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는 중국과 중국인을 함부로 말하게 되었다. 사적인 대화에서 뿐만 아니라 공공 미디어, 각종 SNS에서도 이성적인 비판을 넘어 선, 중국혐오와 멸시가 당연하게 유통된다. '중국발 미세먼지', '사드보복', '우한 폐렴', '홍콩사태', '역사공정', '김치공정', '한복공정', '연예계 내정간섭', '중국 신장 인권 문제',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오심논쟁', '시진핑 장기집권' 등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들으며 온 국민이 '중국혐오열병' 이라도 앓는 듯 그 정도가 갈수록 더 심해지는 듯하다. 왜 그렇게 된 걸까? 중국이 정말 그렇게 나쁜 걸까?'나쁜 중국'이 유일한 원인일까?
그 기원과 맥락을 통쾌하고 명철하게 파헤쳐주는 좋은 책을 만났다. 지식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멋지게 해 준 저자와 출판사에게 감사와 존경을!
1. '짱깨'의 기원
짱깨라는 개념은 역사성을 지닌다... 짱깨라는 용어는 사대의 대상이었던 청 제국이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몰락하고,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식민지 시대에 조선에서 생활하던 중국인을 대상으로 등장했다.(92-93쪽)
돈통을 뜻하는 한자 '장궤(掌柜)'가 돈통을 관리하는 사람, 점주, 나아가 중국인 전체를 낮추어 일컫는 '짱깨'가 된 것이다. 조선에 이주하여 주로 중국 음식점을 차렸던 화교상인들이 처음부터 혐오의 대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인들에게 '호탕하고, 선의가 있으며, 부유한 사람'으로 인식되던 중국인이 어떻게 '더럽고 시끄럽고 악착같은 사람', '청국놈','거머리' 등 미개하고 열등한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일본 상인과 경쟁하는 화교 상인을 견제'하고 '중국인 노동자와 조선인 노동자 사이 갈등을 부추'겨 궁극적으로는 조선에 이어 중국까지 식민화하고자 한 일본의 의도, 그리고 이에 부응한 친일 지식인과 《조선일보》《동아일보》의 합작이 있었다. 그렇게 조선인들의 중국인 인식이 일본의 '식민담론에 포섭' 되었다.
혐오는 혐오를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혐오를 부추기는 세력과 사회구조가 있기 때문이다.(98쪽)
'짱깨주의', 즉 광범위한 대중의 중국, 중국인 혐오는 지금까지도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제국주의 일본이 아닌, 미국과 한국의 안보 보수주의자들이 그 배후에 있다.
2. 누가 이득을 얻는가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 74.6%(미국 42.7%, 일본 71.2%), 중국을 적이라고 인식한 20대 62.8%, '중국은 한국의 국익을 위협하는 대상이다'라고 응답한 사람 74.4%... 중국은 미국의 최대 무역 적자국이고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인 걸 감안하면, 한국 내 강력한 유사인종주의 말고는 이런 현상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2021.5.《시사인》설문조사, 100-101쪽)
요즘처럼 한국인 대부분이 '짱깨주의'를 당연하게 여길 때 어떤 일이 생길까? 포퓰리즘을 이용한 반중국 성향의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당선된다. 그는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패권국, 미국 편에 확실히 서며, 우리나라의 실질적, 경제적 이득이 아닌 이데올로기적 이득을 위한 정책 결정을 내린다. 한반도 내 미국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며 북한, 중국과의 긴장관계가 더욱 고조되는 신냉전주의, 신식민주의 체제가 가동된다. 북한과의 종전선언이나 통일이 더욱 요원해진다(일본이 좋아한다). 환경오염, 미세먼지, 실업률 증가, 인플레이션, 미래 산업 선점 등 국내 긴급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손쉽게 중국 탓으로 돌리며 문제를 덮는다.
《시사인》이오성 기자의 영민한 기사 제목처럼 '중국에 대한 반감, 그 반대편에 친미가 있다'. '공포 마케팅'이 필요한 안보 보수주의자들, '제목 장사'하는 기자와 언론사들, '클릭 장사'하는 유튜버들이 이득을 얻고, 그 대가는 일반 국민들이 고통스럽게 치르게 된다.
