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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Nov 24. 2022

내 남편의 모든 것

3년 만에 만나러 갑니다

벌써 3년이다. 한국을 떠난지도, 남편고 두툼한 손을 잡아본지도.


3주가 넘던 중국 입국자 호텔 격리 기간이 5일로 획기적으로 줄면서, 이번 겨울 방학 때는 큰맘 먹고 한국에 다녀올 계획을 영상통화로 남편에게 전했다.


"자기, 나 가면 잘해 줄 ?"

"그럼, 커피 많이 사 줄게."

"또?"

"맛있는 베트남 쌀국수 집도 알아놨어. 6천 원 밖에 안 해."

"또?"

"산책도 많이 하자."

"또?"

  

여전히 소박하고 단순한 그의 성격에 , 웃음이 난다. 그는, 내가 팬티 속부터 머릿속까지 샅샅이 알고 있는, 유일한 남자다. 이제는 함께 산 세월이 부모님과 산 것보다 더 오래되었고 두 생명까지 함께 만들어 책임지고 있으니 가족보다 더 끈끈적한, 뭐랄까, '또 다른 나'라고도 할 수 있다.


공항에서 못 알아보는 건 아닐까? 너무 오랜만이라 대화가 서먹서먹면 어쩌지? 밤에 안방에 같이 누우면 왠지 낯선 아저씨 냄새가  않을? 괜한 걱정들을 머릿속에 굴리 오랜만에 만나게 될 그를, 미리 '정리'해 본다.


1. 전공


우리는 같은 과 커플이었다. 철학을 전공했음에도 어쩌다가 기술직(노가다)일을 하고 있는 그는 날 우는 소리를 한다.


" 나, 문과체질인데 기계 만질라니까 힘들어 죽겠다야."

"20년 동안 책 한 권 읽는 걸 못 봤는데 자기가 무슨 문과체질이야?"

"그럼, 나 체육과 체질인가?"

"체육과? 무슨 체육과가 몸이 그래? 배 보니까 금방이라도 출산하겠더만."


그는 전공이 불분명하다. 굳이 갖다 붙인다면 한량과?


"자기, 오늘 주말인데 푹 쉬었어?"

"나, 안 쉬었는데."

"안 쉬고 뭐했어? 일 했어?"

"아니, 집에 가만히 있었어."


병원에, 특히 한방병원 입원해서 뜨끈뜨끈 한적하게 누워있는 걸 좋아하니 한방병원체질?


"난 병원이 좋드라. 이상하게 병원에만 오면 영혼이 정화되는 거 같고 몸과 마음이 안해져."


2. 외모 성격

내 눈에도 갑자기 눈물방울이 맺혀 떨어지며 콧등이 찡해졌습니다.... 바보여서 그런지, 삼촌은 새처럼 깨끗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졌습니다.




대학을 나왔다는 것만 빼면 용구 삼촌과 모든 면에서 비슷하다. ‘순구, 춘구, 집안 돌림자로도 용구가 될 차례였다. 그는 물욕도 과시욕도 성취욕, 권력욕도 없다. 그래서 경쟁과 꼼수, 자기착취를 모른다. 더불어 콤플렉스도 트라우마도 없고 뭘 증명하겠다거나 두고 보라거나, 곧 갚아주겠다거나, 기여코 본 때를 보여주겠다는 것도 일절 없다. 그 어떤 슬픔이나 모욕, 고통그저  콧구멍으로 들어왔다가 다른 콧구멍으로 흘러나갈 뿐, 그의 마음속엔 소소한  평안을 위한 자리만 있다. 


퇴근 시간이면 쏜살 같이 달려 집에 온다. 세 끼 내내 어머님이 담 주신 김치에 달걀 라이만 먹어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벼농사 짓 집 아들이라 이 세상에서 라면이 제일 맛있단다. 늘 가난하고 단순하고 스스로 행복한 사람. '욕망의 화신', '자본주의의 노예'인 나를 만나 지금처럼 내몰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마흔 넘은 지금까지도 시골집 뒷방 구석에서 용구 삼촌처럼 헐렁한 츄리닝 바지를 입고 설렁설렁 소 풀이나 뜯기며 라면에  말아먹으면서도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용구 삼촌이 가장 행복할 때


3. 어떤 남편


회오리바람이 불던 어느 날, 양지 볕에서 꼬박꼬박 졸고 있던 오소리 아줌마가 읍내 장터까지 날려간다. 당혹스런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걸어 돌아오는 길, 우연히 학교 안 예쁜 꽃밭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나도 얼른 집에 가서 예쁜 꽃밭을 만들어야지.'


욕심과 부러움에 눈이 뒤집힌 오소리 아줌마, 바로 나


고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오소리 아저씨를 다그.


오소리 아저씨는 아줌마가 시키는 대로 괭이로 밭을 일구었어요.
"영차!"
"아니, 여보! 그건 패랭이 꽃이잖아요? 쪼지 마세요!"...
"에구머니! 그건 잔대꽃이잖아요? 쪼지 마세요!"...
"그럼 대체 꽃밭을 어디다 만들자는 거요?"


꽃밭을 만들 데가 없다. 아줌마 아저씨가 사는 산골이 이미  천지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 둘레엔 일부러 꽃밭 같은 것을 만들지 않아도 이렇게 예쁜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구려."
"그건 그래요. 이른 봄부터 진달래랑 개나리랑 늦가을 산국화까지 피고 지고 또 피니까요."
"겨울이면 하얀 눈꽃이 온 산 가득히 피는 건 잊었소?"




아내의 욕심과 어리석음을 묵묵히 참아주는 순둥이 오소리 아저씨를 보면서, 한국에 두고 온,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내 남편을 떠올. 


어느 봄날 일요일 오전, 동네 산책길이었다. 하얗게 핀 목련꽃을 보며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우리가 함께 좋아하고 함께 불렀던 김광석 노래를.


그녀의 웃는 모습은 활짝 핀 목련꽃 같아. 그녀만 바라보면 언제나 따뜻한 봄 날이었지...

가만히 걸으며 듣고 있던 남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꼭 여배우가 부르는 것 같네.


떠나올 때부터 다시 돌아갈 걸 알았던 그의 곁으로, 이제 곧 돌아간다.


남편의 별명은 코난, 그가 코난이면 나는 당연히 라나다. 근데 남편은 아니란다. 내가 코비란다. 어쨌든, 우리의 즐거운 한 때.



*이미지 출처, 참고 자료

-권정생 《용구 삼촌》 산하, 2012.

-권정생 《오소리네 집 꽃밭》 길벗어린이,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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