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풍선

제시 올리베로스, 나린글

by 반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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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시어머니께서 수술을 벌써 두 번이나 하셨습니다. 2월에는 유방암 수술을 하셨고 8월에는 손목 골절로 심어 놓은 티타늄 핀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셨습니다. 저희 시어머니는 파킨슨 증후군으로 거동을 잘 못 하십니다. 가장 먼저 다리가 불편해졌습니다. 한 걸음 내딛는 것이 힘들었던 어머님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발 전체를 들어 올리는 것이 힘들어지셨습니다. 지구의 중력을 다른 사람보다 더 받으시는 것처럼 땅에서 발을 떨어뜨려 놓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가족의 힘으로 케어하기 힘들어지셔서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셨습니다.


요양원에 들어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방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가슴에 일 년 동안 사라지지 않던 물집 덩어리가 암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간병인이 필요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통합병동으로 들어가는 것이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반드시 한 사람의 요양사가 함께 병원에 상주하는 조건으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기로운 둘째 며느리는 본인이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어머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과거의 나는 정말 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입원한 후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주렁주렁 달린 링거대를 끌고 양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서 화장실로 들어간 뒤 옷을 내리고 변기에 앉혀드립니다. 볼 일이 끝나면 휴지를 뜯어 손에 쥐어드리고 붙잡아 일어나시면 바지를 올린 뒤 다시 병실로 모시고 오는 일이 주된 업무였습니다. 끊임없이 들어가는 수액 때문인지 하루에 화장실을 몇 번을 들락날락했는지 모릅니다. 그냥 기저귀를 쓰시면 조금은 편했을 텐데 아직은 정신이 맑으신 어머니는 끝까지 기저귀와 타협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문제는 수술 전 날 밤이었습니다. 긴장한 탓인지 어머니께서는 밤 새 잠을 못 주무시고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화장실을 가셨습니다. 밤에는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잘 자는 저에게 밤낮의 구별 없이 화장실을 가시겠다는 어머님의 요구는 정말이지 힘든 일이었습니다. 내일 당장 큰 수술을 앞둔 어머님께 말 한마디 못하고 잠이 들만하면 깨어야 하는 화장실 뒷바라지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수술이 끝난 후는 어쩔 수 없이 기저귀와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어나기도 힘들고 수액을 주렁주렁 달고 화장실로 가기는 더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화장실 도우미의 역할을 끝낸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저귀 또한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인용 기저귀가 성능이 좋다 해도 성인의 배변량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해 시트를 적시기 일수였습니다. 하나가 가니 또 다른 하나가 찾아왔습니다. 힘에 부치고 피곤이 밀려들 무렵, 생전 며느리와 목욕탕 한 번, 생 살을 보여준 적도 없는데 나이 드신 어머니가 얌전히 기저귀를 갈아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뒤로 그동안 쌓였던 피로와 짜증이 다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렇게 거부하던 기저귀를 이렇게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어머님의 처지가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의 마지막 자존심은 그렇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손목 티타늄 제거로 올여름 또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1박 2일이라니 금방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지난번의 고생은 또 잊고 둘째 며느리는 선뜻 입원실에 같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기저귀를 쓰기로 타협을 보았습니다. 수액을 달고 지난번 보다 더 걷기 힘들어진 몸으로 화장실을 가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우린 둘 다 알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기저귀 갈기는 수월했습니다. 이러려고 제가 아이 셋을 낳았구나 싶었습니다. 기저귀 갈기란 저에겐 숙달된 기술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개인당 36개월 전후로 기저귀를 뗐다고 쳤을 때 저는 적어도 100개월 이상 지속한 기저귀 갈기 스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잠든 새벽녘, 4시가 지난 시각 기저귀 테이핑 소리가 났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잠귀가 밝아진 저는 바로 일어나 어머님을 보았습니다. 배설물이 새어 나와 시트를 다 적시는 바람에 어머님 스스로 기저귀를 벗으려고 데이프를 뜯고 계셨습니다. 깨우지 그랬냐고 어머니께서 이걸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시냐고 얕은 잔소리를 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티브이에서 보는 며느리들처럼 저 역시도 어머니께 중얼거리고 있더군요. 시트와 옷을 벗기고 새 기저귀를 해 드리려는데 내가 넷째를 키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진짜 넷째를 키우는 느낌이었습니다.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의 풍선은 점점 줄어듭니다. 그 어릴 적 할아버지가 해 주셨던 옛날이야기들은 이제 할아버지에서 손자에게로 옮겨갑니다. 아이의 풍선은 점점 늘어나지만 할아버지의 풍선은 점점 줄어들지요. 풍선을 마구 날려 보내는 할아버지가 원망스럽지만 소년은 곧 알게 됩니다. 그 풍선들이 모두 자신에게 넘어와 있다는 것을요.


부모님은 점점 늙어갑니다. 함께한 추억과 기억만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가시지요. 지나간 옛날 사진을 휴대폰에 가득 채우고 보고 싶을 때마다 열어봅니다. 그런데 그 사진이 어디서 찍은 것인지 이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본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고요. 자식의 도움이나 요양사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배변마저도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시기가 되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던 것을 결국에는 포기하게 되고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슴에 물결이 하나씩 출렁거릴 것입니다.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도 회오리가 칩니다.


이제 어머님의 남은 풍선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수없이 걸어왔던 두 다리의 감각을 잊었고 가족과 함께했던 소소한 기억들을 잊었을 것입니다. 양변기에 편안하게 앉아 시원하게 쏟아내던 배변의 쾌감도 이제는 점점 잊혀가시겠지요. 그런 사소한 일상의 감각은 다 잊혀가더라도 마지막까지 자식의 기억만은 꼭 쥐고 계셔 주길 바랍니다. 누구 신지 몰라도 안녕히 계세요가 아닌 둘째야 이제 잘 있거라, 내 기저귀 간다고 고생했다 한 마디는 남기고 떠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굳어가시는 부모님께 마지막까지 잊히고 싶지 않은 작은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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