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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윤희 Jan 27. 2024

크리스마스

2021. 12. 25.

자식은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맞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것도 맞다. 누구를 위해서 산다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이다. 누가 누구를 살린다는 것도 어리석음이고 자식이 내 뜻대로 다 행동하리라 믿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하물며 내 배에서 낳은 것도 아닌 남편 또한 남이고. 다 내 마음대로 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이 욕심임을 우리 엄마는 그 긴 세월을 혼자 이겨내고 사셨을까.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내가 아는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어찌 다 안다고 여겼었을까.


좋아서 한 일인데 행복해서 살아온 일인데 내가 나를 잃고 살았구나 싶다.





내가 다시 엄마가 된다면


아이를 키우다 보니 사춘기가 올 때를 직감적으로 느낄 때가 있다. 더 이상 엄마의 말에 '예'가 아닌 투덜거림이 나오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턴 아이만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아이에게 사근사근 이야기하지만 점점 어긋나는 반응에 어느 순간 나도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아마 저 일기를 썼을 때 많이 상처를 받았었나 보다. 그래도 아이랑 싸우지 않고 나의 어리석음을 알아차린 게 대견하다. 


그런데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작고도 여린 우리 엄마에게 꼬라지 부리던 옛날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한없이 미안하고 부끄럽고 죄송해서 눈물이 난다. 뭐 잘났다고 그리 엄마한테 잘난 척을 했을까. 엄마가 다시 나의 엄마로 태어난다면. 나는 오롯이 엄마의 딸이 될 테다. 꼬라지 부리지 않고 잘난 척하지 않고 엄마말 잘 듣는 세상에서 제일 착한 딸이 될 거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그곳에서 혹시라도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내 엄마로 다시 만날 수 없다면 이 담엔 내 딸로 다시 오세요.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꼬라지 부리고 무시하고 잘난척하며 철없는 내 딸로 다시 돌아와 주세요. 힘들 것 없이 오냐오냐, 그래그래 엄마가 받아주던 것처럼 저도 다 받아줄게요. 이생에 다 못한 사랑 다 주고 싶어요. 저녁 햇살 내려앉던 우리 집 앞마당에서 함께 기대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그때처럼. 엄마, 다시 만날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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