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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Mar 27. 2022

브런치의 눈물

브런치 작가 입문 10일간의 고군분투기

 예전에는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타오바오를 확인했다. 내 보배가 어디까지 왔나, 오늘은 받을 수 있으려나.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부터는 가장 먼저 브런치를 확인한다. 어젯밤 쓴 글에 라이킷은 몇 개 달렸나, 그새 구독자가 늘지는 않았을까. 아침뿐만이 아니다. 책을 읽다가도, 중드를 보다가도, 산책 나왔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브런치를 들락거린다. 꼴랑 글 8개를 써 놓고, 기대감은 이렇게 크다니, 실제 글 쓰는 시간보다 브런치를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다니, 나는 브린이 개미지옥에 빠져버린 것인가.


1. 구독자 이탈

 헉, 이런 청천벽력 같은 일이! 열흘간 깨알같이 모은 구독자가 분명 9명(그중, 남편 1, 딸 1, 친동생 1, 친동생 절친 1)이었는데 갑자기 8명으로 줄었다. 가난한 살림인 줄 뻔히 알면서 의리 없이 빠져나간 1인 누구야? 왜 내 글이 싫어졌을까, <근육옷>이 너무 저급했던가? 이제 걸음마 단계인데 좀 더 지켜봐 주지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집요한(?) 추적 조사 끝에 밝혀진 범인은, 바로 남편. '라이킷'을 누르라고 했더니 잘못 알아듣고 '구독'을 여러번 눌러 구독취소가 된 것이었다. 휴, 안심. 순수 구독자 5명은 아직 건재한 셈이다.(물론, 그중 2명은 내가 먼저 '구독하기'를 누르자, 그에 대한 답례 혹은 브린이 격려 차원에서 '구독하기'를 눌러준 , 상부상조의 느낌적인 느낌이 들지만)


2. 많이 읽으나 적게 읽히는

 브런치 작가는 브런치의 가장 충실한 독자로 포섭된다. 글쓰기라는 꿈을 매개로 서로가 쓴 글을 서로가 읽어주는 자동내부반복순환 시스템인 것이다. 나 역시 브런치가 5살이 되도록 브런치가 뭔지도 모르고 살다가, 브런치 작가가 되고는 갑자기 열혈독자가 됐다. 이제는 라면 물 끓기를 기다리면서, 핵산 검사 줄을 기다리면서 등등 틈만 나면 브런치를 읽는다. 매일, 5편 정도의 ‘좋아 죽겠는 글’을 찾아 꼼꼼히 정독하고, 랜덤으로 딸려오는 30편 정도의 경험담, 이슈성 글들을 후루룩 넘겨 읽는다. 몇몇 ‘좋아 죽겠는 글’들은 다시 찾아가 재독, 삼독 하기도 하고 진심 댓글도 남긴다. ‘오늘쯤 새 글이 올라올 때가 됐는데’ 하며 ‘좋아 죽겠는 작가’의 페이지를 먼저 기웃거리기도 한다. 미니멀리즘, 발달장애, 힙합, 재즈, 칸토팝, 셀프치유, 브랜드 스토리, 웹소설, 제조업 창업... 이렇게 다양한 지식의 세계, 직업의 세계가 참 놀랍고 재밌다. 그렇게 글 바다를 한껏 헤매고 난 다음에는 내 초라한 글들에게로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 내면을 가꿔야 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같은 너무 쉬운 결론과 뻔한 감상, 두리뭉실한 문장들을 다시 다듬는다. 다듬고 다듬어도 본래의 진부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3. 너무 잘나기 있기, 없기

