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2. 28.
새 집에서의 첫날, 이 녀석들 불 끄고 자라 하니 그 사이 민서는 덕포 생활이 정이 들어서 꼬꼬할아버지 보고 싶다고 복자도 보고 싶다고 운다. 이사 안 오고 싶다고 새집이 싫다고 다시 가고 싶단다. 괜히 내가 맘이 짠해서 따라 울고 말았다.
지난 일요일. 저녁같이 먹고 나오고 싶었는데 아버지 손님이 오셔서 그냥 왔더니 맘에 걸려서 오늘 이사하러 가면서 아귀찜이랑 과일 사서 그동안 감사했던 동네 어른들을 위해 마을회관에 넣어드렸다. 이사해야 하는데 비가 너무 와서 날짜도 미루고 드디어 새 집에 들어왔다. 진짜 친정을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맘이 편치가 않았는데 민서가 내 맘을 알아차린 거 마냥 울고 있으니 나도 너무 맘이 안 좋다.
아빠는 우리가 떠난 첫날 밤에 많이 우셨다고 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눈물이 그리 나시더란다. 아이들이 있었고 혼자 있던 시간 속에 우리는 가뭄 속 단비처럼 그리운 사람, 가족의 빈자리를 채웠고 알게 모르게 그 시간 동안 아버지는 옛날 엄마랑 함께 살던 그때를 기억하셨는지도 모르겠다. 함께 사는 가족이 있고 부족하나마 밥 차려 주고 빨래하는 사람이 있고 늦게 들어오면 도란도란 사람 소리가 나고. 그런 오랜만에 느끼셨던 북적거림이 이제는 없어졌으니 얼마나 적적하셨을까 싶다.
그렇게 혼자 살아오신 시간이 근 십 년.
십 년 만에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위안이 되셨었는지도 모르겠다. 일하는 엄마랑 같이 따라다니느라 하굣길에 누군가 맞이해 주는 경험이 없던 민서도 매일 집에 돌아오면 두 팔 벌려 맞이해 주시던 할아버지가 그리울 것 같기도 하구나. 내가 힘들까 봐 저녁도 회관서 드시고 방에 보일러 불 올러두시고 운동 다녀오시던 아버지. 운동 다녀오시면 드시라고 챙겨 놓은 호빵이나 주던 부리를 운동한 보람도 없이 맛있게 드셔주시던 아버지.
엄마 돌아가시고 엄마 빈자리만 늘 그리워하면서 그 자리를 혼자 지키고 계실 아버지 마음에 대해서는 깊이 헤아리지 못했던 거 같아 참 죄송하다.
어린 민서에게 오늘은 참 많은 것을 배운다.
맑고도 고운 내 딸의 두 눈에서 어린 시절 나를 그렇게 봐주셨을 내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게 되는 그런 밤.
잠 못 드는 밤...
내가 다시 엄마가 된다면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참 좋았다. 그냥 가부장적인 아버지이지만 어렵지 않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아버지가 편했다. 가족을 위해 엄청나게 열심히 일하시지 않으셨지만 그런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도 하기에 가끔은 서로 놀리기도 하면서 사이좋게 지낸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혼자 사시는데도 많은 챙김을 드리지 못했지만 그냥 아버지는 항상 그 자리에 계실 것 같아서 그렇게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큰 수술을 몇 번이나 하셨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내 믿음처럼 아버지도 다시 일어나셔서 집으로 돌아오셨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이 있거나 필요한 가전이 있을 때 항상 나에게 전화해서 사달라고 하시지만 그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게 좋았다. 그런 사랑하는 아버지가 내 옆에 계신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우리 아빠 딸이 돼야지. 그때는 좀 더 좋은 딸이 되어서 우리 아버지 조금 덜 외로우시게 해 드려야겠다. 우리 엄마 말 잘 들어서 더 오래 사시게 하고 두 분이 함께 늙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더불어 너무나 그리운 우리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