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뷰 오피스텔과 푸세식 화장실
그의 프로포즈를 거절했다. 대신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무엇을?" 여러 번 되물었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뭐든 같이 하면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적인 말들이 쏟아졌다. 난 비관으로 화답했다. 네가 어떻게? 우린 헤어졌다.
비행기 좌석은 하늘 위 계급이라 불린다. 모 드라마에 이런 대사도 있다. "너 세상에서 완벽하게 계급이 존재하는 곳이 어딘지 알아? 비행기 안이야. 퍼스트, 비즈니스, 이코노미 그 사이엔 달랑 커튼 하나인데 아무도 그걸 못 넘어." 버스에도 서열이 있다. 몇 만 원 차이 나는 프리미엄, 고속, 일반 버스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도시로 향하는 버스와 군 단위 시골이 목적지인 버스는 출발지부터 다르다. 애초에 공간이 분리돼있다.
신세계백화점이 붙어 있는 고속터미널로는 내 집에 갈 수 없다. 프리미엄 버스도 없고 '시외버스'라 퉁쳐진 낡은 버스들뿐이다. 버스 바깥엔 논과 밭, 농산물이 그려진 광고가 붙어 있다. 목적지가 여러 개 적히기도 한다. 한 지역만 가기엔 탑승자가 적으므로 여러 지역을 경유해서 간다. 하루 4대, 2~3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출발하기 때문에 하나를 놓치면 꼼짝없이 발이 묶인다. 사람들은 명절에 잔소리를 듣기 싫어한다지만, 난 버스 어디서 타냐는 질문이 가장 싫다. 뒤이어 왜 고속터미널로는 못 가냐는 악의 없는 궁금증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내 위치를 곱씹어야 한다.
서울에서 내 집은 한강뷰다. 한강이 슬쩍 보이는 이촌동 오피스텔 15층. 누군가 집에 데려다 줄 때, 집이 어디냐 물을 때, 택시를 탈 때 거리낌 없이 알려줄 수 있고 흔쾌히 집에 초대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집'이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아닌 내가 소유한 집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는 푼돈을 얹었을 뿐 친구의 아량으로 함께 살게 된 집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해외 연수를 간 사이 혼자 살고 있지만 남은 기간은 1년이다. 왠지 남의 신분을 훔쳐 대신 살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너 좋은 집 산다" 했을 때 굳이 친구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므로.
'할머니 냄새'가 나는 시골 터미널에 도착했다. 시간 맞춰 마중 나오면 된다고 해도, 내가 도착 시간을 일부러 30분 늦춰 말해도, 아버지의 차는 항상 터미널에 먼저 와있다. 그 유난스러움이 자주 신경질난다. 침대도 내 방에만 놓여 있다. 기껏해야 1년에 서너 번 올까말까인데 말이다. 아버지는 밤송이를 주우러 가야 한다며 구멍 뚫린 작업복을 입으셨고, 어머니는 나보다 나이 많은 상을 펴며 반찬을 내어놓으셨다.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고 창틀까지 모두 새로 페인트칠 했지만 냄새는 숨길 수 없었다. 이 집에서도 '할머니 냄새'가 난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벼를 벴다. 중학생 때는 주전자로 막걸리를 날랐고, 고등학교는 언덕을 넘어가며 겨우 다녔다. 아버지는 식사를 마치면 밥상에서 이를 쑤신다. 아무데서나 트름을 하고, 고춧가루 낀 이를 환하게 보이며 웃는다. 아버지의 이는 비뚤고 피부는 검고 손발은 뭉툭한데다 거칠다. 아버지는 사장이 아프리카 노동자를 고용했다며 가르치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아버지는 환갑이 넘었지만 뙤약볕에서 하루 12시간을 일한다. 집에선 빈티나는 '메리야스'와 트렁크를 입는다. 뉴스를 안주로 소주를 적시면 하루가 끝난다.
어머니가 파리채를 탁 내리쳤다. 능숙하게 새끼 바퀴벌레를 잡았다. 이촌동 오피스텔에서도 집에 바퀴벌레가 나온 적이 있다. 친구는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이게 말이 되느냐"며 따져 물었고 이사를 하네 어쩌네 발을 동동 굴렀다. 결국 세스코를 불러 온 집안을 살펴보고 정기관리를 받기로 한 후에야 친구는 안심했다. 그러곤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야 한다며 1인 35만 원짜리 코스요리를 쐈다. 어머니는 3천 원짜리 폼클렌징도 잘라서 싹싹 긁어 쓴다.
푸세식 화장실이 마당에 딸려 있는 집. 실내 화장실엔 세면대 대신 큰 대야가 놓여 있다.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해 샤워를 한다. 바가지로 물을 퍼 세수를 해야 한다. 비누 거치대는 곰팡이가 슬었고, 변기엔 물을 아끼겠다며 내리지 않은 소변이 그대로 있다. 벌어진 칫솔, 20년 전 샀던 칫솔꽂이, 색 바랜 슬리퍼까지 하나하나 궁상이다. 도시가스가 없어 석유로 난방을 해야 하기에 겨울이면 주방은 한기가 돈다. 주방까지 보일러를 돌릴 순 없으니까. 어머니는 털 슬리퍼를 신고 패딩까지 껴입고 국을 끓인다.
하나하나 보고 있자니 진절머리가 났다. 부모님이 집을 비운 사이 녹슨 것들을 다 쓰레기통에 담아 내다버렸다. 그리고 동네 마트―백화점이나 아울렛, 고가의 생활용품점은 없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사치를 부렸다. 1천 원~2천 원 하는 새 플라스틱 집기들을 고민없이 장바구니에 담았다. 어머니는 왜 쓸데 없는 데 돈을 썼냐며, 다 쓸 만한 것들이라고 나무랐지만 뿌듯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사치였다.
여기가 내 집이다. 이곳이 내 위치다. 매매값이 이촌동 오피스텔 전셋값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이 곳이 내 집이다. 가족끼리 명절엔 해외여행을, 주말엔 골프를 치러 다니는 네가 어떻게 나를 감당하겠니. 이곳이야. 이촌동 오피스텔이 아니야. 내 현실은, 내가 놓인 곳은, 이곳이다. 이걸 감당할 수 있다고? 나는 감당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