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르르와르르와르르맨션에 작곡가가 산다
마타즈레소(またずれ荘). 애니메이션 ‘짱구는못말려’에 나오는 ‘와르르맨션’의 원래 이름이다. 짱구를 즐겨본 사람들에겐 상징성이 꽤 크다. 허름한 집을 보면 “와르르맨션인데?” 생각한다. 종잇장 같은 벽에 구멍이 나 옆집과 같이 생활하는, 뻔하고 짠한 에피소드도 있다. 아무도 살고 싶지 않은 집, 이름부터 비관적인 ‘와르르맨션’. 그 글자를 적은 간판마저 가운데가 무너져 내린 곳이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는 '와르르'로는 부족한 ‘와르르와르르와르르맨션’이 곳곳에 있다.
“어르신, 계세요?”
아무리 두드려도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문틈 사이에도 흙먼지가 끼어있다. 바닥이며 천장에 붙은 거미줄을 피하며 돌계단을 올랐다. 부러진 빨래집게, 바닥까지 늘어진 빨랫줄만 흩날릴 뿐 사람의 온기는 없었다. 재건축 사무소에서 ‘쓰러져 가는 집’이라며 1번으로 소개한 이곳. 마스크를 잠깐 내리고 후각에 정신을 집중했다. 혹여나… 사람이 죽었을까봐. ‘와르르와르르와르르맨션’들을 찾을 때, 아무도 응답이 없을 때 반복했던 행동이다.
발길을 돌려 옆 골목을 향해 걸었다. 걸었다기보다 산을 탔다는 표현이 맞겠다. 건물 뒤편으로 가니 현관문을 활짝 열고 발을 쳐놓은 집이 보였다. 밖에선 내부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는데 안에서는 훤히 보이나보다. 젊은 사람이 여긴 무슨 일이냐며, 허리가 살짝 굽은 할아버지가 호쾌하게 발을 걷어 젖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 아랫집에는 아무도 안 계신 거예요?
“네. 거기 비었어요.”
-나가셨어요?
“사람이 못 살아요. 왜요?”
-저 기자인데요….
“잠깐 들어오시죠.”
분명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시멘트 바닥이 나왔다. 왼쪽 벽에 아래에는 수도가 달려 있고, 그 아래에는 식기들이 설거지를 기다리고 있다. 한 뼘 옆에는 세제와 칫솔, 비누… 조합이 이상하다. 주방 겸 빨래방 겸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오른쪽에는 신발 네 켤레, 손바닥 만한 전기밥솥, 빨랫줄에 걸린 우산과 옷걸이가 소란하게 흔들린다.
-선생님, 화장실은요?
“아 화장실은 없고. 밖에 재래식 화장실 있는데 사용을 못해요. 재래식 알죠? 그거 청소를 못하니까.”
-그럼 화장실 가고 싶을 땐 어떻게 해요?
“밖에 나가서 다른 일 보다가 어디 들르고.”
안쪽으론 한 칸짜리 방이 있었다. 색깔 별로 정리한 약봉지들, 그 위에는 딱 두 벌의 정장 상의가 보란듯이 걸려있다. 그제야 이 집의 이름을 마주했다. 이름하야 “CAN DO! 오피스텔”! 벽 한 가운데 A4 용지에 붙은 이름이다. 빨간색 매직으로 “CAN DO”, 파란색 매직으로 “오피스텔”이라 적혀있다. 그 아래에는 주문을 외운 듯 “CAN DO! 하면 된다”, “꿈은 이루어진다, Dreams Come True”, “포기하지 마라”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줄이었다.
-이건 뭐에요, 오피스텔?
“오피스텔, 여기가 독거노인 쪽방. 내 예명이 최신형이거든요. 최신형 CAN DO 오피스텔이라고 이름 지었어요.”
오피스텔(?)* 이름 옆에는 할아버지 본인의 사진, 기업인 김 모 씨의 사진, 연예인 오 모 씨의 사진이 붙어있다. 사진 아래, 위 할 것 없이 “CAN DO!”라는 글씨가 벌겋게 강조돼 있다. 벽지는 덕지덕지 붙었다. 미처 가리지 못한 썩은 벽지 귀퉁이가 보인다. 그 위를 덮고 덮어 프린팅된 “CAN DO”와 낯선 이들 사진으로 귀티 나는 사진 벽을 완성됐다. 사진 속 할아버지는 여유롭게 입꼬리를 올렸다.
“세계적인 CEO, 김 회장. 이 양반 노래를 만들어줬어요, 내가. 이 양반을 모델로 나는 할 수 있다! I can do it. 이 분 초청해서 한국에서 행사하려고.”
창문은 테두리를 매직으로 칠한 듯 청테이프로 둘러져 있다. 바람을 막기 위해서란다. 문턱에는 노란 테이프를 발랐다. 나무가 일어나서 발을 찌르기 때문이란다. 바닥 장판 사이에 수건을 끼워놓았다. 물이 흐르는 호스가 터져 바닥이 흥건해졌기 때문이다. 수건 두 개를 다 적시고 벽까지 젖었다. 그래도 물이 치렁치렁 장판 아래에 고였다.
-물이 샌지 얼마나 됐어요?
“한 달 됐어요. 마침 오늘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니까 동사무소에 가서 이야기하면 수리를 해주나 봐요.”
-아...
“한 5년 전에 이 방이 비어 있었어요. 몇 년 동안 비어서 곰팡이만 피던 방인데 내가 여기 산책하다 이 집을 발견해가지고 살게 됐지.”
