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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얼리 Mar 13. 2023

'집창촌'을 들여다봤다

성매매 첫 번째 이야기


마산 서성동 집결지


2019년 창원시 관계자들이 서성동 성매매 집결지 일대에 CCTV를 설치하고 있다. / 출처 경남신문


  처음 성매매 집결지를 본 순간이 선명하다. 8년 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던 길, 한 골목 입구에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이라 적힌 현수막이 높이 걸려 있었다. 맞은편 인도에서 건너다보며 ‘뭐지?’ 싶었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유리문들이 즐비해있었고 사람은 없었다. 일을 마치고 꼭 정체를 확인하고 싶어 ‘그 골목’이 있는 쪽으로 걸었다.


  컴컴한 저녁이었고, 다시 현수막이 보이기도 전에 유리 앞에 서있던, 호피 무늬 속옷만 입은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아 무단횡단을 해버렸다. ‘그 여성’이 무서웠지만 호기심은 여전해 천천히 걸었다. 진한 썬팅으로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승용차가 골목으로 들어갔다.


  순간, ‘그 여성’을 비롯한 맞은편 가게, 옆 가게 여성들이 다급히 유리문 밖으로 나왔다. 역시 모두 속옷 차림. 운전석과 조수석 창문을 두드리며 오라는 손짓을 했다. 차가 그대로 안쪽으로 들어가자 몇 걸음 쫓아가기도 했는데, 그 뒤로 늘어선 가게들에서 여성들이 끊임없이 하나 둘씩 나왔다. 차량이 멈추는 걸 보진 못했다.


  이어서 패딩 차림으로 자전거를 탄 학생이 골목으로 들어서더니, 전력으로 속도를 내며 달렸다. 여성들은 힐끗 보더니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나가!”라는 소리만 들렸다. 지도에서 ‘경찰서’를 검색해 가장 가까운 지구대에 전화했다(이제 보니 이름이 ‘남성지구대’였다). “성매매 불법 아닌가요?” 물었다.


  “불법이죠.” 당연하다는 듯 대답이 돌아왔고,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계속해서 나와 경찰의 대화. “그럼 없애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성매매는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잡는 게 쉽지 않아요. 성기 삽입이 입증돼야 하거든요.” “청소년 출입을 못하게 하는 건 경찰들도 성매매한다는 걸 아는 거잖아요.” “알죠. 암묵적으로는 아는데, 현장을 못 잡는 거죠.”


  행인이 찰나에도 골목으로 들어가는 남성을 발견하는 마당에, 경찰이 이거 하나 못 잡는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 전화를 친절히 받아준 경찰관의 잘못은 아닐 터라 전화를 끊었지만, 찝찝함이 남았다. 사실 무서움이 컸다. 왜 공포를 느꼈을까? 눈이 마주친 나에게 ‘뭘 보냐’며 나무랄까봐? ‘그 여성’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는데 벌벌 떨며 집을 향했다.


  ‘불법, 악, 나쁜 행위’가 너무나도 보란듯이 눈앞에 있어 충격이었던 거다. 외진 데도 아니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내가 일부러 찾아가지 않았는데도 큰 도로를 따라 걷다 만났으니까. 최근 기사를 살펴보니 ‘그 골목’이 2024년 12월까지 문화공원으로 바뀐단다.



성매매 여성이 쓴 에세이


 

  내게 ‘불법 행위자’일 뿐이던 성매매 여성의 이야기를 들은 건 지금은 없어진 뉴미디어, <닷페이스>를 통해서였다. 20년 간 성매매업에 종사했던 여성 ‘봄날(가명)’의 이야기였고, 나는 책을 통해 더 깊숙이 ‘그 세계’를 열고자 했다. 저녁 늦게 책을 펼쳤는데 다시 덮을 수가 없었다.


(**닷페이스 영상에서 발췌했고 내용의 왜곡이 없게 정리했습니다.)


나는 20년 간 성매매를 경험한 당사자다.


친구랑 나는 성매매가 뭔지도, 몸을 파는 게 뭔지도 몰랐다. 분위기 맞춰주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노래방에서 구매자들이 2차(성매매)를 간간이 요구했고 업주들도 2차를 나가라 이야기했다. 그만 두고 싶었는데 갈 데가 없었다. 더 가난한 우리 집만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래방에 종종 룸살롱 업주들이 왔다. 룸살롱 사장은 “오빠 가게 오면 2차 안 가도 된다”고 했다. 대신 홀복이라 부르는 옷을 따로 사야 했다. 지정 매장에서 비싼 옷을 여러 벌 사야 했고 모두 내 빚이 됐다. 업주는 내가 한 달 동안 번 돈에서 홀복비, 사우나비, 미용비 등을 빼고 나눠줬다.


몇 테이블을 뛰어서 얼마를 벌었는지 꼼꼼히 적어놓지 못했다. 업주는 “빚만 750만 원이다. 어떻게 갚을래?” 했다. 울고불고 해도 소용없었다. 업주는 이제부터 2차를 나가 이 돈을 다 갚으라고 했다. 지각비, 결근비, 생리 체크를 제대로 안 하면 벌금도 떼겠다고 했다. 악착같이, 지각 한번 안 하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손이 떨려도, 2차까지 열심히 나가라는 대로 다 나갔다. 남는 건 위장병, 자궁 염증, 그리고 임신이었다. 임신중절수술을 하고 3일 만에 업소로 돌아가니 총 90만 원의 결근비를 달라고 했다.


