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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Apr 05. 2022

Good for Thinking

나는 왜 케이크를 먹는가

자고 싶은 만큼 푹 자고도 침대에서 한참을 더 뒹굴다가 일어난다. 재택근무도 없고 업무 관련 메시지도 없다. 오늘은 청명절, 쩐(真) 휴일인 것이다!


여유 있게 커피를 내리고 (혼자 살지만) 냉장고에 보물처럼 숨겨놓았던 케이크를 짠(赞)하고 꺼낸다. 아침밥으로 케이크를 먹는 기분이란! 오, 이런 맛에 돈 버는 으른이 되는 거란다. 사실, 좀 우습긴 하다. 생일도 아닌데, 혼자 사는 사십 대 아줌마가 밥으로 케이크를 먹다니, 그것도 한 조각이 아닌, 온전한 한 통을. 아들이 그랬다면 폭풍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못하게 말렸겠지. 나는 왜 아직도 케이크에 대한 갈망을 끊지 못하는 것일까. 레비스트로스와 구조인류학을 쉽게 설명해 놓은 책, 양자오의 《슬픈 열대를 읽다》를 읽으며 그 이유를 짐작해 본다.


우리는 음식이 맛이 있거나 없다는 이유로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먹어야 하는가 하는 관념이 우리에게 그것이 맛이 있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맛이 있고 없고는 자연적이고 생리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심층적인 문화 가치가 결정한다.(223쪽)
어떤 음식이 사람들에게 맛있다고 평가되는 이유는 ‘good for eating’(먹기 좋은 것) 때문이 아니라 ‘good for thinking’ (생각하기 좋은 것) 때문인 것이다. (258쪽)


혀와 위장, 두뇌가 따로 노는 이 아이러니. 그러니까 나는 케이크가 정말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라 ‘케이크는 맛있는 음식’이라는 내 오래 박힌 생각 때문에 즉 ‘good for thinking’ 때문에 먹는 거였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몸도 입맛도 서서히 ‘자연’스러워진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너무 강한 단맛, 조미료, 심하게 가공된 음식과는 자연스레 멀어진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심지어 30대까지도 즐겨먹던 과자나 라면, 삼겹살 구이, 치킨, 청량음료, 아이스크림 등을 더 이상 내 돈으로 사 먹지 않는다. 먼저 몸이 받아들이지 못해 점점 안 먹게 되고 이제는 먹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혹시 누가 권해서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면 고문처럼 느껴진다. 요즘은 쌀밥도 부담스러워 삶은 고구마나 호박죽, 두오장(콩물) 등을 주식으로 먹곤 한다. 한데 왜 케이크는 아직도 즐겨 먹는가. 단것도 싫어하는데, 먹고 나면 뱃속도 편치 않은데 케이크가 맛있을 리 없다. 나는 케이크에 어떤 개인적 심리적 심층적 문화가치를 두고 있는 걸까.



어릴 적 넉넉하지 못했던 집안 형편 때문에 케이크는 가족의 생일날에도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 혹시 운 좋게 먹게 되더라도 식구가 7명이라 한 조각 이상은 먹기 어려웠다. 엄마가 일부러 남긴 케이크 반 조각을 얻어먹는 막내 동생이 그렇게 부러웠다. 내 몫의 한 조각을 다 먹고 나면 너무 아쉬워 케이크를 감싸고 있던 종이나 크림 묻은 접시를 샅샅이 핥아먹기도 했다. 교회를 다니면서는 하나님께 내일은 케이크를 먹게 해달라고 기도도 했다(그래서 신이 없다는 걸 일찌감치 눈치채게 됐는지도).  다소 느끼하고 촌스러웠던 버터 케이크의 시대가 가고 산뜻하고 세련된 생크림 케이크의 시대가 오면서 케이크는 더욱 내 꿈의 음식이 되었다. 궁전에 사는 예쁜 공주님들은 매일 케이크만 먹고살겠지, 노랑머리 파란눈 미국인이나 프랑스들은 매일 케이크만 먹고살겠지, 부러운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케이크는 내게 단순한 음식을 넘어, 머나먼 동경, 풍족함, 안정감, 행복의 상징이 되었다. 이제 어른이 된 나는, 맘대로 세계 여행은 할 수 없어도 맘대로 케이크는 사 먹을 수 있다. 누가 사주기를 기도까지 하며 기다릴 필요도 없고, 아쉽게 한 조각으로 만족해야 할 필요도 없다. ‘나 이제 케이크 맘껏 사 먹는 어른 됐어.’ 하는 성공감이 맛있어서, 몸은 맛없다고 하는 케이크를 계속 먹고 있는 것이다.


동생과도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채식 위주의 건강 소식을 오랫동안 실천하고 있는 동생도 치킨에 대한 갈망만은 끊기 어렵다고, 아무래도 어린 시절 먹고 싶은 만큼 자주 먹을 수 없었던 치킨에 대한 기억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연길의 대표음식 개고기도 그렇다. 누군가는 돼지고기보다 맛있어서 먹는다지만(good for eating) 누군가는 인간의 충실한 친구를 잡아먹는다는 생각에 비위부터 상한다(not good for thinking).


그렇다면 자연에 가까워지려는 내 몸이 시키는 대로 케이크를 끊어야 할까? 아니면 어린 시절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달콤한 행복감을 지금이라도 보상해주기 위해 계속 먹어야 할까? 일단, 먹던 케이크나 마저 다 먹고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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