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4. 07
2월 무렵 봄방학 하고 집에만 있다 보니 심심해서 보여주기 시작한 라바(애니메이션 이름입니다). 하루 한 시간쯤 보다 보니 완전 애정프로가 되어서 매일마다 라바 보고 싶다고 조른다. 아침 청소하고 낮잠 자고 일어나 언니 오빠오기 전까지 보던 것이 하루 한 시간으로 늘어나는 데다가 라바가 내용이 좀 아기들이 보기엔 지저분하고 가학적인 것도 있고 아이디어는 참신하긴 한데 점점 그 깊이가 심해지는 거 같아 과감하게 라바 끊기 도전.
셋톱을 빼서 서랍에 숨겨버렸다.
민찬이가 요만할 때 한동안 티브이 안 보기 운동으로 티브이 안 튼 적이 있었는데 민찬인 티브이 고장 났다 하니 먹히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서영이도 좀 더 확실하게 하려고 완전 셋톱을 숨겨버렸다. 이럴 거면 유플러스 TV 왜 신청했나 모르겠다만 이사 갈 땐 절대 TV 안 사고 신청도 안하리라!!(뭐 그때 가서 맘 바뀜 할 수 없고ㅎㅎ)
비도 오고 어두컴컴 감기약도 먹고 평소 7시 기상하는 서영이가 9시 30분에 기상. 집이 무지 엉망이었지만 서영이 깨지 말라고 청소도 안 하고 있었다. 늦게 일어나 그런가 눈떠서 밥 먹고 놀고 오빠 하는 게임 들고 와 나도 하고 싶다고 하더니 말도 정하고 주사위도 던지고 엉터리로 숫자 세어서 말도 이동하고 논다. 블루마블의 룰도 모르면서 엄마, 이거 살 거야? 물으면 내가 안 산다고 대답하면 아~ 엄마 돈 없어서 안 살 거야? 하며 예전 오빠와 엄마의 게임 대화를 그대로 읊어주고 있다.
울 서영이 라바 끊기 2일째.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그네 타고 미술 가려고 준비하려고 하니 그 때야 생각이 났는지 라바를 찾기 시작한다. 아저씨가 텔레비전 나오게 고쳐서 가져와야 된다고 하니 그때부터 또 짜증 내기 시작. 반응을 보이거나 달래거나(달래도 소용없음) 해도 뭔 차이가 있나 싶어 안 나온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나는 내 할 일을 했더니 혼자 오분쯤 짜증 대박 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부엌에 와 설거지하는 나에게 이건 뭐예요? 하고 묻는다.
아~~ 또 당했으나 나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하던 일에 집중하고 그러고 나갈 채비를 했다. 뭐가 문제인고 생각해 보니 라바를 보여준 게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좀 편해보려고 너무 순. 순. 히 라바를 보여준 게 문제인 거 같다.
엄마~ 라바 보고 싶어요!!
그래? 딱 30분만 보자!!
이래온 것이 실수. 너무나 쉽게 보여주시던 라바를 안 보여주니 이게 뭔 일인가 티브이가 안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떼를 부려 보는 거 같은 느낌이었다. 며칠 더 고생해 보자. 무시하다보면 잊히겠지. 민찬이 민서 때는 참 조심하고 신경 쓰던 것들을 서영이는 너무 쉽게 노출되는 거 같다. 셋째는 어쩔 수 없다지만 그 어쩔 수 없음을 부모들이 큰 아이에 맞춰 가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셋 키우기 힘드니까 시간을 벌어 보려고 엄마도 사람이니까 그렇게 스스로 위안을 삼다 보니 오늘날 울 서영이가 라바 때문에 저렇게 울고 있는 듯. 결국 되돌아보면 이 또한 내 탓이라고.
내가 다시 엄마가 된다면
모든 영상과 매체는 최대한 늦게 늦게 늦게 보여주리라. 우리 아이들도 매체에 크게 노출 시키지 않고 키웠다. 한동안은 티브이 틀지 않기를 생활화하며 아이들이 다 잠든 뒤에나 소리 죽여 티브이를 켜서 보곤 했다. 되도록이면 책을 보거나 서로 놀이를 하거나. 기관도 가지 않고 집에서 셋이 있다 보니 서로 친구가 되어서 굳이 티브이를 틀지 않아도 같이 놀 친구들이 있어 아이들도 티브이를 크게 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셋 중 하나가 아프거나 신생아를 키울 때에는 한 아이에게 집중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아이들이 놀다가 다치거나 하지 않게 하기 위해 DVD를 적극 활용했다. 교육용 CD를 틀어주고 아이들이 노는 동안 아픈 아이를 돌보거나 수유를 하거나 시간을 벌었다. 휴대폰도 첫째가 5학년이 끝날 무렵 생일 선물로 사 주고 그전에도 정해진 시간만큼만 부모의 휴대폰을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그런데 티브이고 휴대폰이고 개방을 하는 순간, 이전에 노출을 했느냐 안 했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쓰나미처럼 시청 욕구는 강해지고 부모가 시간을 조절하거나 제한하지 않는다면 하루가 모자랄 만큼 아이들은 스스로 헤어져 나오지 못하고 미디어에 빠지게 된다. 만약 우리 부부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면 이 달콤한 세계를 끊어내지 못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티브이를 켜지 않으면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게임도 하던 아이들이 티브이를 개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미 판도라의 상자는 열려버렸다. 휴대폰은 전파력이 티브이보다 어마어마하게 컸고 걷잡을 수 없이 집착하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 노출시키면 되돌리기 힘들다. 나도 늦게 최대한 늦게 보여줘야지 했지만 어쩌면 조금 더 시간을 끌었어도 나쁘지 않았겠다 싶은 마음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정한 것은 시간 정하기였다.
나는 생각보다 마음이 무디고 아이들이 바라는 것에 마음이 약해서 한 시간만 보라고 해 놓고
엄마 이거 끝날 때까지만 좀 볼게요~ 하면 그래 그것만 끝나면 꺼!라고 끌려가는 타입이다. 아이들도 그걸 알아서 엄마한테 말하면 더 보게 해 준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그런 나의 브레이크를 걸어준 사람이 남편이다. 남편은 이런 일에 있어서는 무지하게 단호해서 얄짤없이 휴대폰 꺼라! 를 실천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모든 영상과 티브이 관련 허락은 아빠에게 맡겼다. 한 사람이 정해진 약속에 맞게 관리하니 아이들도 헷갈리지 않았고 더 이상 시간 늘리기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부모 중 훨씬 단호한 한 사람이 맡아서 하는 것이 효율적임을 아이들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잘 다져놓은 습관은 꾸준함이 유지된다면 가족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이 된다. 그러나 우리 집 중학생 아들 녀석은 요즘 게임시간을 늘려달라고 매일 조르고 있다. 어차피 게임 시간은 절대 줄일 수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조금씩 아주 늦게.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먼저 늘여줄 필요는 절대로 없음을 키우다 보니 알게 되었다. 팽팽한 줄다리기처럼 우리는 항상 휴대폰으로 씨름하지만 성인이 되면 이 줄도 끊어지고 말겠지. 조금만 더 버티자. 뒤로 더 깊게 드러눕는 팀이 이기는 것이 줄다리기의 진리다. 오늘도 줄을 잡고 뒤로 드러우눠있는 건 나다. 바닥까지 끝까지 잡고 버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