한다고 해도 우리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편은 산속을 헤집고 다니며 고로쇠나무를 찾는 일 뿐만 아니라 나무에 구멍을 뚫는 일이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올해는 남편이 일찌감치 고로쇠나무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이다. 웬일인가 했더니 작년에 윗마을 이웃분이 주신 고로쇠 수액의 달큰한 맛을 못 잊겠단다. 우리도 올해는 한번 해보자며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남편은 일찌감치 집 주변 산속에서 고로쇠나무 몇 그루를 찜해놓았다. 2월이 접어들면서 기다리던 작업은 시작되었다.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나무에 드릴로 작은 구멍을 뚫는다. 그리고 구멍으로 물이 흘러내리도록 연결할 클립, 호스와 흘러내리는 수액을 받아 모을 크고 작은 물통이 필요하다. 처음하는 일이라 기구를 마련하는 경비가 만만치 않았지만 산속에서만 누릴 수 있는 귀한 것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기에 아깝지가 않았다.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하기
남편은 배낭에 설치 기구를 넣어 매고 나는 물통을 들고 산길로 들어섰다. 남편이 미리 찜해 놓은 나무들을 찾아 설치하려고 보니 예전에 사람들이 여기저기 구멍을 뚫어 설치한 흔적들이 있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상처들은 아문다곤 하지만 또 다시 새로운 구멍을 내는 일이 미안했다. 드릴로 구멍을 내면서 “나무야 미안해”라며 용서의 말을 건넸으나 찜찜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걸 어쩌랴. 서로 상생하며 살아야하는 운명이라곤 하지만 괜스레 산속을 오르내리며 쌓인 낙엽에 미끄러지고, 떨어지는 돌멩이를 보며 남편에게 시비를 건다. “집에서 너무 멀지 않느냐” “물 받아오다가 미끄러지면 어쩌냐” “이렇게까지 하며 먹어야 하느냐”며 투정을 부린다. 남편은 “걱정이 많네요!”라며 한마디로 일축해 버린다.
설치 이틀 만에 남편이 수액을 수거하러 산으로 올라간다. 잠시 후 내 앞에 수액이 가득찬 3리터 통을 내민다. 반가움에 냉큼 한 잔 들이키고 나니 며칠 전 찝찝했던 마음이 씻겨져 내려가고 “고마워요”라며 달큰한 말이 입에 걸린다.
그 후로 남편은 자연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배낭에 담고서 산을 오르내리는 일은 일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