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대수석 입학과 학고
당신이 불쌍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나는 모른다.
그러면 나 본인은 아냐? 글쎄..
내가 고등학교에 올라가 열심히 입시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것을 빼고 봐도, 할 수 있는데 안 했다고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것에 반박할 수 없다.
그러면 공부를 안 한 것이 내 불합격의 원인일까?
고3 19살이 벌써 3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생각했을 때, 그 당시에 내가 가장 하면 안 되는 것은 바로
다들 힘든데 나만 유난이야.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선생님들이 그러셨다.
다들 힘드니 힘을 조금만 더 내자.
물론 다들 힘든 것 맞다.
물론 나만 유달리 힘든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객관적인 수치로 환산하면 나보다 힘든 사람은 널려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성공하려면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배워온 우리에게,
노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의지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다 배워온 우리에게,
큰 자책의 발판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아 노력만 하면 되는데, 나는 이것도 안되네?
아 나는 의지가 부족하구나. 아 나는 자격이 없구나.
하지만 생각보다 성공은 노력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쟤’의 노력이 어쩌면 나보다 적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내가 힘든 것이 유난히 힘든 것일지 모른다.
어쩌면 내가 제일 힘든 것일지 모른다.
이 말이, 내가 제일 힘드니까 놓으라는 뜻이 아니다.
‘나’의 힘듦이, 유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힘드니까, 힘이 드는지 안 드는지 모르는 ‘쟤’와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다.
비교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지쳤으니까,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19살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지쳤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뒤처지는 것이 아니다.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사실, 뒤처지는 것도, 실패하는 것도
나쁜 것이 아니다.
.
내가 지금 타자를 치고 있는 이 순간 하나하나도,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이 소중한 순간이 자책으로 가득 차는 것은 너무 슬프지 않은가.
나도 세상 물정 잘 모르게 짧은 삶을 살았지만,
적어도 이게 아니란 것은 짧은 경험 속에 알고 있다.
선생님들이 그랬다.
부모님이 그랬다.
대학 가면 모든 게 나아질 거야.
서울의 최상위권에 평생을 바칠 듯이 입시해 대학을 간 사람들은,
현실을 지불해 미래를 바라보았는데,
결국 현실에 지쳐 미래를 포기한다.
현실을 지불했는데, 미래가 보이지 않아 본인을 잃어버렸다.
놓아버렸다.
서울대입구역 자취촌에서 발견된 본인을 놓아준 사람,
자주 있다고, 익숙하다고 하던 경찰의 말.
여러 동기의 식에 가는 언니, 오빠들.
어쩌면 나의 미래, 내 친구의 미래.
내가 지금까지 본 나름 행복한 사람들 중 여럿은,
현실을 지불하지 않아 최상위권 대학에 가지 못했지만,
현실을 살아간다.
‘살아’ 간다.
내가 원래 지망하던 대학에서 낮춰 지원했으니,
붙을 줄은 알았지만 단대수석이 나올 줄은 몰랐다.
제주도에 내려와서 다 행복할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갈 줄은 알았지만
또 다른 어려움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아직 성적표를 받진 않았지만, 학고일 것이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나는 성적보다 내가 우선이라, 나의 현재를 선택한 것뿐이다.
다른 동기들이 현재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나의 현재는 이것이었던 것이다.
지인이 하는 이야기에서,
팀플에서 한 팀원이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다 하며 미안해했다고 한다.
모두가 힘들고, 모두가 정신과에 다니는데,
왜 본인만 유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쩌면 제일 유난인 나는 많이 슬펐다.
나는, 너는
본인을 제일 불쌍해했으면 좋겠다.
나의 힘듦을 제일 유난 떨었으면 좋겠다.
남이 팔이 잘려도, 나의 손톱 밑 가시가 제일 아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