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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얼리 Jun 01. 2022

불에 타야만 찾는 곳

미래도시 용산, 랜드마크 아래 노숙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화재 현장 진입로에 안전선이 둘러져있다.


밤 11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흔한 가로등 불빛조차 비추질 않아 앞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아차리기 어렵다. 흙길을 조심스레 밟으며 둘러본다. 괜한 소리를 냈다가 이 고요한 텐트촌의 잠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컴컴함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가슴을 펴고 스마트폰을 열어 과감하게, 그리고 잽싸게 영상을 찍었다. 화면으로는 ‘서울 소방 – 접근 금지’라 적힌 노란 띠만 보였다.


약속을 위해 을지로를 향하는데 화재 제보를 받았다. 용산역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단다. 확인해보니 용산역 다리 아래 노숙인 텐트촌에서 불이난 거였다. 인명피해는 없고 텐트 2개가 탄 크지 않은 화재지만, 뉴스거리는 될 수 있다. 용산으로 옮겨온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과 1km만 떨어져 있는데다 집무실을 옮기기 전 철거 문제가 불거졌던 곳이기 때문이다.


용산역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겨우 텐트 한두 개를 비춘다.


용산역 3번 출구로 나가면 텐트촌이 나온다던데…. 3번 출구에서 익숙한 길로 걷다보니 줄곧 30분을 걸어도 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한 바퀴를 빙 둘러 출발지인 3번 출구로 가려는데, 길이 있나 싶은 곳에 다리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가로등은 계단 아래를 외면하고 있었다.


텐트촌은 용산역사와 서울드래곤시티를 잇는 구름다리 아래에 있다. 국토교통부 소유 철도 정비창 부지다. 공터였던 20년 전부터 집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텐트나 대충 두른 천막을 집 삼아 생활하고 터전을 만들었다. 현재도 각기 다른 사연으로 모인 20여 명의 노숙인이 살고 있다. 적게는 수개월, 많게는 20년을 생활한 사람들이다.


이름 그대로 캠핑용 텐트도 있지만 플래카드로 지붕을, 썩어가는 나무판자로 바닥을 삼기도 했다. 누런 비닐하우스용 비닐과 보온 재료를 얽어 만들기도 했다. 사람 한두 명 겨우 뉘일 만한 공간이다. 이 ‘집’들은 나보다 키도 작다. 나무 사이를 이은 빨랫줄에 빨래가 널려 있다. 냄비에는 음식이 눌어붙어 있고, 그 옆에는 부탄가스 통이 널부러졌다. 터질 듯한 쓰레기봉투가 텐트보다 높이 곳곳에 쌓여 있다. 용산역에서 새어나온 빛이 비추는 쪽에서 겨우 확인한 광경이다.


나무 판자는 거주 공간 내 바닥으로 추정된다. 화재 흔적이 선명하다.


다음날 아침 다시 텐트촌을 찾았다. 어젯밤엔 어두워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 됐지만, 탄내만 따라가도 불이 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분명 텐트 2개가 탔다고 했는데 텐트는 온데간데 없고 쓰레기만 남았다. 화재로 일부 타버린 짐의 형체가 아니었다. 정체 모를 털이 뒤엉킨 의자, 때만 잔뜩 낀 이불, 돗자리와 십수 개의 부탄가스 통, 라면봉지, 옷가지도 보였다. 분명 쓰레기다.


의용소방대가 포대자루를 가져왔다. 모자에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은 채 쓰레기를 뒤적이더니 양손으로 집어 포대자루에 담았다. 이렇게 부지런히 100번은 끌어넣어야 할 양이었다. 뒤적일 때마다 매캐한 냄새와 오물 냄새가 섞여 공간을 메웠다. 다섯 포대쯤 꽉 채웠을 때 노숙인들이 하나둘 근처로 모였다. “흔적도 없이 싹 다 치워주쇼.”


의용소방대가 쓰레기를 담고 있다. 오른쪽 천막은 광수 씨의 집.


불에 탄 텐트 바로 옆집에 사는 광수(가명) 씨는 화가 잔뜩 나있었다. 다름 아닌 옆집 정현(가명) 씨에게 말이다. 그는 화재 원인을 아느냐는 내 질문에 “이렇게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는데 불이 안 나겠어요?” 반문했다. 쌓인 쓰레기는 생활하다 나온 폐기물이 아니었다. 정현 씨가 자기 소지품이라며 차곡차곡 쌓아둔 물건들이란다. “기자 양반, 이게 어딜 봐서 짐이에요? 그냥 쓰레기지.” 다른 켠에도 수집품들이 2m가량 쌓여 있다. 정현 씨가 들여왔다는 여행용 캐리어를 열어보니 다 먹은 흔적만 남은 컵라면 용기와 새 라면봉지가 함께 쏟아져 나왔다.


