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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체유심조 Sep 10. 2023

나는 지리산에 산다

나는 지리산에 산다

          

지리산 해발 400미터 고지에 외딴집이 있다. 집 주변이 온통 산이 막혀있다고 해서 마근담이라 불리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곳이다. 주변으로 세컨하우스로 사용하는 몇 채의 농막이 있긴 하지만 주말이 되어야 만날 수 있는 이웃들이다. 집 옆으로 둘러쳐 있는 숲길은 운리에서 덕산까지 지리산둘레길 8코스다. 지리산둘레길은 우리가 마근담에 터를 잡게 된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아랫마을까지 이어지는 5km 숲길은 포장되지 않은 길이라 차로 다니기에 불편한 점이 많긴 하지만 길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즐거움은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충만감에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마근담은 산과 계곡이 사람들 손에 의해 개발되거나 훼손되지 않은 원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깊은 산속이다. 평소에도 마을을 오르내리는 차 소리 외에는 하루 종일 사람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고 산길을 따라 쭉 이어지는 계곡물소리와 산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 새소리만 들려온다. 그러다 주말이 되면 자박자박, 두런두런 둘레길을 걷는 이들의 기척이 산속의 적막을 깨우기도 한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 멋진 전망대가 우리집 뒤편 언덕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산속 풍광은 엄마가 아기를 감싸 안듯 산이 골짜기를 품고 있는 한 폭의 그림이다. 보는 사람마다 감탄사와 함께 언덕 아래에 사는 우리에게 “천국에서 사시는군요.” “너무 좋은 곳에 사시네요.”하며 부러움의 눈길을 보낸다. 그럴 때면 내가 괜스레 행운아가 된 듯 우쭐함에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 지리산 깊은 산속 한 귀퉁이에 터를 잡고, 집을 짓고, 텃밭을 일구고, 화초를 가꾸며 누리는 자연에서의 행복이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 그러다가도 어느 것 하나 내 것이라고 감히 우길 것이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면 숙연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집 뒤편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전경






집 옆 둘레길 8코스








지리산 시인 이원규는 ‘행여 견딜 만하다면 지리산에 제발 오지 마시라’ 했다. 하지만 나는 도시의 답답한 회색 콘크리트 생활에 편히 숨 쉴 곳이 절실했고 그것이 나를 자연 속으로 떠밀어냈다. 자연으로 떠밀려 배고픈 하이에나가 먹이를 찾듯 헉헉거리며 이 산 저 산을 헤매었다. 그러다 발길 닿은 지리산은 친정에 온 듯 따뜻이 맞아 주었고 편히 쉬어 갈 자리를 내어주었다.

지리산은 언제나 내가 숨 쉬고 살아가고픈, 꼭 살고 싶은 곳으로 서서히 마음속에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지리산을 오가며 세월을 보내다가 사회적 책임과 내 삶에 주어진 숙제들을 다 끝내고나면 미련 없이 지리산으로 가리라 했다. 간절함은 곧 현실로 이루어졌다. 터를 마련하기 위해 그 먼 길을 힘든 줄도 모르고 오고 가며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았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다. 지리산은 결코 내가 원하는 땅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붙일 곳이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지리산 곳곳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간절히 원하고 정성을 다하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우연히 지리산을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한 마근담에 인연이 닿았다. 집터를 보자마자 주변 산새에 홀딱 마음을 빼앗겨 버렸고 어떤 의심과 주저함도 없이 집 짓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예상했던 2021년 7월에 김해에 살던 집을 정리하고 마근담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 가까운 지인들은 우리 집 주변 풍광에 눈이 둥그레지고 깊은 산속, 외딴집이라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랜다. 하나같이 입을 모아 “무섭고 외롭지 않냐”고 염려스러운 듯 물어본다. “사람이 무섭지 산속에 사는 짐승들은 무서운 게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사람들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듯 갸우뚱한다. 나는 더 신이 나서 오히려 산이 우리를 감싸주고 있어 든든하고 다람쥐, 고라니 등 산속동물들이 우리의 이웃이기에 더 친근하다고 자랑하듯 말한다.

산속 외딴집에서 걸림 없이 외로움과 고독함을 오롯이 즐길 수 있어 평안하다. 아침마다 앞산 뒷산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에 상쾌한 하루를 시작한다. 숲속 순백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온몸에 생기가 꿈틀거리는 여기가 지상 낙원이다. 지리산이 내어주는 품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다가 때를 기다리는 다른 인연이 있다면 흔쾌히 내어주고 조용히 물러가는 것이 지리산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길가에 무심히 지나치는 이름 모를 들풀 하나 들꽃 하나도 유심히 들여다보면 아름답다. 돌 틈 사이를 비집고 뿌리를 내어 꿋꿋이 자라는 소나무를 보면 차라리 경건하기까지 하다. 이것이 우리가 자연을 가까이하고 아껴야 하는 이유다. 대자연은 도시인들의 회색빛 감성을 초록 감성으로 물들게 하고 활기찬 생명의 에너지로 솟아나게 한다.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일지라도 다정히 미소 지으며 칭찬해주며 함께라는 공존의 힘으로 빛나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의 근원이 자연이다. 언제나 큰 품으로 열려 있는 그 안에서 누구든 평안을 누릴 수 있기에 길고 긴 숲속 길을 걷고 또 걷는다.

나는 지금 지리산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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