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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체유심조 Mar 24. 2024

엄마가 된다는 것은

  자고 일어나니 문득 내가 엄마가 되었더라. 우리 시절 결혼적령기로서는 조금 늦다고 할 수 있는 28살에 결혼을 했다. 그 나이가 되도록 결혼에 대한 환상이나 절실함이 없었기에 ‘내가 엄마가 된다면’에 대한 막연한 꿈같은 것도 없었다. 소개로 만난 사람이 좋았고 서로 나이가 있으니 결혼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오고가고 만난 지 4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다음 해에 첫째 아이를 낳고 시댁으로 들어가 어른들을 모시고 살았다. 낯선 문화 속에서 대식구의 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나를 죽이고 전체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결혼 전 엄마의 말씀처럼 서운한 일도 아쉬운 일도 그저 그렇거니 받아들이고 속으로 삼키며 순종하며 살았다. 그러다보니 어른들의 말씀이 우선이었고 내 감정은 저 가슴 밑바닥에 깔아놓았다.     


  시어른께서는 첫손자인 큰아들에 대한 사랑이 끔찍하셨다. “둥가둥가”하며 안아 주시고 놀아주시며 연신 즐거운 웃음을 지으시곤 하셨다. 시아버님께서는 담배를 즐겨 피우셨다. 어떤 때는 입속의 담배연기를 어린 아들 머리 정수리에 도너츠 모양으로 뱉으시고는 재미있으시다는 듯 “봐라봐라”라며 웃으시던 일도 있었다. 지금 젊은 사람들 같았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저 바라보고 웃을 뿐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는데 있어 나의 생각을 드러내놓을 수 없었고 속상해도 혼자 삭일뿐이었다. 그래서인지 큰 아들은 성인이 되면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옆에서 싫은 내색을 해도 끊을 수 없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그럴때면 괜스레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떠오르는 아이러니에 쓴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한번은 시아버님께서 “니는 아이들이 커서 뭐가 됐으면 좋겠노?”라고 물으셨다. “저는 자기들이 하고 싶은거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니는 아이들한테 욕심도 없나”라며 책망하시듯 말씀하신 적이 있다. “아버님, 엄마의 욕심으로 아이들을 키우는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반박의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와도 그냥 쓸어내렸다. 미덕이라는 말도 안되는 어리석음에 내 자신을 탓할 뿐이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났고 첫째가 5살, 둘째가 3살이 되던 해에 일을 시작했다. 물론 일에 대한 욕심도 있었지만 시집살이에서 내가 숨통이 트일 곳이 필요했다. 바깥일, 집안일, 아이 돌보는 일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고 몸이 부서질 정도로 뛰어 다니다 결국은 내 발길에 내가 넘어지고 말았다.  항상 바쁜 엄마라는 딱지를 훈장처럼 달고 다녔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돌부리에 넘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이들은 바쁜 엄마를 원망하지도 떼를 쓴적도 없었다. 그저 알아서 잘 자라줄 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은 컸고 빚진 마음은 깊어만 갔다.     

  나의 몸과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질 즈음 일도 접고 분가하였다. 그때의 홀가분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고 날개를 단 듯 가벼웠다. 내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걸림이 없어 좋았다. 우리 네 식구가 한 공간에서 뒹굴고 웃고 떠들어도 마음 쓰일 것이 없어 좋았다. 아이들이 학교 마치고 집에 오는 시간이 되면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기다리던 행복감에 젖기도 했다. 요리학원에서 배운 솜씨로 가족들의 입맛에 맞는 밥상을 차리는 일도 즐거운 일이었다. 옛말에 ‘논에 물 들어가는 일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갈 때’가장 행복하다는 말이 왜 있었는지 알겠더라

  큰 아이가 간디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이제는 홀로 먼 곳으로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이도 울었다. 아쉬운 만큼 그립고, 안타까운 만큼 또 만날 날만을 기다리며 목울대가 아려오는 시간을 보냈다. 그 후 대학에 진학하면서 아들 둘을 타지로 떠나보내고 모든 것이 세월 속에 가뭇없어도 가슴 속의 돌덩이가 된 미안함은 쉬 사라지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귀가 열리면서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바쁘기만 했던 엄마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촉촉하게 젖어 온다고 한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무엇보다 든든한 내편이며 응원군이다. 

  이제는 각자 다른 세상에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엄마와 자식의 끈은 내려놓고 각자의 주어진 길로 나아가는데 응원의 박수를 보내자. 여느 엄마들이 모두 그런 것처럼 자식에 대해서만은 담담할 수 없겠지만 더 큰 마음으로 세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엄마도 아들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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