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천우 May 30. 2022

모범생 아들이 자퇴를 선언했다

인생의 유한 게임과 무한 게임

작년 여름, 공부를 잘하고 친구 많던 고2 아들이 갑자기 자퇴를 선언했다. 교내 수학경시대회 우수상을 받아온 다음날이었다.

"엄마는 가끔씩만 아들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잖아. 내 인생인데 나 자신은 얼마나 많이 생각했겠어? 한 학기 내내, 24시간 내내 고민했다구. 더 이상 학교 다니는 건 시간 낭비야. 엄마 아빠가 반대해도 소용없어. 어차피 내가 학교 안 가버리면 그만이야. 내 인생이니까 내가 결정 내릴 거고 책임도 내가 질 거야. 엄마가 아무리 설득해도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아."

부모와의 상의도 아니고 그냥 일방적인 선포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바둑을 잘 두고 깜짝 놀랄 만큼 레고도 잘 만들던 아들. 지랄 맞은 성격의 첫 아이와는 달리, 어릴 때부터 온순하고 명석해서 언제나 엄마의 자부심이던 아들. 엄마가 실패한 상위 엘리트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던 아들.


-자기야, 우리 아들 치과 의사 시킬까? 우리 곧 틀니 해야 하잖아. 1인당 천만 원씩, 총 2천만 원은 들 텐데 부모니까 공짜로 해주지 않겠어?

- 평생 남들 입속만 들여다보고 사는 거 보통 일 아닐걸. 공기업 어때? 철밥통에 돈도 많이 번다던데.

-그럴까. 얘는 말주변이 좋고 두뇌 회전도 빠르니까 변호사 어때? 우리 집안에도 변호사 한 명은 있어야지.


아들의 장밋빛(?) 미래를 맘대로 계획하며 남편과 달콤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던 아들이, 자퇴라니, 이제 편의점 알바도 어려운 중졸 학력자가 된다니. 더구나 엄마인 나는 교사였고, 아들은 공교육에서 충분히 잘 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서울대는 어렵더라도 서울 중위권 대학은 노려볼 수 있었다. 이제 학교는, '문제아'뿐만 아니라 아들 같은 '모범생'도 잡아두지 못하는 곳이 되었단 말인가.


-자퇴하고 뭐하려고?

-일단, 대학 가야지. 나 저녁형 인간이잖아. 그동안 아침 7시 30분까지 학교 가는 거 정말 지옥이었어. 아침에는 충분히 자고 10시쯤 일어나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독서실 갈 거야. 에어컨 빵빵한 독서실에서 공부하면 더 잘 돼. 미술, 체육, 음악, 동아리, 학교 행사, 뭔뭔 대회, 수행평가 같은 잡다한 걸로 시간 뺏기지 않고 하루 10시간은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어.

-혼자서 힘들 텐데, 대입 학원이라도 다녀야 하지 않을까?

-나 학원 싫어하는거 알지? 동영상 강의가 젤 잘 가르쳐. 나한테도 딱 맞고.

-너네 학교급식이 그렇게 맛있는데 포기하기 아깝지 않아?

-음... 그건 좀 아쉽네. 근데 내 인생이 더 중요하니까 어쩔 수 없지!


나의 고교시절, 투명인간처럼 우두커니 앉아있기만 했던 수학 시간이 떠오른다. 무서운 수학 선생님의 눈을 피할 수 있기를, 친구들 앞에서 모욕당하지 않기를, 배우는 것 하나 없이 늘 시계만 쳐다보며 바늘이 빨리 돌기만을 바랬던 수학 시간. 늘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 이후의 일들이 두려워 3년을 그저 얌전히 앉아있기만 했던 그 버려진 시간들. 그 귀한 시간에 그토록 좋아하던 소설을 맘껏 읽고 소설 습작이라도 했더라면, 유럽 어딘가를 맘껏 헤매고 다니기라도 했더라면, 지금 내 인생은 많이 달라졌을 텐데…….  그 시절 내가 용기가 없어서,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해내지 못했던 일들, 아들이 해내려 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엄마로서 내가 뭘 잘못한 게 아닐까, 학교가, 교사들이 뭘 잘못한 게 아닐까, 아직 어린 아들이 정말 혼자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로 한동안 마음이 어지럽고 힘들었다. 그러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종교학자 제임스 P. 카스 쓴 《유한 게임과 무한 게임》



인생에는 두 가지 게임이 있다고 한다. 유한 게임과 무게임. 유한 게임은 시작과 끝, 게임 규칙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게임으로 참가자격이 있는 사람들만 참가할 수 있다.


