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받지 못한다는 것
여자친구는 머리가 짧고 키가 컸다. 하루는 지하철을 타려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 해서 여자친구 가방을 들고 앞에 서 있었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여자화장실로 들어가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더니 내가 말릴 틈도 없이 그를 쫓아가 “예끼!”하며 등짝을 내리쳤다. “어딜 들어가, 이 녀석아.” “저 여자예요.” 뒤돌아 이야기하면 할머니는 “어머, 아가씨 미안해요” 하신다. 괜찮다고 웃어 보이지만 나와서는 한껏 풀이 죽어있다. 만연한 편견이니 상처받지 말라며 토닥였다.
여성과 남성은 성염색체로, 그에 따라 겉으로는 성기의 생김새로 나뉜다. 그런데 사람들은 알몸도 못 봤으면서, 옷을 꽁꽁 껴입은 여자친구를 3초만 보고도 ‘남자’라고 확신한다. 확신하지 않아도 문제는 비슷하다. 그가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물어보는 사람이 하루에 한 명 꼴이었다. 맥주를 서빙하는 일을 할 뿐인데, 그의 성별이 왜 중요한지. 대놓고 물어보지 않더라도 테이블로 불러 괜히 말을 시킨 다음에 “거봐, 여자라고 했지”하며 자기들끼리 돈 내기를 하는 사람들도 봤다.
고정관념이 사람을 얼마나 성가시게 하는지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체감했다. 남들이 말하는 ‘여성’이라는 틀에 그는 해당되지 않으니까. 부모님으로부터도 늘상 잔소리를 들었다. 친척들을 만날 땐 억지로 원피스만 입는다. 그러지 않으면 먼 친척들은 “너는 남자 만날 생각이 없구나”로 시작해 자리가 끝날 때까지 ‘여성스러움’에 대해 늘어놓는다. 친척들과 헤어지고 집에 오면 부모님이 2차 공격을 시작한다. “친척 보기 부끄럽다”는 말까지 들어야 한다.
나는 어떤 모습이어도 그가 여자라는 걸 상기해주고 싶었다. ‘관례적’ 구분에 ‘관례적’ 표현을 인위적으로 심어 바꾸려 한 것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로 “잘생겼다”는 말을 듣기 때문에 나는 최선을 다해 “예쁘다”고 말했다. 나조차 무의식적으로 ‘잘생겼다’ 생각할 정도로 풍채가 훤하지만, 말로 표현해야 할 때면 “예쁘다”, 비슷하게 “사랑스럽다”, “귀엽다”라고 했다. 분명 그를 표현하는 단어는 “예쁘다”가 아닌데도 그렇게 해야 한다 생각했다.
할 말이 있다기에 코로나 이후 가지 않던 술집을 찾았다. 스포츠 브랜드 옷을 아래위로 맞춰 입은 그. 남들이 보기에 우린 어떤 사이로 보일까 성별도, 관계도 각기 다른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써본다. 그에게 직접 이야기하지는 못한다. 도통 ‘할 말’을 꺼내놓지 않는 그이지만 나는 이 기회에 최근 느꼈던 나의 감정을 솔직히 나누고 싶었다.
“난 사람들이 널 남자라고 생각하는 게 싫어.”
“왜?”
“넌 여자잖아.”
“내가 남자면 어떨 것 같은데? 그래도 만날 수 있어?”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다. ‘나도 고정관념이 싫다’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그는 내게 되려 질문을 쏟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웃고 넘기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그가 과하게 차분했다.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했다. 그가 남성이라면 어떨까. 충격적이긴 하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를 사랑한다. 비록 지금까지 배려랍시고 했던 ‘여성으로 대하기’ 프로젝트는 민망해지겠지.
