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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체유심조 Jun 27. 2024

매실 따는 날

  평소보다 이른 아침밥을 먹는다. 버섯을 볶고 김가루를 넣어 주먹밥을 만들어 도식락에 담는다. 밥과 함께 먹을 컵라면도 2개 챙겨 넣는다. 물론 빠져서는 안 되는 커피와 시원한 생수는 필수품목이다. 

  밀양 선산으로 남편과 함께 길을 나선다. 작년에 못한 벌초도 하고 매실도 딸 겸 오랜만에 선산을 찾았다.     

  밀양은 시아버님 형제분들의 고향이다. 35년 전, 돌아가신 웃어른도 모시고 당신들도 돌아가신 후 묻힐 곳을 미리 장만해놓고자 세 분께서 마련하신 작은 산이다. 그 후 어르신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밤나무, 매실나무, 자두나무 등을 심으며 산을 가꾸셨다. 정성을 다하는 만큼 나무들은 쑥쑥 자라났다. 열매를 수확하러 산을 오르는 날은 어린애들 소풍가듯 그렇게 즐거워하셨다. 수확의 기쁨은 벌써 다음 해를 기약하며 행복에 젖곤 하셨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서야 하는 나는 즐거웠던 기억이 없다. 어쩌다 쉬는 휴일을 어른들과 함께 산에 오르는 일이 오히려 괴로웠다. 식사 준비와 종종걸음으로 이것저것 시중드는 일이 모두 나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쉬는 날 쉴 수 있도록 배려해주지 않는 시어른들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매실을 사 먹으면 되지 굳이 힘들게 따야 되나하는 억지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힘든데... 나는 쉬고 싶은데... 하는 말이 목구멍을 치받지만 먹을거리를 주섬주섬 챙겨야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작년에는 일 년에 한 번 하는 벌초도 날을 잡고 보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 장대비가 길을 막아버렸다. 멀리서 벌초하려고 왔던 사촌들도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 후로 매년 해왔던 벌초를 하지 못한 불편한 마음이 늘 숙제처럼 남편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고 나 또한 그랬다. 그러다 올해는 매실청을 담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선산 벌초가 생각이 났다. 남편에게 밀양 선산에 가자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 좋아했다. 선산을 오르던 일이 그렇게도 힘든 일이었는데 지난날 기억은 간 곳 없고 문득 선산 매실이 궁금해진 것이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이 이래서 좋은 것 같다. 

  2년 만에 찾은 선산은 사람의 키 높이보다 더 높게 자란 풀이 산 들머리부터 막고 있었다. 겨우 풀을 헤집고 들어가서 남편은 먼저 매실나무가 있는 곳에 벌초를 했다. 매실나무는 어른들 돌아가신 후 전혀 관리를 하지 않아 다른 나뭇가지들과 엉켜서 정글처럼 되어 있었다. 남편이 나뭇가지를 대충정리하고 나면 매실이 달려있는지 살펴본다. 자세히 봐야 가지에 드문드문 몇 개의 매실이 달려있을 뿐이었다. 예전에 어르신들이 열심히 가꾸고 하실 때는 수확 양이 대단했다. 매실나무 가지를 잡고 흔들면 매실이 ‘후두둑’하며 떨어지는 소리가 한편의 교향곡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뭇잎 스치는 소리만 허공에서 맴돌 뿐, 주인 잃은 나무들의 쓸쓸함만이 온 산을 메아리치는 듯했다. 혼자서 하나, 둘 따다 보니 총 7킬로 정도의 매실을 땄다. 그것도 감사했다. 그동안 남편은 억센 풀을 베어내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조부모 산소 주변은 어디가 어딘지 모를 정도로 풀이 우거져 있었다. 6월 땡볕이 한여름 땡볕보다 더 따가웠지만 벌서는 셈 치고 나도 벌초하는 일을 거들었다. 남편이 예초기로 풀을 자르면 갈퀴로 풀을 모아서 갖다버렸다.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그늘에 앉아 잠시 준비해 간 점심을 먹은 후 숨 돌릴 새도 없이 남편은 예초기를 돌렸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는 죄송함 때문일까? 남편은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말 한마디 없이 일만 할 뿐이다. 겨우 일을 마무리하고 그늘에 앉아 땀을 닦으며 남편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선산 돌보는 일은 우리가 해야겠다고...     

  세월에 장사 없다고 선산 일을 그렇게 즐거워하시던 어르신들은 모두 하늘나라로 가셨다. 양지 바른 곳에 당신들이 묻힐 곳이라며 손수 삽으로 땅을 고르고 돌을 쌓았던 땅에는 풀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신들의 후손들은 선산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관심조차 없다. 하지만 남편은 장손이라는 이유로, 나는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오늘도 선산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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