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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Jul 19. 2024

선생님, 운다

오늘 우리 반 이가 크게 다쳤다.


수학시간, 열 개씩 묶어 세는 방법을 열심히 설명하고 으면,


우리 엄마는요, 맨날 나한테 화내요.
백점 맞아도 화내요.
내가 아빠랑 나갈 때만 웃어요.

 

라며 맥락 없는 이야기를 자주 하던 얌전한 남자아이였다. 


오늘 점심시간,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소리쳤다.


선생님!
별이가 넘어졌어요!
입에서 피나요!


입에 치약 거품을 문 채 달려가보니 별이의 입술이 찢어지고 잇몸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보건실에 데려가 보건선생님이 "별아, 고개 들고 아 해봐. 치아 좀 살펴볼게." 하는데, 그제야 턱 아래가 1.5cm 정도 찢어진 채 벌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심장이 벌렁벌렁한 채로 별이 어머니께 전화 드렸다.


누가 이런 전화를 받고 싶어 할까. 직장에서 업무 중이시던 별이 어머니는 놀란 목소리로 "아아, 우리 별이가, 아아, 우리 별이가...." 하셨다.


얼마나 서두르셨는지 15분쯤 뒤에 별이 어머니가 보건실로 오셨다. 보건실 바로 앞에 오셔서도 문 여는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매셨다. 그 와중에도 별이 어머니는 학교 현관에 비치된 하늘색 일회용 덧신을 잊지 않고 신고 계셨다.

 

퇴근길에 자꾸 눈물이 났다.


오늘 별이는 성형외과에서 턱을 열 바늘 꿰맸고, 영구치 두 개가 부러져 내일은 큰 도시 대학병원 치과에 갈 예정이라 학교출석은 어렵겠다는 별이 어머니와의 통화를 끝낸 후였다. 어머니는 내일 결석신고서를 내지 않아도 되는지 염려하고 계셨다.


힘든 이혼 후 혼자서 별이는 키우는 젊은 엄마의 아이, 별이. 별이 어머니는 한 번도 언급하신 적 없지만, 나는 이 엄마에게 별이가 전부라는 것을 알고 있다. 왜 나는 그때 양치질을 하고 있었을까. 옆반 선생님처럼 나도 매일 학교급식을 먹지 말고 아이들 급식 지도만 해야 했던 게 까. 왜 교실 바닥에 떨어진 물기를 미리 보지 못했던 걸까. 별이가 평소 뜬금 없 이야기 때 왜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못했을까, 온갖 자책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몰려왔다.


나는 교직 경력이 20년이 넘는데도, 나이가 50 이 다 되어가는데도, 오늘밤 혼자 별이를 간호할 그 야무지고 번듯한 젊은 엄마를 생각하니 눈물이 다. 이번에는 내가 또 무얼 잘못해 엄마가 저렇게 힘들어하실까 영문도 모른 채 자책하고 있을 여린 별이를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난다. 이제 겨우 여덟 살인 별이가, 새로 나자마자 영 잃어버릴 치아 두 개와 그 아이 얼굴에 평생 붙어있을 턱 밑 흉터를 생각하니  눈물이 다. 진이 쏙 빠진 채 집으로 돌아와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내 아들의 멀건 얼굴을 보니 또 눈물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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