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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윤희 Apr 01. 2024

교포 교사가 버려야 할 것

넷. 꼰대스러움

 5년 차시절, 초등학교 은사님과 같은 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은사님이니 당시 연세가 50대 후반쯤 되셨던 것 같습니다. 승진을 목전에 두시고 그 단계를 넘기 직전 6학년 실과 과목을 전담하시며 함께 근무하셨었습니다. 저는 동학년 교사임을 떠나 은사님이시기에 선생님께 항상 예의와 격식을 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께서 학년 연구실에 들어올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고개만 까딱한다는 젊은 선생님들을 지적하셨습니다. 예의는 지키라고 말씀하셨지요. 선생님이 자리를 뜨시자 젊은 선생님들은 한 마디씩 합니다. 왜 자리에서까지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기 항변으로 한참을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교포 교사가 버려야 할 꼰대스러움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니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교직사회는 비교적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회집단보다는 도덕적 윤리를 강조하고 이를 가르치려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보니 그런 분위기가 더 형성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대부분 '교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기에 상호 존중의 문화가 자리 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경력과 상관없이 모두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상대를 대하고 존중해 줍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렇게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간혹 예의와 동등을 혼돈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젊은 선생님들은 우리의 직업 문화를 중심으로 생각했다면 저의 은사님은 예의를 먼저 생각하셨던 것이겠지요. 그래서 은사님 입장에서 하시는 말씀이 어떤 뜻인지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이를 받아들이는 젊은이들을 은사님의 말씀을 꼰대스러움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들의 입장 역시도 이해가 갑니다.  


 얼마 전 명퇴를 하신 50대 후반의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규발령받은 옆 반 교사가 자신을 보고 이름을 부르며 "OO쌤!"이라고 했답니다. 순간 너무 우스워서 폭소를 터뜨리셨다고 합니다. 이제 퇴직을 앞둔 경력 30년이 넘는 선배교사를 친구처럼 부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하셨답니다. 달라지는 교직문화도 선생님의 명퇴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셨습니다. 세대가 변하고 시대가 달라지면서 이제는 나이 든 세대의 조언과 말들이 대부분 '꼰대'라는 이름으로 치부되는 것 같습니다. 이 두 분의 선배님들 입장이 더 공감이 가는 저 역시도 꼰대일까요? 


 관리자도 아닌 그렇다고 직속 업무 부장도 아닌 교포 교사가 이런저런 간섭으로 지적질을 한다면 젊은 교사의 입장에서는 듣기 싫은 말이 될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흔히 나이가 많다고 해서 먼저 살아 보았다 해서 그것이 자신이 아는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경험을 통해 자신의 교직 노하우를 쌓아하는 교사의 입장은 더욱 그렇습니다. 아직은 서툰 어린 교사가 안쓰러워서 도움을 주고 싶어서 상대가 원하지 않을 때 먼저  가르쳐주고자 애쓸 때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직업병입니다. 그런데 이 직업병은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나 적용될 문제이지 도움을 원하지 않는 상대 직원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은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때는 미움받을 용기라는 심리학자의 책이 유행했지만 교포 교사는 미움받지 않을 눈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 눈치가 바로 교포 교사의 꼰대스러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봄 꽃이 화려하게 펴서 만개했을 때, 원하지 않아도 향기를 풍기며 달콤함을 내뿜으면 지나가는 나비와 벌은 자연히 찾아들기 마련입니다. 내 향기를 맡아보라 유혹하지 않아도 스스로 달려와 꽃의 가장자리에 걸터앉게 될 것입니다. 나에게는 화려한 향기라 생각되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고리타분한 잔소리가 될 수도 있음을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들은 알아야 합니다. 물론 저도 잘 되지 않습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것들이 있으면 뭐든 말하고 싶어서 설명하고 싶어서 미치거든요.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다 생각하면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꼰대가 아닌 좋은 선배가 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좀 전에 제가 전달사항이 있어 옆 반에 들어갔는데 말입니다. 컴퓨터 책상에 앉아 고개만 돌려 음, 음하고 추임새를 넣는 후배님을 보니 왜 이리 속이 꼬일까요? 하, 어쩔 수 없이 저도 뼈 속까지 꼰대가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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