자신들만의 전통 야채절임 음식도 넘쳐나는데, 중국 정부가 정말 김치를 자기 나라 음식이라고 우겼을까? 몇몇 중국 유튜버들만의 잘못된 견해는 아닐까? 다른 54개 중국 민족들이 각각 자신들의 전통 의상을 뽐내며 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할 때, 우리와 뿌리가 같은 조선족이 한복을 입고 등장하면 안 되는 걸까? 홍콩사태는 정말 홍콩버전 '광주 민주화운동'일까? 그때 한국 정부가 홍콩 편에 서지 않은 것은 단지 '친중정권'이라서 였을까? 나의 순수한 분노가 타인의 돈벌이에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타인이 떠먹여주는대로가 아니라 스스로,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야한다.
...이제는 언제든지 모두가 모든 것에 자기 의견을 내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의견들은 친구들에게, '전문가'들에게, 그리고 가장 교활한 알고리즘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 결과 우리는 희뿌연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타지마할은 정말로 아름다운가? 아니면 인스타그램 속 황홀해하는 사진들을 보고 타지마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 것인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37쪽
3. 신식민주의를 넘어 다자주의로
1780년(조선 정조 4년, 청나라 건륭 45년). 수레도 없고 상업과 공업도 뒤쳐진 변방의 작은 나라, 명나라가 패망한 지 130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형님 나라의 복수를 운운하며 청나라를 오랑캐로 배척하던 조선. 그 조선의 '삼류지식인' 박지원은 사행단을 따라 직접 와서 본 청나라의 반듯하고 강성한 모습에, 큰 충격을 받는다. 《열하일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북경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게 "이번 걸음에 구경한 것 가운데 제일 장관이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제 딴에 '일류인사'들은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 아무것도 볼 만한 것이 없었다... 황제가 머리를 깎고 장상과 대신과 백관이 머리를 깎고 만백성이 머리를 깎고 보니... 한번 머리를 깎고 보면 갈 데 없는 오랑캐다. 오랑캐는 개돼지나 다를 바 없을 바엔 개돼지에게 무슨 볼 만한 것을 찾을 것인가?..."
드라마 속 머리 깎은 청나라 황제, 머리 깎았으니까 무조건 개돼지?
'중류인사'들은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 십만 대군만 얻는다면 관내로 줄곧 몰아쳐 들어가 온 중국 천지를 한번 청소를 한 뒤에야 장관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 자칭 '삼류인사'인 박지원은 '힘차게(!)'이렇게 말하겠다고 한다.
'기와 조각, 조약돌이 장관이라고. 똥거름이 틀림없이 장관이라고.' 그리고 따끔하게 덧붙인다.
'사람들이 참으로 오랑캐를 배척하려거든 중국의 발달된 법제를 알뜰하게 배울 것이요, 자기 나라의 무딘 습속을 바꿔 밭 갈고 누에 치고 질그릇 굽고 쇠 녹이는 야장이 일을 비롯하여 공업을 고루 보급하고 장사의 혜택을 넓게 하는데 이르기까지 모두가 배우지 않을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백성들의 튼튼한 준비 앞에 저들의 굳센 갑옷과 날카로운 병장기가 맥을 쓰지 못하게 될 때에야만 중국에는 볼 만한 것이 없다고 장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224-229)
250여 년 전, 박지원의 실사구시(实事求是)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지금 중국은 세계경제에서16%(2020년 기준, 미국은 25%)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경제대국이며, '세계의 공장에서 혁신 기업의 진원지로' '질적 전환'하고 있는 중이며, 인공지능 자동차, 드론, 로봇, 5G 등 미래산업 분야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의 부상 자체가 우리에게는미국 중심의 오랜 신식민주의를 벗어나 다자주의 평화체재를 구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나쁜 중국', '미개한 중국', '빨갱이 중국' 등의 프레임에 갇혀 무시하거나 대적하기에는 우리의 실익이 너무 크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주입한 '짱깨주의'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미국이냐 중국이냐 '새로운 주인 찾기'도 하지 말고, 시야를 더욱 밝히고 넓혀 다가오는 '다자주의'시대, 당차게 우리의 몫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