학교는 학위를 딴 이들에게 순위를 매긴 상을 수여하는 만큼 유한 게임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상은 졸업생들에게 한층 더 높은 게임에서 경쟁할 자격을 준다. 이를테면, 일류 대학, 그다음으로는 더 상위의 전문학교, 또 그다음으로는 더 상위 전문학교, 또 그다음으로는 직업적으로 점차 더 높은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식으로 말이다.(61쪽)


학교에서 좋은 성적이나 학위를 위해 경쟁하고, 직장에서 승진과 높은 급여를 위해 경쟁하듯 유한 게임은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순위 게임이다. 우리는 유한 게임에서 승리한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더 대왕 같은 몇몇 권력자, 왕과 재상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챔피언과 TV 스타들을 알고 있다. 유한 게임은 연극적이므로 미리 정해진 대본이 있고 이들의 승리를 인정하고 동경하고 오래 기억해 줄 관객이 필요하다. 내신등급(승자)이 정해지고 졸업하거나 은퇴, 퇴직, 죽음으로써 유한 게임은 끝이 난다.


우리는 살아있으면서 죽을 수 있고, 죽어 있으면서 살아있을 수 있다(35쪽)


한편, 무한 게임은 유한 게임과 정반대다. 무한 게임에는 공간적, 시간적, 수적 경계가 없으며 게임의 규칙 또한 플레이 과정에서 언제든 바꿀 수 있다. 원하면 누구든  참여할 수 어 자격 문제 없다. 또 무한 게임은 대본 없는 열린 결말, 가능성과 놀라움, 경계가 아닌 지평을 선사한다. 무한 게임의 유일한 목적은 게임이 끝나지 않도록 하는 것, 모든 사람이 플레이를 계속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예수, 정약용, 김정희의 예에서 보듯, 죄인의 오명, 유배, 심지어 죽음 이후에도 플레이가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아들의 결정을 지지하게 해 준 이 구절.


유한이든 무한이든 모든 플레이의 불변하는 원칙은, 플레이를 하는 사람은 누구든 스스로 원해서 자유로이 플레이를 한다는 것이다. 플레이를 강제로 해야만 하는 사람은 플레이를 할 수가 없다.(12쪽)
유한 게임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플레이를 한다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명백할지라도, 플레이어들은 대개 이 절대적 자유를 의식하지 못하며 그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건 강제로 해야만 하는 일로 여기게 된다... 유한 게임의 모든 제한은 자기 제한이다.(21~22쪽)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학교를 그만 둘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지만, 아들은 어떤 게임이든 본인이 원 않으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학교라는, 높은 성적을 위해 경쟁하는 지루하고도 진지 유한  게임을 그만두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그리고 공부 자체 특히, 수학의 즐거움이라는 혼자만의 가볍고(playful) 자율적인 무한 게임을 시작했다.



어느덧, 아들의 자퇴 후 1년이 흘렀다. 자퇴 후 몇 달 동안은 매일 독서실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며 투지를 불태우던 아들은 날이 추워지자 하루 이틀 독서실 출근을 거르더니 급기야 수염을 덥수룩히 기른 채 자기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남편의 첩보에 의하면 유한 게임도 무한 게임도 아닌, 컴퓨터 게임 핸드폰 게임 밤낮없이 몰입 중이라고 한다. 이러다 아들이 중졸 학력자, 저임금 육체노동자로 평생을 고단하게 살아갈까 봐, 부모에게 기생 사는 한심한 히키코모리가 될까 봐 걱 되지만 일단은, 아들이 선택한 무한 게임의 규칙이 좀 바뀌었나보다 하고 기다려 볼 생각이다. 혹시 의지박약, 전략 미숙으로 대입이라는 유한 게임에 실패하더라도, 아자신 인생이라는 무한  과정 일부분일 테니. 어쨌든, 실패한 그 자리에서  다시 자신만의 무한 게임을 이어갈 테니.



*이미지 출처, 요시타케 신스케, 《그렇게 그렇게》, 주니어 김영사


매거진의 이전글 Good for Thinkin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