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2. 05
어제 민찬이가 유치원에서 세뱃돈 봉투를 만들어왔는데 갑자기 자기 지갑에서 2천 원을 꺼내더니 나 천 원 아빠 천 원 주면서 엄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더라. 이게 뭐냐니까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드리라고 했다면서(세뱃돈에 대해 배운 거 같은데 과연 선생님이 부모님께도 용돈을 드리라고 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용돈을 준다. 여덟 살짜리한 테 용돈을 다 받아보네. 하긴 나도 옛날 울 아버지 매일아침 엄마한테 용돈 천 원 받으셔서 500 원하던 솔담배 매일 사는 거 보고 용돈 천 원 있던 거 봉투에 꼬깃꼬깃 넣어 아빠 하라고 드렸었었지. 고맙다~ 아들아!
요 며칠 민찬이가 학습지 숙제를 안 하려고 들었다. 건성건성 대강대강 주의 산만. 이제껏 너무 놀려서 갑자기 공부하자니 부작용이 생긴 건가 태도가 영 맘에 안 들어서 이럴 거면 하지 말자고 너랑 나랑 이것 때문에 이렇게 싸울 거면 필요 없다고 그랬더니 또 아니라고 한다고 징징징. 내가 너무 성급한가 생각하다가도 처음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우리 엄마는 초등학교 때 매달 문제집 2개씩 사서 밤늦게까지 풀라고 시키셨다. 너무 졸려 화장실 가서 몰래 자고 그랬다. 그게 싫긴 했는데 그래도 엄마가 그때 잡아주신 습관 덕분에 사교육 없이도 혼자 공부해 대학 가고 다 한 거 같다. 겨우 요거 하나 하는 거 계속 시키고 싶은데 이제 한 달 하고 이러니 원. 그동안 너무 놀리면서 키웠나. 요거 한 개만 하자해도 저렇게 난리부르스니.
요즘 청개구리병에 걸린 민찬이는 얼른 아침밥 먹고 유치원 가야지~ 하면 얼른 밥 안 먹고 유치원 안 가야지~ 하고 따라 한다. 어제 민찬 아빠랑도 이야기했지만 내 사랑 내 착한 민찬이가 요즘 드디어 남자아이들이 하는 까불까불 건성건성 깐죽깐죽 병이 걸린 거 같다고 말 잘 듣던 그 민찬이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뭐 다른 애들에 비하면 늦게 시작한 거긴 하지만 우리 민찬인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드디어 각성을 했나 보다. 민찬이는 바르게 자라고 있는데 내가 거기에 못 따라가는 건 아닌가 내 기준에서 그걸 인정하기 싫은 게 아닌가 싶어 몇 번을 생각하고 생각했다. 좀 더 요령 있게 허용적인 범위 안에서 민찬이의 남성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어제 내렸다.
아~ 힘들다. 아들 키우기 지금부터 시작이구나!
넘 부끄럼 많은 거, 혼자 못 하는 거 말고는 그동안 너무 쉽게 키웠나 보다. 드디어 남들처럼 까불 때가 되었지 싶기도 하다. 설 날이 지나면 조금 더 이 아이들의 성장을 인정하고 나도 좀 더 맘이 큰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 힘들다. 부모 되기 정말 힘들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적응해야 할 것들이 더 늘어나는 기분.
아효효~ 늙는다. 늙어.
내가 다시 엄마가 된다면
아들에 대해 더 많이 연구를 하겠다. 아들은 클수록 더 탐구거리가 많아지는 대상이다. 나는 자매만 있어 남자아이의 심리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아이를 키울 때도 특별히 남자아이라서 신경을 써야 되는 부분이 있는 줄 잘 몰랐다. 딸들과 마찬가지로 아이의 기질을 중심으로 다가갔지 남자, 여자의 차이를 크게 안둔 것 같다. 그런데 키우다 보니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와 다른 부분이 참 많다. 딸들은 한 번 말하면 자기가 해야 할 것 을 하는데 아들은 백번 말을 해야 한다. 그것마저도 억지로 마지못해 행동에 옮긴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대답을 제대로 듣는데 엄청난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내가 한 말을 과연 듣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관심하다. 그러다가 엄마가 떼를 쓰고 써야 겨우 대답을 하기도 한다.
우리 아들만의 특징이라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나는 요즘 아들과 신경전이 제일 힘들다. 도저히 말을 듣지 않는 돌부처가 따로 없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너 보더 더 무서운 갱년기임을 보려 주랴? 싶기도 하지만 용처럼 뿜어낼 수 있는 불을 함부로 뿌렸다가는 오히려 아들에게 역풍을 맞을 것 같아서 눈치 보며 참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아들은 참 내가 오롯이 받아들이기 힘든 존재이다. 처음부터 제대로 상대의 특성을 파악해 깊은 곳에 침투해 있어야 했는데. 나의 이번 작전은 실패한 듯하다. 과연 다음 생에는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