하얗게 샌 머리가 발끝까지 닿는 여성이 다가왔다. 길고 풍성한 머리는 아기를 포대에 감싸듯 모두 남색 천 안에 가뒀다. 우산, 과일, 플라스틱 용기를 담은 비닐봉지 네 개를 끙끙거리며 챙겨 왔다. 정현 씨다. “누구 마음대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요? 이거 다 내 소지품이에요.”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방화범을 잡아야 한다”며 화재 현장을 있는 그대로 두라고 했다. 분명 광수 씨가 불을 질렀을 거라며.


“아저씨 어제 배급 몇 시였어요?” 배급은 5시부터다. “어, 그래. 그때네. 불 난 게 딱 5시 40분이었으니까 다들 밥 받으러 갔을 때 불 질렀네. 맞죠?” 고성과 욕설이 오가기 시작했다. 쓰레기 때문에 냄새 나 못 산다는 광수 씨는 “그래! 내가 방화범이다! 오늘도 불 질러서 다 태워버리는 게 낫지!” 하고 혀를 끌끌 차며 자리를 옮겼다. 경찰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나 방화 가능성은 적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현 씨가 '소지품'이라 했던 물건들.


정현 씨는 이 안에 중요한 물건이 많다고 했다. 의용소방대원은 정현 씨 성화에 못이겨 거뒀던 ‘쓰레기’들을 다시 돌려놓고 돌아갔다. 주민들 모두 욕설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문가에 따르면 정현 씨는 저장강박증일 확률이 높다. 고령층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이 질환은 물건을 저장하지 못하면 불안증세를 보인다. 어떤 물건이 가치가 있는지 평가하는 능력이 손상돼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곳에선 그저 비난의 대상이다.


또 다른 주민 석현(가명) 씨는 화재 발생 일주일이 지난 아직까지도 밤에 제대로 잠을 못 이룬다. 혹시나 또 불이 날까, 너무 쉽게 옮겨 붙을까, 홀라당 타버릴까봐 마음 졸이는 거다. 석현 씨는 어눌한 말투로 말했다. “이제는 여기 사는 게 지겨워. 나 안 그래도 저기 원래 살던 집이 철거돼서 옮겼거든요? 옮기자마자 불이 났어요. 그냥 다리 뻗고 잠 자게만 해주면 좋겠어.”


텐트촌 주변은 공사장이다. 노후된 육교 대신 용산역과 드래곤시티를 잇는 새 구름다리를 올해 안에 짓겠다는 구상인데, 시공사는 지난 4월 그 아래 3개의 텐트를 철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정작 거주민 석현 씨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시공사는 돈을 줄 테니 옮기라 했지만 어디로 옮기란 걸까. 결국 복작복작하게 모인 다른 텐트들 사이에 끼어 자리 잡았다. 정확히 한 달하고 열흘 뒤 불이 났다.


국토교통부 지침에 따르면 ‘컨테이너 움막 등에 3개월 이상 거주한 자’는 임대주택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신청을 담당하는 용산구는 노숙인에게 “전입신고가 안 돼 있어 우리 구민이 아니라” 답하더니, 이후에는 “3개월 이상 거주한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얼마 전 국토부에서 “지원 제도의 취지를 살려 검토하라” 의견을 주었지만, 용산구가 소극 행정을 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노숙인 상담 일지만 봐도 이곳에 머문 기간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행 육교 창문 너머로 텐트촌이 보인다.


그러나 과연 내가 지자체를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어디 사냐 물었을 때 “용산 살아요” 자랑스럽게 대답만 7년째 하고 있다. 약자를 위하겠다며 기자 생활한지도 2년째, 용산 지역 사건을 맡은 지도 6개월이 됐다. 부끄럽게도 나는 텐트촌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호화로운 호캉스를 보내고 싶다며 호텔을 찾아갈 때도 보행육교 창문 너머 보란 듯이 자리한 텐트들은 보지 못했다.


밤 11시, 사실 나는 누군가 나타나 해코지하진 않을까 두려움에 떨었다. 어둠 속에서 흉기를 들고 나타날 것만 같았다. 뒤에서 덮칠 것처럼 느껴져 사방을 벌벌 떨며 살폈다. 겁이 많은 탓도 있겠으나, 분명 노숙인들의 집결지였기 때문에, 그 편견 아래에서 무의식적으로 온갖 상상을 한 걸 테지. 정녕 한 치 앞의 위험을 맞닥뜨린 건 내가 아닌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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