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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이

by 이천우


오늘 급식에 나온 티니핑 요구르트 빈병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별이가 말했다.


지구 오염되니까
이거 저때(절대) 안버리꺼야.

그 말에 빙긋 웃다가


넌 어쩜 이렇게 이쁘니!



나도 모르게 별이에게 사랑고백을 하고 말았다. 선생님이 나를 이뻐한다는 자부심에 한껏 으슥해진 별이는, 별똥별 같은 눈을 반짝이며, 또 한편으로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우리 엄마도 맨날
나 귀엽다고 해요.


...라고 우물우물한다. 그래도 혀가 짧은데 앞니까지 빠져 바람이 슝슝 세니 무슨 말인지 추측할 뿐이다.


올해로 9년째 연속으로 맡는, 무경쟁의 초등1학년 담임.

곧 손자 볼 나이라 그런지, 조용한 학군(?)으로 학교를 옮겨서 그런지, 올해는 아이들이 유독 더 이쁘다. 특히, 입학식날, 떡하니 황금 왕관 머리띠를 하고 온 별이를 보고 나는 첫눈에 반해버렸다. 공부시간에는 내가 빤히 쳐다보는데도 아랑곳 않고 익숙한 손가락질로 왕건이 코딱지를 떼어 입안에 넣고 쩝쩝거리는 모습에, 옴마,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저런 아이가 있다니! 더 좋아졌다.


별이의 유치원 동창생들 제보에 의하면, 별이는 유치원 내내 말도 잘 못하고 늘 울기만 하는 아이였단다. 어엿한 1학년 언니로 당당하게 인정받고 있는 요즘. 친구들의 갑작스러운 흑역사 폭로에 어찌나 당황하던지!


야! 나 어너치요(언어치료) 받아서
이제 마자해!(말 잘해!)


제법 앙칼지게 응수한다. 지난주 학부모 공개수업 때는 반짝이는 분홍원피스에 블링블링한 반지를 두 개나 끼고 왔더랬다.

학교에 이런 거 가져오면 안 되는데!


오늘 엄마들 하꼬(학교)
오는 날이라서 꼈떠요(꼈어요).


공부시간에 가만히 끼고만 있어야지 빼서 만지작거리면 안 된다.

넹!!(반지 빼서 만지작만지작)


학생번호를 입력하다 보니 공교롭게도 별이가 우리 반 12번이다. 12번들은 다들 이렇게 이쁜건가. 마음은 어느새 작년 우리 반 12번, 내 사랑, 달이에게로 달려가고 있다.


달이는 ADHD 진단을 받은 우리 반 여학생이었다. 입학식 바로 다음날부터 바닥에 누워 데굴데굴 구르고 악을 쓰고 돌아다 학기 초 꽤나 애를 먹었었다. 하지만 야무지고 헌신적인 어머니 덕분에, 달이는담치료도 받고 그렇게나 어려워하던 가르기 모으기도 해내고 받아쓰기도 100점 받는, 나의 자랑이자 가장 기쁨이 되었다.


오늘 날씨 궁금한데, 어떡하지?


달이가 등교하여, 나와 한바탕 얼싸안고 나면 내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핸드폰으로 날씨를 확인하고 싶다는 뜻이다. 티브이에 나오는 기상캐스터가 장래희망인 달이는 유난히 날씨에 관심이 많았다. 대단한 특권 마냥 선생님 핸드폰을 착착 검색하는 달이를 똑똑이 여자 친구들이 질투 나서 꼭 물어본다.


왜 달이만 선생님 핸드폰 해요?


응, 달이는 커서 기상캐스터 되고 싶어 하잖아. 그래서 미리 연습하는 거야.


그러면 달이는 더욱 얄밉게,

맞아. 나 연습 많이 해야 한다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눈하트를 보내곤 했다.


노래를 배울 때면 리듬에 흠뻑 빠져 칠판 앞에서 나뭇잎처럼 자유롭게 춤추던 달이. 테두리 안에 들어가는 법이 없던 거친 화풍도 참 인상적이었. 이제 2학년 언니가 되었을 텐데 잘하고 있으려나. 2학년 새 선생님도 눈물 많고 웃음 많고 (화도 많은) 우리 달이를 사랑해 주실까. 달이가 보고 싶다. 연가라도 내서 이전 학교 2학년 교실 앞을 서성여라도 볼까.


선생님과 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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