-샀어요, 이 집을?
“빌렸죠. 이 방만. 월세예요.”
-얼마에요?
“보증금 없이 22만 원.”
-선생님, 일을 따로 하세요?
“옛날에 기획사를 했었는데 IMF 때 거지가 돼서 노숙자가 됐거든요. 노숙 생활을 하는 동안 다시서기 행사를 해서 사회로 복귀하려는데….”
할아버지가 원한 건 단 하나였다. 디너쇼. 누군가는 가당치 않은 소리라고 했다.
“내가 행정지원만 해달라, 동네에 공지만 해주면 출연자를 공모받아서 행사를 잘 할 수 있다, 수익금이 나면 전부 기부하겠다 했는데 안 해줘요. 한 200군데에 그 이야기를 했어요. 사회복지기관이든, 청와대든 닿을 수 있는 곳은 다 했어요. 자선단체가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거기에도 다 해달라고 했는데 안 된대요.”
방 한 켠에 A4 용지가 빼곡이 채워진 클리어파일이 있다. 다일사,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다. 노랫말은 비공개라며 음만 흥얼거리고는 다른 장으로 넘겼다. 여기도 ‘CAN DO’, ‘성공’이라는 글씨가 적힌 각종 포스터가 있다. 디너쇼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과 식순을 적은 디너쇼 기획안도 보인다.
“처음에는 노동을 했거든요. 3년 동안 서울역에 인력 버스가 오는데 아파트 공사장 같은 데 가서 잡일하고. 그 임금을 모아서 그 와중에도 제가 작곡을 30곡 해놨어요."
-30곡이요?
"대단하죠? 그런데 안 됐지. 우울증 걸리고, 결국 20여 년을 노숙 생활을 계속 했어요.”
노숙 생활을 끝내고 간 곳은 중림동 쪽방촌. 최신형 할아버지는 함께 노숙을 했던 사람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했다. 중림동에 살던 사람들과도 마찬가지다.
“내가 제일 깨끗해보였는지 나보고 노숙자 10명만 뽑아달래요. 왜 그러냐 그랬더니 쪽방을 얻어주겠대요. 서울역 뒤에 달동네 쪽방촌이 있는데 거기다 얻어주더라고. 주민센터에 가서 주민등록 말소된 거 살려줘서 기초생활수급자를 만들어줬어요. 거기는 박근혜도 다녀가고 이재용이도 다녀가고…. 그런데 거기 사는 사람들은 맨날 술 먹고 싸우고, 담배 피우고 수급비 타면 경마장이나 가고 도저히 못 살겠더라고요.”
할아버지는 동네가 싫어질 때마다 밖으로 나와 걸었다.
“젊었을 때 데이트하던 생각이 나서 마포대교를 걸었어요. 난간을 잡고 강 밑도 쳐다보고. 사랑의전화라는 게 있어요. 그걸(수화기를) 들었더니 혹시 죽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 그래서 ‘살다 보면 그럴 때도 있죠’ 그랬는데… 벌써 다리 밑에 구명보트가 와서 빙빙 돌아요. 그게 나는 뭔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순경들이 와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을 시켰어요. 저는 보호자가 없어서 못 나간대요.”
할아버지는 정신병원에서 20일을 살았다. 나갈 방법을 몰라 살았다. 주민센터에서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이 분은 정신 이상이 없다” 입증해주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나와 유언장을 썼다. ‘구청장님, 제가 돈을 모아놨습니다. 통장에 있는 돈으로 노래를 만들어주세요.’ 구청장이 유언을 보기나 할런지, 유언장 내용을 실행해줄 수 있는지, 왜 하필 구청장인지는 모른다.
하루는 창신동을 걸었다. 그저 ‘와르르와르르와르르맨션’일 뿐이었던, 지금의 “CAN DO 오피스텔”을 발견했다. 할아버지는 이 집에서 재기하겠다 다짐했다.
“잡지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아직 발행할 힘이 없는데, 잡지도 내고 행사도 준비해야죠. 외국에 있는 김 회장 모셔다가 김포공항에서 환영식도 하고. 이런 거 준비한다고 돈이 못 모으는데 나는 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집들은 저마다 이름을 갖는다. 생긴 건 와르르맨션인데 ‘럭셔리 빌’, ‘로또 캐슬’, ‘강남빌라’라 이름 붙이며 자주 있는 체를 한다. 애니메이션에서나 ‘와르르’라며 구차하지, 집은 이름이라도 휘황찬란해야 한다. 짓는 사람의, 건물주의, 사는 사람의 자부심이 걸려있다.
-집을 잠깐 촬영해도 될까요?
“창피해서 안 돼요. 아직은 쪽방이잖아. 나중에, 내가 노래 내고 나서 역전의 드라마를 만들면 그때 찍어요. ‘노숙인에서 성공 작곡가로!’ 이거 기사 제목으로 좋네.”
-네! CAN DO! 꼭 넣어야죠, 선생님.
“그렇지! CAN DO! 할 수 있다!”
-오늘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와줘서 고마워요. 내가 행사하면 꼭 초대할게요. 와줄 거죠?”
사방에서 응원이 가득한 오피스텔을 떠났다. 근래에 만난 사람 중 가장 힘이 넘쳤다. 허리는 굽어도 꿈에 대한 의지는 꼿꼿했다. 스스로에게도 외쳐보았다. "CAN DO!" 머지않아 디너쇼에서 최신형 작곡가를 소개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