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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윤희 Apr 04. 2024

교포 교사가 버려야 할 것

다섯. 정년퇴직

 올해 2월 잘 알고 지내던 두 분 선생님이 명예퇴직을 하셨습니다. 명예퇴직 명단에서 아는 사람의 이름을 발견한다는 것은 이제 나도 가까워졌구나라는 신호 같아서 마음이 헛헛합니다. 두 분 선생님께 기억에 남는 이벤트를 해 드리고 싶어서 작은 플래카드를 준비했습니다. 시중에 파는 제품이긴 하지만 저 문구가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요. 오래된 직장을 떠나 시간과 일정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신 거 같아 부럽기도 하고 조금은 아쉽기도 한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교포 교사가 되기로 결정한 후 자연히 다음 고민이 뒤따랐습니다. 승진은 포기했고 그렇다면 정년퇴직을 것인가 적당한 때에 명예퇴직을 것인가. 굳이 그걸 먼저 정하고 일을 필요는 없지만 모든 일에 진심으로 J인 저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일을 과연 언제까지 있을까 고민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교직 경력이 23년에 접어들지만 평교사로 정년퇴임을 하시는 초등교사는 딱 한 분 만났습니다. 그리고 내년 2월 두 번째 분을 만날 차례입니다. A선생님은 평생을 담임교사로 근무하시고 내년 2월 정년퇴직을 앞두고 계십니다. 저는 정년을 생각해 봤을 때, 아이들이 나를 할머니 선생님이라고 싫어하면 어쩌지? 학부모님들은 우리 선생님 꼬부랑 할머니다라고 말할까 봐 62세 퇴직을 상상하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런 저에게 모델이 되어주신 분이 A선생님이십니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시고 밝고 건강하셔서 벌써 정년퇴직을 하신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씩씩하십니다. 아, 우리 부장님 정도면 정년퇴직까지 할 수도 있겠구나 싶을 만큼 평범한 이웃 선생님의 모습이십니다. 그래서 내 건강만 뒷받침되어 준다면 잘하면 정년퇴직도 할 수 있겠구나 희망이 생겼습니다.


 올해 마지막 제자들을 만나는 A선생님은 정년의 해라고 특혜를 바라지는 않지만 딱 하나 원하는 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작년 한 해 뽑기로 걸린 교실이 너무 외지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급식소로 가야 하는 위치여서 너무 힘들었다시며 마지막 한 해는 좋은 교실에서 마무리하고 싶은 게 소망이라 하셨습니다. 정말 소박하지 않습니까? 평생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는 소원이 겨우 좋은 자리의 교실이라니요. 선생님의 마지막을 응원이라도 하듯 올해는 제일 좋은 교실을 뽑으셨다고 합니다. 하늘도 마지막 해라고 선물을 주시는구나 싶었습니다. 


 중고등학교는 나이가 있고 경력이 많으신 담임선생님을 선호하지만 초등은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지 나이 드신 분이 담임을 하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시대감각에 뒤떨어질까 봐, 아이들의 감성을 이해 못 할 까봐, 나이 드신 분들은 강압적일까 봐, 과연 이 어린아이들과 같이 뛰고 생활할 수 있을까 싶으신 걱정이겠지요. 저도 저의 미래를 상상하면 벌써 숨이 차지만 제가 지켜본 선생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가지기 힘든 여유가 있고, 아이들의 잘못을 탓하기 이전에 따뜻하게 안아주시고, 내 손주 보듯 마냥 귀엽고 예쁜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십니다. 선생님의 교실에 들어가면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먼지 쌓여 굴러다니는 우리 교실이 마냥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경력과 연륜입니다. 


 솔직히 저는 정년퇴직을 할 자신은 없습니다. 내 건강이 지치거나 힘들어서, 내 아이를 키울 만큼 키워서 나도 이제 쉬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중간에 이 길을 내려갈 듯합니다. 끝까지 완주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버틸 수 있을 만큼은 이 자리를 지켜보겠다는 마음은 있습니다. 때로는 승진도 못할 거 나는 정년으로 그들과 차별화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도 있습니다. 당신들은 관리자로 승진했지만 나처럼 끝까지 교실을 지키지는 못 하지 않았느냐 하는 아무도 시비하지 않는 객기를 부려보기도 합니다. 무엇을 하든 간에 정년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기에 욕심은 버리겠습니다. 비록 내 교직인생을 다 채워보지 못하더라도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평생 직업 시대에 한 직장에서 30년 넘게 일한다는 것은 어리석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시간이 가면 가는 대로, 그대로 놓아두면서 한해 한해 아이들 농사에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저에게도 자유가 오겠지요. 그날이 참으로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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