그는 고백했다. 스스로를 남성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여성 생식기를 가진, 주민번호 뒷자리가 2로 시작하는 ‘여성’으로 분류된다. 내 얕은 지식에 따르면, 이렇듯 생식기로 구분된 성과 본인이 인식하는 성이 다를 경우 트랜스젠더라 부른다. 동성애자나 무성애자 같은 ‘성 지향성(sexual orientation)’이 소수인 사람과 마찬가지로 ‘성 정체성(gender identity)’이 소수인 ‘퀴어’인 거다.
트랜스젠더를 처음 본 신기함과 그게 내 여자친구라는 놀람, 곧이어 후회가 밀려들었다. 뭐하러 그가 여성임을 잊을 만하면 꺼내어 알려줬을까. 그렇게 하지 않아도 여자로 분류돼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을 수차례 겪는데. 미안한 마음을 전했고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었다.
“왜 네가 남자라고 생각해?”
“글쎄”
대체 어떤 경로로 본인이 남자라고 생각하게 된 걸까. 어렸을 때부터 여자라고 규정지어졌을 텐데 왜 매번 오해받고 욕을 먹으면서까지 본인을 남자라고 인식할까 궁금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남자가 태어나길 바라서 딸인데도 아들이라 대했던 걸까? 아니면 사회가 ‘남성성’으로 규정짓는 모습이 되고 싶었던 걸까? 이해하고 싶어 더 물어봤다.
“혹시 머리 짧고 편한 옷 입고 그래서 네가 남자가 되고 싶은 거 아냐?”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이었다.
“난 그냥 그렇게 생각해. 외모는 내가 편한 대로 하는 거고. 그것과는 별개로 난 나를 남자라고 생각해. 그래서 여성으로 규정지어진 내 몸이 불편하고.”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그런 존재구나’ 인정만 하면, 사실 부정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들은 존재 자체를 시스젠더(Cisgender, 성기로 지정된 성별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로부터 이해받을 필요는 없다. 시스젠더도 자신이 시스젠더라는 걸 설명할 수 없을 것이며, 동성애자도 ‘왜’라 물으면 대답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여성은 이럴 것이다’ 여기지 말라고 했으니 ‘트랜스젠더는 이럴 것이다’ 넘겨짚지도 말아야 했다.
그는 화장실을 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 남자 화장실 모든 칸이 꽉 차 줄을 서야 했다. 그가 어딜 서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입구부터 다르면 망설임 없이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겠으나, 이곳에서는 한 발만 옮기면 다른 성별의 화장실에 줄을 설 수 있었다. 여자친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여자 화장실에 줄을 섰다. 걱정했던 일이 일어났다. 남자 화장실에 줄을 서던 ‘친절한’ 남성이 안내한 거다. “저기요, 거기 여자 화장실이에요.”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도 알아요.”
두 달 간의 ‘여성으로 대하기’ 프로젝트는 막을 내렸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장소를 갖는다는 의미이고, 환대는 그 자리를 주는 행위라고 말한다. 일상적 공간에서까지 환대받지 못하는 트랜스젠더는 한국 사회가 말하는 ‘사람’에 속하지 않는다. 여자친구는 자책해야 했다. ‘나는 전생에 무슨 잘못을 한 걸까.’ 수차례 시도한 자살기도에 대해 이야기하며 흉터를 보여줬다. 그리고 이 같은 경험을 먼저 한 여성이 지난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성 성기를 가지고 태어난 그는 중학생 때부터 군인이 되고 싶었다. 부사관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해 스무살에 육군 부사관으로 임관했고,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군 생활하는 동안까지 내내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다. 소속 대대도 알고 있었고 분위기는 포용적이었다. 그는 2년 후 휴가를 얻어 여성으로의 성전환 수술을 받았고, 법원에도 성별 정정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군이 그에게 새로 내린 판정은 ‘심신장애 3급’. 복무를 계속하길 원했던 그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며 강제 전역 처분을 받았다. 변희수 하사는 우리 사회가 죽인 군인이었다. 그의 죽음을 다시 한 번 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