 사춘기 때 큰 교통사고를 당했고 우울증에 걸렸으며 직장에서까지 잘렸단다. 그래서 비슷한 처지의 고단한 20대들을 위로하기 위해 글을 쓴단다. ‘아직 어린데 참 힘들었겠구나.’ 하며 작가이력을 보니, 두둥! 이미 출간한 책만 3권. 메인 방송사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했던 메이저 작가다. 그의 화려한 스펙위로는커녕, 위화감만 더 들 것 같다. 외항사 승무원인데 그림 실력 프로다.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변호사라면서, 그의 소박한 글은, 끝내 나를 울렸다. 퇴사자에 백수, 한량, 게으름뱅이, 자연주의자에 미니멀리스트이며, 아이 셋을 키우는 주부라면서, 어쩜 이렇게 치열하게들 사는지, 글의 논리는 빈틈없고 문장은 날렵하다. 프사 속 당당한 정면 실물사진, 직접 디자인한 캐리커처까지도 멋지다. 그 속에 열흘 차 브린이인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쥣구멍만해 보인다.


4. 브런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근육옷과 뽕브라’? , ‘근육옷대중화하라’? 여러 제목을 고민하다 결국 ‘님아, 그 근육옷을 입지 마오’라고 정하고 발행을 눌렀다. 창의적으로 잘 정했다며 나름 뿌듯해하고 있는데 웬걸, 브런치에 검색해 보니, 이미 ‘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님아, 그 배당금을 탐내지 마오’, ‘님아 그 술을 끊지 마오’ 등등 2015년부터 시작되는 각기 분야의 ‘님아’ 글들이 쪼로록 올라온다. 푹 빠져 읽었던 중국고전 소설 ‘홍루몽’에 대해 한번 써 볼까, 이제껏 쓴 사람이 없겠지, 하고 검색해봤더니, 역시나 내가 더 이상 보탤 게 없을 정도로 소설 홍루몽, 영화 홍루몽, 장국영과 홍루몽, 홍루몽으로 보는 중국 등등 ‘홍루몽’에 관한 수십 개의 글들이 올라온다. 아, 정말, 브런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구나! 나의 경험, 나의 생각들만이 특별하고 가치 있다고, 사람들이 너무도 알고 싶어 할 거라고 나도 모르게 빠져있던 자기 위주 편향의 우물을 이제야 자세히 들여다본다.


5. 그 잘 쓰던 브런치 작가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물을 대하는 선한 시선, 단순한 문장이 좋아 구독하기를 누른다. 한데 작년 5월 이후로 올라온 글이 없다. 이렇게 잘 쓰는 작가인데, 총 올린 글이 600여 개, 만들어놓은 브런치북이  여덟 권이나 되는데, 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 걸까? 종이책 출간으로 이어지지 않아 슬럼프에 빠진 걸까? 브런치 글쓰기 강사로 전업한 걸까? 이렇게 드문드문, 2022년에 쓴 글이 보이지 않는 작가들이 있다. 그 잘 쓰던 브런치 작가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2년, 3년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으면 그가 놓고 간 브런치북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냥 웹 상에서 사라지게 되는 건가? 나도 쓰다가 제풀에 지쳐 그만두면 어쩌지.


6. 그래도 첫 매거진 발행

 성급하게 브런치 북부터 먼저 만들지 말고 매거진부터 하나씩 만들어나가라는 선배 작가들의 조언을 따라, 나도 매거진 만들기에 도전해 본다. 태그 입력을 끝내고 매거진 주소를 입력하라는데  매거진 주소가 뭔지 모른다. (나는 MZ세대의 부모뻘, X세대인 것을) 결국, 내 설정에서 브런치 주소를 복사해다가 붙여넣. 이미 발행된 글들을 어떻게 매거진으로 데려오는지 몰라 또 한참을 헤맨다. 일일이 다 복사해서 붙여 넣고 사진도 다시 입력해야 하나? 그렇게 불편하게 되어 있을 리 없다. 아, 매거진 탭에서 작업하는 게 아니라, 매거진 프레임을 미리 만들어놓고 글을 발행할 때 하나씩 매거진으로 보내는 거였다!  오! 어느새  6 꼭지의 그럴듯한 매거진 '연길연가' 완성! ‘구독자가 10명을 돌파했습니다!’라는 알림 왔다. 이렇게 브런치 작가 입문 10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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