성매매 업주들은 흔쾌히 여성들에게 큰돈을 선불로 준다. 이 빚에는 10~30%에 달하는 이자가 붙고, 여성이 성매매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된다. 너무 빠르게 빚이 불어나, 성매매를 벗어나 갚을 방법도 없다. 손님들의 외상값가지 모두 빚이 됐다. ‘네가 쓴 돈이니까 네가 갚아야지’ 나도 내가 썼으니 갚아야 하는 줄 알고 죽어라 일했다. 그런데 이자율 30%면 못 갚는다고 봐야하지 않나. 아무것도 모르고 성매매에 발을 들였다고 하면 사람들은 비웃는다. 그런데 이런 구조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으며, 그렇다면 여기서 일했을까. “언니, 이렇게 빚이 많이 생길 줄 몰랐어”라 말하던 동생은 며칠 뒤 자살했다.


어떻게 보면 자발적이고, 어떻게 보면 비자발적인 거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성매매 여성이 과연 그걸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성매매 여성이 되고자 했던 게 아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자원이 없는 여성, 빈곤한 여성, 가정이 해체된 여성은 성매매를 쉽게 강요당하고 성매매 기회에 쉽게 노출된다. 내가 만약에 아들이었으면 가난은 했겠지만 성매매를 했겠나? 이 사회가 강요를 했을까?


-닷페이스 <“왜 성매매를 못 빠져나왔냐”고요?>


  다 옮기지 못한 내용들이 너무나 적나라했다. 읽다 고통스러워 가슴을 쳤다가, 다시 읽다가 천장을 바라봤다가를 반복했다. 성매매에서는 등가 교환이 이뤄지지 않는다. 남성이 성을 구매한다고 하지만, 단순히 성관계만 원하지 않는다. 사실상 여성의 인격까지 구매한 냥 대한다. 원치 않는 접촉도 감내해야 하고 폭행과 폭언도 잦은 구조.


  착잡했다. 남 일이라 생각했던 성매매, 알고 보니 나는 운 좋게도 강요받는 환경에 노출되지 않았다. 아무도 성매매를 내게 선택지라고 내밀지 않았을 뿐이었다. 결국 울면서 당시 깨어 있던 남자친구에게 전화했다. 새벽 3시였다. 성매매를 했던 여성이 쓴 책을 읽었다고, 폭력적인 상황들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질문들이 나왔다.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사람이야?”


  “성매매 불법이잖아. 그걸 하게 만든 사람들은 당연히 나쁘지. 근데 유입된 게 정말 자의적인지, 타의적인지는 크게 다르지 않나?”


  “왜 성매매 구조가 폭력인지 모르겠어.”


  울분에 차서 대답하고, 한숨을 푹푹 쉬며 설명했다. “책을 한번 읽어보면 안 될까?” 물었지만 “자발적 성매매 여성이면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 대답했다. 실랑이가 반복되자 그는 통화를 하며 잠들었다 깼다. 결국 우리 집에 있던 그의 소지품들을 몽땅 챙겨 다음날 가져다주었다. 그의 질문은 수많은 사람들이 성매매 여성에게 던졌던, 그래서 여성들을 더 숨게 했던 질문이었다. (만약 지금 시기, 같은 상황이었으면 결말은 달랐을 거다. 나는 당시 그에 대한 이해와 인내심이 부족했다.)



수원역 집결지



  누군가 내게 성매매 집결지의 결말을 물었다면 ‘수원역’이라 대답했을 거다. 2년 전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 폐쇄 이후 그곳의 존재를 남긴 기획 전시를 보았다. 집결지의 역사가 담긴 파일들이 놓여있었고, 여성 종사자들이 겪은 인권 침해가 음성으로, 글로 남아있었다. 그저 ‘이곳에 있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여성들의 속옷을 엮어 만든 작품도, 여성들의 앞날에 대한 희망을 담은 수놓은 천도 보았다.


  2평 남짓한 전시 공간을 한 시간 반이나 보고도 모자라 집결지 일대를 찾았다. 오락실이 들어선 입구는 화려했고, 안쪽은 익숙한 유리문이 보였다. 유리문에는 전시에서 봤던 작가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또 다른 전시 공간인 거다. 한쪽은 건물을 허물어 공사판이고, 다른 쪽은 담뱃갑과 꽁초만 쌓인 채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됐다.


  유리문은 그렇게 굳게 닫혔는데, 불투명한 문이 남았다. ‘다방’, ‘노래바’, ‘방석방(검색하다보니 ‘룸살롱 비켜! 방석집 뜬다, 화끈서비스로 인기 몰이중’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이 기자는 괜찮은 걸까?)’ 등 성매매 업소들이 곳곳에 보였다. 안을 볼 수 없도록 시트지를 덕지덕지 붙인 업소들 문에는 “청소년 출입 금지” 안내가 붙었다.


  비록 성매매는 잔존했지만 수원역 집결지 폐쇄는 선례일지어다. 안타까운 성매매 종사자들, 아니 성매매라는 착취의 피해자들, 번듯한 직업을 찾아가길…. 잠깐, 그럼 네덜란드에서 본 홍등가의 여성들도 마찬가지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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