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1. 18.
민찬이 아빠.
나름 육아에 적극적이고 시간이 있을 땐 많이 도와주고 애쓰는 사람.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내가 힘들지 않게 많이 신경 쓰고 애쓰는 좋은 남편이자 애들 아빠다.
이번 겨울방학은 정말이지 이틀 빼고 다 출근을 했다.
방과 후 보충과정 악기 캠프 등등, 정기 검진 병원 가고 하루, 애들이랑 바람 쐬러 하루
다른 방학에는 나 쉬라고 큰애들 데리고 실내놀이터도 가고 하루쯤 나만의 시간도 가지라고 휴가도 주고 했는데 이번 방학은 그런 하루 없이 가나 싶더니 문샘과 미선님이 토요일 점심 사주신다고 나오라 신다. 당당히 나의 휴가를 쓸 날이 왔다며 토요 방과 후 지도하고 12시 30분 퇴근한 남편에게 아이들 셋을 맡기고 점심으로 유부초밥 한 접시 싸놓고 약속시간이 한시 인지도 모르고 너무 기분 좋은 나머지 집을 뛰쳐나왔다.
찬이 아빤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국제시장 영화도 한편보고 오라며 잘 다녀오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초임발령 때 만난 두 언니들과 맛난 점심 먹고 차도 마시고 수다 떨기만 12시 30분부터 4시 55분까지. 음... 역시 스트레스는 썰로 풀어야 제맛이다. 밖이 어두컴컴해보니 다섯 시가 다 되어가길래 인사하고 봄방학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들은 신나게 놀고 있고 찬이 아빤 음 뭐랄까 딱 봐도 뭔가 마음이 불편해 보였다. 중간중간 한숨을 쭉쭉 쉬면서 말이다. 어제 음악회 사회 봐주고 밤늦게 왔길래 내일은 꼭 치맥을 먹자고 한 말이 떠올라 치킨을 시켜주려 했다.
(나) 자기야, 밥 뭐 먹을까? 치킨 시켜줄까?
(남편) 어 뭐... 별로 입맛이 없네...
(나) 왜? 기분 나쁜 일 있어? 너네 아빠 말 잘 들었어?
(병아리들) 네~~~~~!!!
(나 )근데 왜 아빠가 기분이 나쁜 거 같지??
(남편).....
(나) 그럼 밥 안 먹어?
(남편) 그냥 치킨 먹지 뭐. (치맥 주문한다)
(나) 자기야, 자기 삐졌지?
(남편) 아니.
(나) 내가 늦게 와서 화났지?
(남편) 아니. 내가 왜? 그냥 기분이 좀 짜증이 나네. 민서가 징징거리는 것도 그렇고 발로 쿵쿵 걷는 것도 신경 쓰이고.
(나) 그 짜증의 근원이 뭐야?
(남편) 말 없음
(나) 내가 빨리 안 오고 있으니 뭔가 속에서 짜증이 나고 화도 나고 애들한테도 짜증 나고 그렇지? 평소 같음 그냥 넘어갈 일도 화가 나고. 나는 그렇던데. 가끔 자기가 회식이다 일이다 늦게 오면 머리로는 이성적으론 이해하는데 감성은 그렇지 않을 때가 있더라고. 그래서 괜히 화가 나고 짜증 나고 뭔가 억울하고. 지난번 2박 3일 자기가 직원여행 갔을 때도 첫날 저녁은 잘 지냈는데 두 번째 날 밤엔 어찌나 짜증이 머리끝까지 오르던지. 아무것도 안 해도 옆에 있는 거랑 없는 거랑 엄청 차이나더라고. 내가 피곤하고 힘들고 지치면 그런 거 같아. 이유 없이 화나고 짜증 나는 거 자기도 그렇지 않아?
(남편) 얼굴이 빨개지며 피식피식 웃음, 그런데 그 웃음이 정말 환했음-.
아니거든~~~ 내가 영화도 보고 오랬는데.
(나) 말은 그리 해도 이성은 그래도 감성은 그게 아닐걸?
(남편) ㅋㅋ
한참 뒤
(남편)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게 맞는 것 같아. 캬캬캬캬!
민찬이 아빠.
오랜만에 세 아이를, 서영이가 잠만 자는 신생아가 아닌 반 인간이 되고 난 후 혼자 세 아이를 보았다. 영이가 크곤 처음인 듯싶다. 매일 출근에 진주서 정기검진하고 동물원 돌고 어젠 찬이 썰매체험 따라가고 오전에 아이들 토요방과 후 수업하고 집에 오자마자 나는 나가고 혼자 셋과 씨름하니 몸도 피곤한데 내가 오지 않는 한 시간 한 시간이 얼마나 길었을지 안 봐도 알 것 같다.
나 홀로 육아를 하다 보면 나도 그렇게 지칠 때가 온다. 그래도 내 새끼니까 아빠는 돈 번다고 고생하니까 이정돈 내가 참아보자 하고 맘을 다잡곤 하는데 우울해질 때마다 드는 기분을 찬이 아빤 처음 느꼈나 보다. 설거지하는데 뒤에 와서 우리 반여사 애들 키우느라 고생 많다며 토닥토닥 안아준다. 장난처럼 저리 가라고 또 나갈 거라고 웃었지만 잠시나마 아빠에게 찾아온 육아 우울증 증상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담부턴 조금만 놀다 들어와야지!
내가 다시 엄마가 된다면
남편에게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싶다. 당시 육아휴직을 하던 중이라 외벌이에 승진을 위한 점수 쌓기에 누구보다 많이 힘든 게 우리 남편이었다. 자기만족을 위한 승진이라지만 우리 아이들 셋을 키우려면 평교사 장인, 장모보다는 둘 중 하나는 교장쯤 되면 더 나을 것 같다는 미래를 위한 대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편이 고생하니까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내가 조금 더 고생하는 게 맞다고 여겼다. 아이들을 돌보고 하루 세끼 밥을 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남편이 쉬는 날 방해하지 않으려고 쉬게 해 주려고 애썼다. 그게 후회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남편에게 힘들다고 오늘 너무 고생했다고 말을 하고 살걸 싶다. 남편도 마음으로 나의 힘듦을 알고는 있었겠지만 내가 너무 씩씩하게만 보이려고 애쓴 것 같아 조금은 후회가 된다.
육아는 공동작업이다. 누구 한 사람이 희생해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힘들지만 그것을 나눠서 서로의 힘듦을 덜어내주는 과정이다. 그래야 이 담에 아이들이 자라면 누구의 책임이라고 떠밀지 않고 우리의 문제라고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남편이 저 날 아이들을 혼자 돌보고 나서 나의 힘듦을 더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저 과정이 없었다면 어쩌면 항상 육아는 나의 몫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돈 버는 사람이 덜 하고 돈 안 버는 사람이 더 하거나 엄마가 더 책임을 지는 사회가 아니라 너와 나의 아이는 서로가 함께 힘들 모아 키우는 것이 맞다. 그러려면 지금의 부모가 모범이 되고 공동육아를 실천해 주어야 내 다음 세대 아이들은 함께 육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까. 서로 고생을 나눈 육아 동지가 되면 부부간의 의리도 더욱 깊어진다. 그래서 우리 부부도 의리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