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딱지

샤를로트 문드리크, 한울림 어린이

by 반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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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 서른 하나에 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 남들은 서른 하나면 어른이다 생각하겠지만 서른 하나든 마흔 하나든 엄마를 잃은 사람은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갈 곳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엉엉 울다 보면 3일이 지나있고 땅 속이든 불 속이는 더 이상은 볼 수 없는 곳으로 엄마의 몸을 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이별을 하고 나면 남아있는 고인의 짐을 정리하게 됩니다. 입던 옷은 다 태워야 저승 가서 입는다길래 아낀다고 입지도 않으셨던 모피도 불에 태웠습니다. 여름이 되면 곱게 다려 입으시던 모시 삼배 옷도 다 태웠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떤 계절이라도 춥거나 덥지 않으시라고 모든 옷을 다 태워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태우지 못한 옷이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께 사 드렸던 마지막 블라우스. 그것 하나만은 태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 보려고 살짝 숨겼습니다. 엄마 냄새가 날아갈까 봐 상자 속에 넣어서 한 번도 빨지 않았습니다. 옷 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엄마가 생각나면 몰래몰래 꺼내보았습니다. 행여나 다른 가족이 왜 안 태웠냐고 빼앗아 갈까 봐 혼자 몰래 숨겨두고 꺼내보곤 했습니다.


엄마와 이별을 하고 또 하나 남긴 것이 있습니다. 우리 엄마는 추석 전에 돌아가셨더랬습니다. 항상 추석이 가까워지면 이제는 푸르고 질겨져서 대가 굵어진 열무를 캐서 산초향 가득하게 양념을 하여 열무김치를 담으셨습니다. 추석음식은 기름져서 이런 짭짤하고도 칼칼한 김치가 꼭 있어야 한다며 담아두셨더랬습니다. 그 해도 어김없이 담아두신 열무김치가 반통 정도 남아있었습니다. 주인을 잃은 냉장고를 정리 하다가 그 김치를 발견하고 얼른 팩에 담았습니다. 상하거나 찢어질까 봐 두 번 세 번 꽁꽁 묶었습니다. 그렇게 챙겨 온 김치를 우리 집 냉동실에 깊숙이 넣었습니다. 이제는 맛볼 수 없는 엄마 음식, 엄마 음식이 먹고 싶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이 김치를 꺼내 먹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냉동실 깊은 곳에 저장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 해 첫 아이를 가졌습니다. 입덧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뱃멀미를 하는 것 마냥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딱 이럴 때 엄마 밥상이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가 차려주신 밥 한 그릇만 배불리 먹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순간 냉장고에 저장해 둔 열무김치 생각이 났습니다. 얼른 꺼내서 한 덩이를 잘라 녹인 뒤 하얀 쌀밥을 떴습니다. 엄마가 해주신 그 맛을 떠올리며 밥을 한 술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미 김치는 그 맛이 아니었습니다. 냉동실에서 오래 들어가 있어 열무는 질기다 못해 씹히지도 않았고 수분은 말라 섬유질이 그대로 씹혔습니다. 심지어 냉동실 냄새까지 베여서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었습니다. 고스란히 남은 김치와 함께 쓰레기통으로 버려졌습니다. 차라리 그때 다 먹을 걸, 그랬으면 내 뱃속에서 살이 되고 피가 되었을 텐데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남은 것이 더 있었습니다. 그 해 어머니께서 농사지어 마당에 널어 말리시던 팥을 다 쓸어왔던 기억이 났습니다. 어머니께서 지으신 마지막 농작물이라 그것도 버려질까 모두 가져왔습니다. 말린 팥은 생각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만은 놓치지 말자 싶어서 오래오래 상태를 확인하며 냉동실에 보관해 왔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십여 년쯤 되던 어느 겨울날, 따끈한 동지 팥죽이 너무 먹고 싶던 날이었습니다. 문득 냉동실에 저장해 둔 팥이 생각났습니다. 얼른 꺼내 물에 불려 팥죽을 쑤었습니다. 엄마가 주시는 맛있는 음식을 드디어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숟가락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습니다. 마치 돌아가신 엄마가 저를 위해 밥상을 차려주신 기분이었습니다. 얼굴도 못 보고 자라 버린 손주들을 위해 외할머니가 남겨주신 마지막 음식을 그렇게 맛나게 먹었습니다.


서른한 살 이던 이제 마흔 중반이 된 저도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자신의 무릎에 있는 딱지를 뗄 때마다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딱지를 떼고 또 떼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엄마 냄새가 날아갈까 온 집안의 문을 꼭꼭 닫고 있는 아이의 마음에서 할머니가 오셔서 환기를 시키자 엉엉 울어버리는 어린아이의 눈물에서 십오 년 전 나의 모습을 봅니다. 할머니가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옆에서 힘이 되어 준 것처럼 저도 남편과 세 아이들이 힘이 되었습니다. 슬픔은 또 다른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는 감정입니다.


하늘에 간 엄마가 얼마나 외로울까 싶어 따라 죽고 싶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가야 우리 엄마가 외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생각하니 죽음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런 죽음의 문턱에서 제 손을 잡아준 것이 남편이고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이겨낸 이별이 벌써 십오 년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약이란 말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아이들을 셋 낳았습니다. 이제는 제가 이 아이들을 책임질 엄마의 위치에 놓였습니다. 우리 엄마처럼 빨리 떠나서 나와 같은 아픔을 이 아이들에게는 주지 말아야겠다 싶습니다. 아이들이 임신해서 엄마밥 먹고 싶다고 찾아오면 따뜻한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주고 싶고요. 일을 하고 싶은데 아이 때문에 직장에 나갈 수가 없다고 하면 아이들도 다 봐주고 싶습니다. 아이들 없이 하루만 휴가를 보내고 싶다 하면 얼마든지 다녀오라고 보내주고 싶습니다. 나는 비록 하지 못했던 비어있던 엄마의 빈자리를 내 아이들에게만은 채워주고 싶습니다. 이제는 상처가 다 나았으니 딱지는 그만 뜯는 게 좋겠다고 내 안에 있는 내면아이에게도 토닥여 주고 싶습니다. 먼 훗날 저 멀리서 엄마를 만나게 된다면 너무 보고 싶지만 잘 참고 살았다고 제 자식 잘 키우고 엄마 품에 돌아왔다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차려주시는 맛있는 밥상을 꼭 한번 받아 들고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때까지 좋은 엄마로 건강하게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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