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천우 Nov 16. 2022

당신이 브런치 글을 쓰는 사이에

한 달 동안 브런치 글을 쓰지 않았다

당신이 부지런히
브런치 글을 쓰는 사이에


나는 겨울을 맞이했다. 서리가 덮이고, 첫눈이 내렸다.


매일 아침, 두터운 패딩을 입고 털모자를 쓰고 빼곡히 출근했다. 직장에서는 각종 행사와 공문을 처리하고 수업 진도를 빼고 기말지필평가 문제를 출제했다.



퇴근 후에는 소파에 포옥 안겨 600쪽, 800쪽이 넘는 벽돌책 2권7권짜리 장편소설 읽었다. 오랜만에 느긋하게 독서를 즐겼다. 


밤 10시 잠자리에 들고 아침 6시 일어나는 착하고 단순 생활을 반복했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등산을 하고 만두를 사 먹었다. 뇌도 열망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매일 브런치에 들어오기는 했다.  글이 어떤 하늘색 콩알 받지 못한 것을 확인하고(딱 두 번, 브런치로부터  재촉 알림을 받았다) 무심하게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었다. 어떤 이의 평화로운 이혼 이야기, 어떤 이의 설레는 출간 소식, 어떤 이의 조회수 몇 만을 찍었다는 이야기, 저 멀리 따뜻한 나라특이한 풍경, 음식 이야기 그리고 백일 동안 매일 브런치에 글을 올리했다는 이야기.


가끔은, 달 전 응모한 내 브런치북의 인사이 리포트 확인했다. '완독자 1명, 누적 조회수 245, 주요 독자 60대 남성'


 

아, 이렇게 인기 없는 책이라니! 종이책으로라도 출간했다면 출판사의 부담이요 지구의 죄인, 집 안의 처치곤란 쓰레기가 될 뻔했다. '연변'이라는 주제가 문제인 걸까, 내 글쓰기 실력이 문제인 걸까. 둘 다문제인 거겠지.  책을 완독해 준 유일한 1명은 누. 브런치 공모전에서 예선작을 걸러내는 업무를 맡은 인턴사원일까. 연변에 향수를 가진 60대 아저씨일까. 아니면 단순 클릭 실수?


이대로 가다간 7년 동안 브런치 작가 활동을 하고, 발행 글이 600편이 넘고, 야심 차게 만든 브런치북만도 8권이 넘지만, 독자 수도, 글쓰기 실력도 일반반한  '만년 카카오 자원봉사자'로 끝나겠구나 싶다. 오랫동안 막연히 품어왔던 글쓰기의 꿈이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오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어느 진지한 브런치 작가의 말처럼, 과연 내 삶 글쓰기에 달려 있는가. 내게 글쓰기를 지속해나갈 이유와 열정, 끈기가 있는가. 글쓰기를 지속해나갈 뿐만 아니라 질적 도약까지 이루어낼 잠재력이 있는가. 이쯤에서 때려치우고 본래의 평온하고 여유로운 '독자의 저녁'되찾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일주일에 한 편 정도 간신히 써내던 초라한 글이었지만 쓰지 않을수록 점점 더 초라해졌다. 쓰지 않을수록 안 쓰는 게 더 자연스러워졌다. 쓰고 싶은 것도, 굳이 드러내 타인과 나누고 싶은 것도 없어졌다.



결국, 한 달 만에 글 한편을 발행했다. 글 수준은 못 미덥지만, 한 달 내내 묵직하게 미뤄뒀던 방학 숙제를 개학식 전날 밤에야 겨우 끝낸 듯 개운하기는 하다. 나를 까맣게 잊은 줄 알았던 익숙한 이름들이 하나 둘 병문안 오듯 찾아와, 어수선한 내 글에 따뜻한 라이킷 하나씩을 꼬옥 눌러주고 간.


브런치에 소소하고 다정한 글들만 덩그라니 띄워둔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돌아오지 않는 작가들이 있다. 나는 아직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짱깨'의 계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